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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택 Aug 02. 2017

122. 도전의 바르셀로나

2017년 5월 12~14일, 여행 233~235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유정누나가 싸준 소중한 김밥을 들고 버스에 올랐다. 사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유럽 내의 이동은 미리만 예약하면 항공기가 훨씬 경제적이다. 시간대비 가격이 가장 저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이 길고 일정이 변칙적인 나같은 장기 여행자에게는 미리미리 예약하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다. 그래서 버스를 이용해야 했는데, 마침 시기 적절하게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시간을 함꼐 보냈던 임선배가 나에게 소중한 선물을 주었다. 그것은 바로 플릭스 버스 바우처!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버스를 20유로(한화 약 26,000원)에 얻었다! 이 때부터였다. 괜히 바르셀로나가 나에게 도전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28 시간

버스는 네덜란드 암스터담을 출발해 독일 도르트문트를 경유하여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가는 대 여정의 버스였다. 예상 소요시간은 24시간이었다. 도르트문트에서 버스를 갈아타는 과정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여기서 '어리석은 내기'를 스스로와 하기 시작한다. 

'경유 환승을 제외한 이동시간 내내, 한 번도 엉덩이를 떼지 않고 24시간을 가보자!'

사실 20시간 이상 이동은 나에게 그렇게 희귀한 경험은 아니다. 베트남, 파키스탄, 아프리카 내륙이동이 평균 10시간 이상 최대 26시간 이동이 있었기에 이동 자체는 나에게 큰 어려움은 아니었다. 다만, 한 번도 몸도 풀지 않고 의자에 꼼짝 붙어 이동해 본적은 없어서 요상한 오기(?)가 발동해서 그런 내기를 스스로에게 걸어버렸다.

암스테르담에서 도르트문트 구간을 4시간 여로 굉장히 짧기 때문에 무난하게 인터넷을 하면서 이동을 했다. 문제는 도르트문트부터 바르셀로나 구간이다. 일단 식사는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주신 김밥 두 줄로 끼니를 했고, 준비해 간 몇 개의 간식을 야금야금 먹으며 엉덩이를 한 번도 떼지 않은 채 이동하고 있었다. 18시간 쯤 갔을 때였나, 프랑스를 경유하는데 4년 전 들렀던 몽펠리에를 지나쳤다. 비오는 몽펠리에, 옛날 여행을 떠올렸다. 몽펠리에를 지나면서 부터는 지루함과의 싸움이었다. 플릭스 버스의 장점은 와이파이인데, 이 것이 24시간 동안 사용제한이 있기 때문에 일정 용량을 사용하면 이용할 수가 없다. 덕에 인터넷 없이 몇 시간을 버텨야 했다. 

살짝 잠이 들었다가 꺠어보니 24시간이 되었다. 허나 버스는 스페인 국경을 겨우 넘어선 상태였다. 게다가 버스는 소란스러웠다. 알고보니 버스 안에서 한 스페인 아저씨가 술 한잔 거하게 자시고 부인에게 난폭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차를 세워서 몇 번이나 그를 제지하려 했고, 경찰까지 출동해서 그를 중간지점에서 내리게 하고야 버스는 다시 갈길을 갈 수 있었다. 그 후로도 4시간을 더 달려서야 나는 바르셀로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총 28시간. 엉덩이를 한 번도 떼지 않은 채 28시간을 달려왔다. 이 얘기를 들은 나의 몇 친구들은 '정말 의미 없는 짓을 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의미 없는 짓이었는 지도 모르겠는데 생각해보면 내가 어떤 걸 이렇게 열심히 한 적이 있나 싶어 스스로에게 말도 안되는 칭찬을 해주기도 한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유럽 내에선 새로운 나라인 스페인으로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스페인, 도전(?)의 연속

믿기지 어렵겠지만, (자우어크라우트로 만든)김치찌개

28시간의 이동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도착하고 나서는 내리 자면서 체력을 회복해야 했고, 다음 날도 시내로 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사실 숙소가 시내랑 멀리 떨어진 곳인 바달로나에 있던 것도 문제였다. 숙소가 워낙 떨어져 있다보니 동양인이 거의 없었는데 딱 한 명의 동양인이 있었다. 긴가 민가하다가 'Where are you from'을 물어보니 한국분이었다! 심지어 휴가로 유럽만 온 것이 아닌 남미와 유럽대륙 여행을 하고 있던 세계여행자 '윤경누나'였다. 한식이 먹고 싶어 쌈장으로 된장찌개를 끓이던 누나를 보니 괜시레 안쓰러워 요리해드리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치고는 두근거리면서 생판 모르는 사람을 위해 요리를 해야 했다. 게다가 오늘 내가 저녁을 먹으려고 했던 것은 독일에서 샀던 자우어크라우트를 응용한 '야매김치'로 만드는 김치찌개였다. 비주얼은 엉망이었지만 누나도 나도 꽤 맛있게 먹어주셔서 너무나 다행이었다.


이 사진에서 무언가를 보았다면 당신의 마음속에 음란이 있는 것일 겁니다. 왜냐면 전 안담았어요, 뭘요? 에이

다음 날은 누나와 함께 숙소 근처 해변에 갔었다. 호스텔 직원은 '우리 숙소에 해변이 있다'라고만 말했는데, 가서 보니 그곳은 누드비치(!)였다. 우리는 말 없이 선글라스를 껴야 했고, 옷을 입지 않은 사람들을 피해 해변가 한쪽의 돌에서 해를 쬐며 바다를 멀리 봐야했다. 뭐, 이것도 나름의 도전이라면 도전이랄까. 오래 돌지 못하고 돌아와 이번엔 또 짬뽕을 해 먹었다. 내 요리 실력이 스페인에서 아마 비약적으로 상승했을 것이다. 여러가지 도전의 연속이었던 스페인의 첫 몇 일이었다. 내일은 좀 돌아다닐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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