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반달살이의 뚜벅이 생활이 어제로 마지막인 줄 알았다. 뚜벅이로 제주살이를 하며 기대치 않았던 풍경들도 만날 수 있었기에 좋았지만, 폭염경보 문자가 매일같이 세네 번씩 오는 이 날씨에는 문명의 이기가 그리운 순간들도 많았다. 그랬기에 여행의 후반부에 접어들었다는 아쉬움이 있어도, 우리 중의 유일한 운전자인 남편이 오는 오늘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물론 남편도 보고 싶고!)
그런데 웬 걸, 새벽같이 공항에 마중 나가 남편과 상봉하고 렌트 후 1시간쯤 되었을 때 평생 처음으로 사고를 만났다. 다른 차와 충돌하거나 사람이 다치거나 하는 큰 사고는 아니었기에 너무나 다행이었지만, 예상할 수 없었던 황당한 상황에 우리는 모두 놀랐다. 무엇보다 렌터카 업체의 사람보다는 손익만을 생각하는 방어적인 대응에 셋의 첫 여행에 걱정과 피로, 답답함 등이 몰려왔다. 그래도 상황이 일차적으로 정리되기까지의 두세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몸과 마음을 더 걱정했고 괜찮다고 함께 위로했다.
공항에 가서 더위를 식히고 다시 뚜벅이가 되어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잠시 쉼을 갖고, 현재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오늘의 계획은 이미 멀어졌지만, 남은 시간만큼은 사고의 여파와 수습에 대한 걱정이 우리의 소중한 시간에 영향을 주지 않게 하고 싶었다. 바다가 보이는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내일부터의 일정을 위해 필요한 조율을 했고, 그 외의 시간은 지금 여기에 집중했다. 지금 우리가 하기에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즐길 수 있는 활동을 택했다. 성산일출봉 등반과 야외에서의 저녁식사. 햇빛은 따가웠고 땀이 비 오듯이 흘렀지만 맑은 날이었기에 멋진 풍광을 만날 수 있었고, 운동 후의 시원함과 함께 해가 지면서 달라지는 성산일출봉과 하늘, 바다의 색을 즐기며 식사를 했다. 그러면서 일찍 숙소 근처로 돌아와 지금 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음에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서로 나눴다.
길었고 고단한 하루였다. 그럼에도 함께의 힘으로 현재를 즐겼던 우리의 오후를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