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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boran Aug 13. 2021

성냥 줍는 소년

눈이 펑펑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였어요.

한 소년이 잔뜩 부른 배를 두드리며 

눈길을 저벅저벅 걷고 있었어요. 

소년의 작은 왼손에는 

때 묻은 성냥 몇 개비가 들려 있었죠. 


소년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빵을 물 한 모금 없이 

몇 개나 집어 먹은 상태였어요. 

소년은 하염없이 눈길을 한참 걷다 보니 

빵빵했던 배가 금세 꺼지고 말았어요.

날은 점점 어둑해지고, 

소년의 몸은 더욱 으슬으슬해지고 있었어요. 


"아이, 추워…."


소년은 길 한 모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점점 딱딱하게 굳어오는 발등을 어루만졌어요. 

하지만 소년은 갈 곳이 없었어요. 

소년에게는 집도 있고 새엄마도 있었지만, 

유일하게 소년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아빠는 

이제 세상에 없거든요. 


"말썽 부리지 말고 조용히 있어!"


아빠가 사라진 뒤, 새엄마는 늘

소년에게 화만 냈어요.

사랑을 주지도, 음식을 주지도 않았죠.

그래서 소년은 늘 외롭고 배고팠어요.


소년의 아빠는 작년 크리스마스에 

병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어요.


"아빠가 하늘나라로 먼저 가도 슬퍼하지 마. 

내년 크리스마스 때, 

아빠가 꼭 너를 보러 놀러 올게."


작년 크리스마스, 

아빠가 영원히 눈을 감기 전 

소년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이었어요.


그렇게 1년이 지난 오늘, 

소년은 자신을 보러 올 아빠를 기다리기 위해

하염없이 길을 걷고 있었죠. 


"어디 또 성냥이 없을까…."


한참 동안 굳은 발을 어루만지던 소년이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일어났어요. 

그리고는 다시 주변을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지요. 


아빠가 하늘나라에 가기 전, 

소년에게 자주 읽어주었던 동화가 있었어요.

바로 '성냥팔이 소녀'였지요.


아빠가 떠나고 나서도 소년은 

그 동화를 매일 밤 읽었어요. 

동화 속 소녀가 성냥불을 킬 때마다 

만날 수 있었던 따뜻한 난로, 음식이 쌓인 테이블,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까지.

소년은 그 모든 광경이 부러웠거든요.


아빠가 없는 크리스마스이브,

소년은 동화책 속 소녀처럼

성냥을 주워서 불을 켜 볼 생각이었어요. 

성냥 한 갑을 살 만한 돈이 소년에겐 없었거든요.


혹시라도 아빠가 자신을 찾아오지 못하면, 

스스로 성냥불을 켜서 아빠를 보고 싶었던 거예요.

하지만 아무리 겨울 밤길을 걷고 또 걸어도

멀쩡한 성냥을 줍는 일은 흔하지 않았어요.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버린 소년은 

한 골목길 모퉁이에 다시 쓰러지듯 쭈그리고 앉았어요. 

그렇게 동화 속 성냥팔이 소녀보다도 

더욱 춥고 쓰라리게 눈을 감기 일보 직전이었죠. 

소년은 웅크리고 앉아 생각했어요.


'아빠는 올 수 없는 건가 봐..

어쩌면 아빠는,

하늘에서 날 볼 수도 없는 건가 봐..'


그때였어요.

밤하늘에서 환한 불꽃이 

팡팡 피어오르기 시작했어요.

그 불빛은 너무나도 환해서

마치 대낮처럼 하늘을 밝혀줬지요.


"우와~ 크리스마스 폭죽놀이가 시작된 건가?"


길을 걷던 사람들은 모두 제자리에 서서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들을 구경했어요.

그런데 하늘을 채운 불꽃 중

하나의 불꽃이 어디론가 뚝 떨어졌어요.


치익, 치익!

그 불꽃은 소년의 집으로 쿵 떨어졌고,

불꽃이 땅에 닿자마자

소년의 집은 순간 환하게 밝아졌어요.


하지만 길거리에 쓰러져 있던 소년은

너무 추운 나머지 얼굴이 하얀 눈보다도 더 하얗게 질려있었어요.

하늘을 수놓는 폭죽을 올려다볼 볼 힘이 없었죠.

그때였어요.


"아들아!"


멀리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눈이 감기기 일보 직전이었던 소년은

안간힘을 다해 살포시 눈을 떴어요. 

멀리서 달려오는 그 사람은 바로 새엄마였어요. 

소년은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어요.


"아들아! 이렇게 추운데 

밖에서 뭐 하느라 지금까지 안 들어오는 거니!

엄마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소년은 당황했어요. 

새엄마의 목소리가 평소와 너무 달랐거든요. 

소년이 놀란 눈으로 새엄마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자, 

새엄마는 소년의 앞으로 다가와 

두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했어요.


"네가 없는 동안, 집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단다.

하늘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집 안이 환~하게 밝아지지 뭐야?"


소년은 갸우뚱한 표정으로 새엄마를 쳐다봤어요.

소년이 아무 대답이 없자,

새엄마는 웃으며 소년의 손을 잡았어요.


"춥지? 얼른 집에 들어가서 난로 좀 쬐자.

엄마가 맛있는 음식들 많이 만들어놨단다.

그리고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니까,

잠들기 전까지 동화책도 읽어줄게."


방긋 웃으며 소년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새엄마.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소년은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잠들기 전까지 책을 읽어준다는 말은

아빠가 늘 소년에게 하던 말씀이었거든요.


소년은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가다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어요.

소년의 집 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던 불꽃 하나가

하늘로 치익- 소리를 내며 올라가 버렸죠.

소년은 웃으며 생각했어요.


'아빠는 날 볼 수 있었어.

아빠가 엄마한테 오신 게 분명해.'


어느덧 엄마와 함께 집에 다다른 소년은

주머니 속에 모아둔 성냥 몇 개비를 빼서

벽난로 속에 던져버렸답니다.


이제 아빠의 따뜻한 마음은

성냥개비 없이도 만날 수 있게 되었거든요.


그렇게 소년은 엄마와 동화책을 읽으며

매년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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