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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택 Jul 30. 2017

120. 3명의 세계 여행자

2017년 5월 4~7일, 여행 225~228일 차, 독일 프랑크프루트

벨기에 브뤼셀의 찬란한 밤을 즐기기에는 나의 여유 시간이 너무 짧았다. 바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버스가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만 두 번째 독일 방문인 데다가 재미없는 프랑크푸르트로 간다는 나의 말에 어떤 친구는 '왜 그 노잼 도시를 또 가냐'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가벼운(?) 면박은 나의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예약된 Flix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바로 나와 같은 처지의 세계일주자 세 명이 운명적인 처음이자 마지막 대 회동을 하기 위한 장소로 가는 그 버스에.


첫 모임, 이틀, 세 명의 세계 여행자, 네 번의 독일 방문

이미 앞선 글에서 어느 정도 언급이 되었었다. 아프리카를 함께 여행했던 우꾼, 그리고 그의 사이버 친구인 쿄 그리고 나까지 세명의 세계일주자가 모이기로 했다. 처음에 어디서 모이는지로 한창을 속고 속이는 사이버 전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싱겁게 끝나면서 프랑크프루트에서 셋이 모이기로 결정이 된 것이다. 우꾼과 쿄는 하루 먼저 도착해서 먼저 자고 나는 벨기에 발 야간 버스로 다음날 아침 하루 늦게 도착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쿄, '침대는 우리 둘이 자고 있으니 냉큼 바닥으로 꺼지'라는 얼토당토않는 우꾼까지. 과연 이게 처음으로 마주한 세 명의 조합이 맞나 싶을 정도로 목욕탕 몇 번 간 사이의 남자들 모임으로 변질되었다. 몇 시간 뒤 잠을 완전히 깬 뒤 제대로 된 첫 조우가 시작되었다. 나한테는 실제로 네 번째 독일 입국이었고, 세 명이 모인 이 모임은 이틀간 지속되기로 했다. 첫 모임에 어울리지 않는 추진력. 이것이 세계 여행자의 모임인가 싶었다. 배가 고파진 우리는 오래간만에 모였으니 제대로 된 한식을 먹자며 장을 보러 나갔다. 보통 세계 여행자 대부분이 날씨와는 연이 멀다. 항상 날씨가 안 좋아서 좋은 풍경을 놓치기가 일수다. 나도 몇 번을 그런 편이었고, 우꾼도 안 그런 편은 아닌데 쿄가 악천후의 화신이었다. 원래 여행 중에도 악천후를 몰고 다니는데 우리가 장을 보러 가는 때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쉬자고 온 독일에서 개고생을 하게 해 준 악천후의 화신 쿄에게 다시 한번 JOY를 표한다. 아뭍느 힘들게 뚫고 간 마트에서 '부대찌개'를 하기로 하고 어마어마 한 양의 장을 봐왔다. 장을 보고 나서 우꾼이 ' 많이 산거 아니냐'싶다가 도 세 명이 이틀 먹을 장이니까 합리화를 시켜버렸다.

과연 저 장 본 것이 얼마어치일까요? 한 사람당 나누면 충격적인 가격!
세계일주자 세 명이 모이면 이런 밥상이 나옵니다

그렇게 세 명의 여행자가 밥을 시작하는데, 조직화된 셰프들이 따로 없다. 다들 야매요리에서는 방귀깨나 뀌는 사람들이 모이니 어마어마한 메뉴가 완성되고 말았다. 그 날의 부대찌개는 계속해서 잊지 못하는 극강의 맛이었으니까. 맥주에 부대찌개를 정신없이 먹고 퍼질러져 버린 우리는 한참을 멍하니 누워있었다. 누군가 '모두의 마블 해볼까'로 시작된 말도 안 되는 핸드폰 게임 삼매경에 밤을 지새웠고, 그렇게 밤이 흘렀다. 첫 모임의 밤이 부대찌개와 술, 모두의 마블이라니. 도저히 예측이 안 되는 사람들이 여행자들인 것이다.


독일의 혼탕을 체험하다

이렇게 누워서 모두의 마블을 하다가는 그냥 모두의 마블만 하다가 헤어질 것 같았다. 사실 나는 그랬어도 괜찮은데 싶었지만 부지런한 우꾼이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어딘가를 가보자고 주장했고, 뭔가 음흉한 눈빛으로 쿄가 외쳤다. '혼탕을 가자' 사실 프랑크푸르트 자체는 사창가가 굉장히 유명한 도시 중 하나다. 잘도 교통도시라는 이미지로 커버했지만 실제로 정말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우리 셋 다 거기까진 (?) 큰 흥미가 없었고 호기심은 왕성한 여행자들이었기에 근처 비스바든에 있는 혼탕을 가자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결국 셋은 '오랜 여행으로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기 위해 목욕탕을 가자'는 핑계로 혼탕으로 향해버렸다.

 간 날 다행히 날씨도 굉장히 좋아서 목욕하기 전부터 기분히 괜히 설렜다. 우리나라로 치면 워터파크 같은 느낌의 입구를 가진 비스바든의 혼탕이었다. 당연히 내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하기에 카메라를 조심스레 넣고 목욕을 했다. 우리는 혼탕에서 정말 말 그대로 심신의 피로를 풀었다. 혼탕에서 괜한 것을 기대하고 계셨다면 그냥 즐목욕하시면 된다. 

독일 비스바덴 혼탕체험을 마치고_ 쿄, 연, 택

우리는 즐 목욕했다! 뽀송뽀송해진 몸과 마음으로 괜시레 이상한 사진도 셋이 찍어봤다. 말도 안 되는 개그를,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을 던진다. 내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그랬을 것이다. 또 맥주를 잔뜩 사들고 와서 하룻밤을 더 밤을 지새웠다. 


다시 각자의 길로


나는 프랑크프루트에서 하루 더 시간을 보낸 뒤 네덜란드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헤이그에서 투표를 했을 때 만났던 한 교민분 께서 초대를 해주셔서 암스테르담에서 며칠 신세를 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꾼은 독일에서 발급받은 미국 비자를 챙겨서 남미로 향한다고 했다. 쿄는 북유럽을 거쳐 시베리안 횡단 열차를 타고 한국에 돌아갈 준비를 한댔다. 아프리카에서 우꾼을 만나서 쿄의 존재를 알게 되고 한 게 한 3개월 전쯤이었는데, 그때부터 셋이 만날 만한 거리에서 배회를 하다가 처음 만났고 이제 다시 헤어지게 된다.

 세 명의 여행자가 여행길에서 한 번에 회동할 일은 이제 더 없어 보였다. 시답잖은 이틀을 보내고 시답지 않은 이별을 준비했다. 괜시레 비장한 느낌의 사진도 남겨보았다. 다시 각자의 길로 향하는 우리 세 여행자의 길에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Adios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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