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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택 Jul 30. 2017

121. 네덜란드에서 엿보기

2017년 5월 8~11일, 여행 229~232일 차, 네덜란드 암스터담

프랑크푸르트에서 친구들과 헤어지고 나는 네덜란드로 다시 돌아갔다. 지도에 가보지 못한 나라들을 하나씩 칠하면서 가는 세계일주자에게 갔던 나라를 또 가는 것은, 그러니까 독일과 같은 특별한 일이 생겨야만 가능한 일이다. 네덜란드를 다시 찾게 된 이유는 아주 우연한 계기에 찾아온 소중한 인연 때문이었다. 그 인연으로 이번 네덜란드로 가는 여정은 여행자로서라기보다는 손님으로서의 자세와 관점으로 네덜란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투표가 만든 소중한 인연


네덜란드에서 약 일주일 정도 머물렀던 그 집

그렇다면 그 소중한 인연은 어디서 온 것인가. 약 3주 전 있었던 19대 대통령 선거 재외국민 사전투표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배를 만나기로 한 헤이그에서 투표를 먼저 하고 빠르게 헤이그 중앙역으로 가야 했던 나는 급하게 인증샷을 찍고 움직이려고 했다. 그런데 한 여자 분이 '여행 중이신가봐요'하며 말을 걸어왔다. 사실 당시에는 선배를 만나러 빨리 가야 했고, 보통 그렇게 말을 거시는 분들의 이야기가 항상 짧지 않으면서도 그 자리에서 끝나는 일시적인 것이었기에 조금은 회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여행은 얼마나 하는지. 어디가 좋았는지, 매번 하는 이야기이지만 너무나 진중한 자세로 들어주시던 그분 때문에 나도 모르게 기다리고 있을 선배 생각도 잊은 채 내 이야기를 술술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너무 늦은 것 같아 '이제 가보겠습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하

이 한 다발로 몇 일을, 누군가가 행복해진다

고 인사를 하자, 본인이 암스테르담에 거주중이니 오게 되면 이 주소로 찾아오라며 이름과 주소, 연락처를 건네주셨다. 주신 종이를 황급히 받아 선배에게 갔다. 나중에 정리가 되고나서 다시 연락을 드렸더니 꼭 암스테르담에 오라 신신당부하셨다. 가기도, 안가기도 뭐한 애매한 상황이었는데 여러 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암스테르담에 가야 하는 상황이 와서 암스테르담에 계신 YJ누나의 집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보니 꽃을 사서 움직이는 사람이 많다. 유럽 대부분이 그렇지만 특히나 네덜란드는 혼자사는 사람들도 꽃을 사갖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빈손으로 가기가 민망해 마트에서 예쁜 튤립 한다발을 사서 갔다.


손님이 엿보는 네덜란드의 삶

YJ누나는 네덜란드 인인 남편과 결혼하여 아이 둘 낳고 행복하게 지내고 계신 한 가정의 어머니였다. 맏이 공주 리아나와 막내 왕자 휴고를 모시고 사시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라고. 암스테르담에 지내는 동안 많은 곳을 돌아다닌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애초에 꽃이나 이런 아기자기한 것들에 관심도 없거니와 미술이나 이런 것엔 젬병이니까. 나의 대부분의 시간은 바깥 산책(을 겸한 고흐 박물관 나들이라던가) 이나 집에서 두 아이들과 노는 것이 일상이었다.

뭐, 네덜란드는 이런 곳을 걸어 다녔다. 다닌 곳은 실제로 더 많지만

여행자로서가 아닌 손님으로서, 바깥을 산책하며 안에서 아이들과 지낼 때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모습은 '여유'이다. 이것은 인도나 아프리카 사람들이 가지는 그것과는 또다른 맥락이었다. 흔히 알고 있지만 네덜란드는 손꼽히는 복지 국가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삶의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해 많이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걸 가장 많이 느끼는 때가 바로 출퇴근 시간대이다.

리아나와 휴고. 아이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아이 엄마나 아빠가 자전거 트롤리에 아이를 실어서 함께 등교한다. 퇴근은 5시지만 그보다 이른 시간에 아이들 하교를 돕기도 한다. 철저하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저녁시간을 만들어주려는 제도적 배려였다. 그래서인지 수면시간도 굉장히 이르다. 아이들이 9시만 되면, 어른들도 10시를 넘기지 않고 모두 취침에 들어갔다. 가족의 여가 생활과 수면 보장 등이 확보되기에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모두 찾게 된다.

흔히들 알고 있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도 앵무새처럼 지저귀는 내용이지만, 이 모습을 집에서 실제로 보고 있으면 이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몸소 느낄 수 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여행지가 맘에 들어서, 사람이 좋아서 이런 굉장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이유때문에 그 나라에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제도적인 보호장치 때문에 이 나라에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어쩌면 이런 제도적인 장치가 있는 상태에서 개인의 기본권이 충분히 보장되면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여러 가지 부분에서 네덜란드가 개방적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자로 여기를 돌아봤다면 이곳 저곳 다니기 정신 없이 시간을 보냈을텐데 이런 부분들을 볼 수 있어서 새로운 느낌으로 암스터담에서 보낸 시간들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오래 돌아 알게 된 비밀


지금 행복하세요? 물론이죠! 이 모습을 봐요!

네덜란드에서 개인적으로 봐야 할 일이 어그러지고, 스페인으로 가야 할 일정을 확정 지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도하려 했으나 유럽 내 무비자 체류의 계산상 산티아고 순례길로의 여정이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날 누나께서 스페인으로 가면서 먹으라며 김밥을 싸주시면서 이런 저런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누나는 날 보면서 본인이 지내 온 삶을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누나도 결혼 전 까지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 우여곡절의 삶을 사신 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남편 분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아 길으면서 그 때와는 완벽히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새로운 문화권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과 살아가면서 괴롭고 힘든 일도 많이 있었지만, 그러다가 최근에 느낀 사실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내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것들에서 행복을 얻는 것


이었다. 우리의 삶은 늘 제약적이고 힘들기에, 그 안에서 행복을 얻어낼 수 있어야 삶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행을 나온 나의 입장에서는 현재의 이 여행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을 얻을 수 있어야 하고, 돌아가면 돌아간 일상에서 행복을 또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래 돌아 알게 된 누나가 얻은 행복의 비밀을, 나에게 전해주면서 '상택씨도 꼭 행복하길 바래요. 있는 그 자리에서' 라고 말해주셨다. 자신은 없었지만, 노력해보고 싶었다. 지금에서 행복할 수 있는 법을. 


P.S.

너무 감사한 YJ누나, 네덜란드에서 진 신세보다 주셨던 가르침 나누며 지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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