언제부터였을까,
돌아오지 않을 젊은 시절을 화려하고
다채롭게 살고 싶다는 마음보다,
앞으로 맞이하게 되는 시간 속에서
더 무게감 있게 나이먹고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하나같이 웃는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주고 받는
수많은 가을 거리에 널린 낙엽같은 지인들보다,
쓴소리 아쉬운 소리 볼멘소리로 서로를 향해
중무장한 친구 하나하나들이 훨씬 소중하다고
여기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서는 중년이 넘어가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혹은 그 소중한 것을 잃어버려 보아야 한다는
일반적인 잔혹함을 하나의 불문율로 삼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지친 꿀벌처럼 내가 있을 곳을
찾아 헤매는 것을 멈추고,
고뇌하는 말벌처럼 누군가가 있고자 하는 곳을
만들어내고 지키기 위해 날갯짓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꿈을 좇는다는 것은 먼 하늘에 떠 있는 별을 향해
맹렬히 분사기를 불태우며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별 사이에 가로놓인 대기 속의 모든 거짓과 가식 그리고 후회를 하나씩 줄여나가는 일임을 깨달은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 라고 외치다가도,
혼자가 아니면 더 잘할 수 있는데 라고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한 것은.
정말로,
언제부터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