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했을까,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우리는 얼떨결에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입 다물고 밥만 먹기엔 모양새가 어색했는지 서로 전공이니 수업이니 얘기를 하다가 "장래 희망이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무언가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 때나 들었을 법한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나는 앞으로 희망하는 바가 뭘까?' 이제와 돌이켜보면 당시엔 별 생각이 없었던 듯하다.
"장래 희망이라는 표현이 좀 생소하게 느껴져서요, 보통 뭐라고들 답하죠?"
내 반문에 상대는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대기업 취직이나 전문직 등의 직업 혹은 고시 준비 등을 예로 들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아찔했다.
"저는 그냥 최대한 제 자신답게 사는 게 장래 희망이에요."
그리고 상대의 표정은, '뭐라는 거야 이 녀석은?'
의사건 법조인이건 예술가건 그러한 단어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여러 수식어 중 하나일 뿐이다. 붉은 껍질만으로, 혹은 과육이나 씨앗만으로 사과에 대한 구성과 묘사가 완성될 수는 없는 법이다. 작가이기 이전에 '글을 쓰는 나'이고 싶고, 기획자이기 이전에 '상상하는 나'이고 싶다. '무언가가 된다'는 희망 어린 표현 속에는 어쩌면 강력한 속박의 마수가 깃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꿈꾸던 회계사가 되어 회계사처럼 되어버린 친구, 게임 개발자를 목표로 열심히 살아서 게임 개발자처럼 되어버린 친구, 의사가 되어 의사처럼 되어버린 친구. 이젠 너무 많은 친구들이 아무런 이름(타이틀)도 걸치지 않았던 시절의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이고 유쾌한 사람이었는지 잊은 것만 같다.
물론 최소한의 직업적인, 사회적인 정체성은 필요하다. 다만 그게 애초부터 삶의 전부는 아니었음을 기억한다면, 조금이나마 삶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기지는 않을까.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셨나요?"
그리고
"앞으로는 무엇이 되고 싶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