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들의 마을 11
숙영지를 에워싼 칠면조 무리를 둘러보며 훌륭한 식사재료들이 제발로 몰려와 주었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났지만, 저 너머로 보이는 하얀바람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다. 늘 심드렁하던 녀석이 있는대로 이빨을 드러내고 온몸의 털을 곤두세운 채 새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를 둘러싼 커다란 새들의 자그마한 눈은 쉴 새 없이 사방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수많은 초점들이 무엇을 향하는지는 분명해 보였다. 새들의 시야 한복판에는 내가 놓여 있었다.
가장 체구가 크고 투구를 쓴 것처럼 머리의 털이 엉겨 있는 칠면조 한 마리가 무리 뒤쪽에서부터 동족들을 좌우로 밀쳐내며 뒤뚱뒤뚱 내게 다가왔다.
무리의 우두머리인가?
떠올려보니 전날 하얀바람이 사냥해 온 칠면조의 체격이 더 크고 우람했다. 둘이서 다 먹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설마 어제 그 칠면조가 이 무리의 우두머리였던 건가?
머리 모양을 제외하면 어제 하얀바람이 물고 온 칠면조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김새의 대장새는 무리를 헤치고 제법 가까이 다가왔다. 저편에서 험악하게 노려보던 늑대도 어느 새 내 곁으로 와 있었다. 우리는 대체 무슨 사이인 걸까.
혹여나 무리의 대장 칠면조가 부하들을 이끌고 나를 일거에 습격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어쩐지 거대한 늑대가 내 곁으로 온 이유가 그러한 상황을 막기 위함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내겐 있었다. 정말로, 우리는 대체 무슨 사이인 거지?
대장 칠면조는 울부짖는 소리로 한참 동안 나를 향해 끼룩댔다. 가끔씩 그의 뒷편에 늘어서 있는 칠면조 무리들이 신경질적인 소리로 동조하는 듯 일제히 끼룩대기도 했다. 잔뜩 경계하는 자세로 내 옆에서 칠면조들을 지켜보던 하얀바람은 점차 경계를 푸는듯한 자세를 취하더니 새소리가 멈출 무렵에는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혹은 모든 것에 무관심한 듯한 평소의 심드렁한 눈빛도 돌아와 있었다.
늑대가 어째서 갑자기 경계를 푼 것인지 의아해하던 찰나, 갑자기 대장 칠면조의 나를 향한 일장연설이 뚝 끊겼다. 그러더니 언제부터 숨어있었는지 모를 새끼 칠면조 한 마리가 무리의 가장 뒷편 구석에서 열심히 발걸음을 옮겨 다가오기 시작했다.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날 정도로 작고 가녀린 탓에 거칠고 투박한 야생칠면조 무리에서 등장하지 않았다면 전혀 다른 종족이라고 오해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긴장과 불안이 가득한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무리 앞으로 나선 새끼 칠면조는 멈추지 않고 내가 있는 곳까지 다가와 양쪽 날개로 내 양발을 감쌌다.
순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대장 칠면조를 포함한 칠면조 무리 전체가 휙 뒤로 돌아 빠른 걸음으로 사라져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칠면조 무리 전체는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갔고, 말 그대로 평원 전체에서 사라져버렸다.
평원 위에 덩그러니 남은 건 커다란 늑대와 나.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남겨진 예쁜 새끼 칠면조 한 마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