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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ssian Jul 11. 2015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허스키를 품다

실버 허스키 제노 이야기 - 서장(Prologue)



나는 시베리안 허스키 한 마리를 품고 있다. 

'키운다'는 표현 대신 '품는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차차 밝히도록 하겠다. 


회색 콘크리트, 검은 시멘트, 파스텔톤으로 누렇게 뜬 보도블록과 걸핏하면 매캐한 도심 공기의 광경을 두고 언젠가부터 많은 이들이 눈 앞에 주어진 '현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푸른 가로수도 풍경 속에 존재하지만 그 또한 정해진 구획 속에서, 의도된 모양새로 자리할 뿐이다.  그런 도심의 한 공동주택 실내에 시베리아 벌판을 가로지르던 조상의 피를 이어받은 야생 동물 한 마리가 숨 쉬고 있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不如一犬]

한여름 돌침대에서 낮잠을 자거나 / 아빠 소파를 차지하고 누워있거나 / 새침하거나


2014년 10월 13일에 태어나 이제 갓 9개월이 되어 가는 이 남아의 이름은 '제노(Xeno)'다.

누군가 피시방 이름이 아니냐고 물은 적이 있지만 그와는 전혀 무관하다. 

그리스의 역사학자이자 장군이었던 크세노폰(Xenophon)과 관계가 있다고 말할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수였다. 그냥 어릴 적 갖고 놀았던 강아지 인형 이름이 제노였다. 그뿐이다. 


무언가를 '키운다'는 표현은 어쩐지 밥만 먹이고 씻겨주고 잠만 재우면 되는 일종의 일과처럼 다가온다. 반면 '품는다'는 것은 잠시도 안심할 수 없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상대의 본질을 모두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가진다. 제노는 내게 있어 품어야 할 대상이었다. 제아무리 거친 야생의 모든 본능을 간직하고 있다지만 목줄 없이 차들이 쌩쌩 오가는 도로 근처에 뛰어들거나 음식물 쓰레기라도 잘못 먹으면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런 녀석들에게 그보다 더 위험한 '야생'이 있을까. 


이렇게 글을 작성하는 이유는 제노, 이 녀석을 만난 뒤 삶을 바라보는 내 자세가 변했기 때문이다. 이제껏 함께한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지만 제노는 나로 하여금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고 또 현실이라는 명목과 분주함 속에서 잊고 있던 소중한 가치들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또 되찾게 해 주었다. 그 수많은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공유하고 싶었다.


동시에 많은 분들이 공유하고픈 반려 동물과 함께하는 일상, 함께했던 소중한 경험 및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 '반려 동물과 함께하는 삶'이라는 매거진을 작성했다. 부디 미소 지을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부터 가슴 벅차고 뭉클한 이야기들로 가득해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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