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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택 Jul 27. 2017

119. 내 지금은, 찬란하다

2017년 4월 29일~5월 3일, 여행 220~224일 차, 벨기에

독일, 영국, 네덜란드를 거치면서 나의 여행 흐름에는 분명 변화가 생겼다. 아프리카나 터키에서는 기본 계획을 항상 만들어 두고 그 계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으로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식이었다면, 요즘은 애초에 계획 자체를 만들어 두지 않는다. 

나가야 하는 일정이 있다면 그 것에 대한 예약만 해 둔 채 계획 없이 둘러보기 시작했다. 무엇을 보러 가는 것 보다는 호스텔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꽤 길어지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에서 바로 붙어 있는 벨기에에서도 이런 관성은 유지되었다. 내 여행기가 도시별도 아닌 국가별까지 작성된 것도 그때문이겠지.


약속의 나라, 벨기에?

벨기에에서의 일정을 좀 간략화 해보면, 결국은 아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 더 중했던 일정이었다. 예정됬던 건 아니지만 만나기로 한 약속들을 실천하러 간 나라의 느낌이 더 가까운 것 같다. 먼저,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우연이의 친구이자 세계여행자 선배인 쿄를 만났다. 만나서 특별히 무엇을 한 것은 아닌데다가, 처음 만나서 여행얘기, 서로의 이야기를 하면서 독일에서 우연이까지 셋이 만나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겐트로 이동해서는 임 선배와 선배 동생분과 친척분까지 만나게 되서 요리 대접을 했다. 헤이그에서 만나고는 다시 볼 수 있을지 몰랐는데 다시 만난 선배와 그리고 친척동생분들이 부족한 요리를 맛있게 드셔주셔서 감사했을 뿐.


사실 누구를 만났고 무엇을 했고, 어떤 것을 보았는가도 중요할 것 같지만 벨기에서의 일상이 나에게 던진 느낌은 사람들과 만드는 그 시간 자체가 소중하다는 것이었다. 이어질 여행에서도 그런 것들을 소중히 여겨야겠다.


내 지금은, 찬란하다

요리를 하고, 늦잠을 자고, 호스텔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간단한 산책을 하고. 최근 여행은 여유로웠다. 여행이 여유로워 지는 만큼 찾아오는 생각도 많아진다. 달라져 버린 나의 여행 스타일에 스스로에게 많은 고민이 생긴다. 과연 '이 여행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하는 질문이 떠오르는 것이다. 동시에 '여행 끝나면 뭐할 거냐', '여행 왜 하냐'하는 사람들의 질문도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여유를 찾을 때마다 이런 질문들이 떠오르면 답을 쉬이 내리지도 못했고, 여행을 마쳐야 하나 하는 자괴감도 많이 느꼈다. 그런 고민에 휩쌓여서 겐트에서의 생활을 보내고 프랑크푸르트의 대회동(!?)을 계획하기로 하고 독일 행 야간버스를 브뤼셀에서 타기로 하던 날이었다. 그냥 시간 보내는 것이 아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브뤼셀의 야경을 보고 가기로 했다. 브뤼셀 중앙의 대광장(그랑플라이스)을 갔는데, 눈으로 볼때는 놀라지도 않았었다. 이제 이런 야경이 많이 익숙해진 느낌이었을까. 

내 얼굴이 대문짝 만하게 나오는 사진을 건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내게는 의미 있는 사진이라서_

외국인의 도움을 받아 그 야경을 배경삼아 내 사진을 하나 담아냈는데, 담겨진 사진을 보고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반짝거리는 야경 배경을 뒤로 한 내가 배낭을 매고 서있었다. '내 모습이, 이 순간이 이토록 찬란했던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날 것 같이 울컥한 무언가가 안에서 끓어올랐다. 왜 그랬을까. 아마 여행 중에 들었던 생각들과 사람들이 하는 질문들이 어우러저 조밀하게 채워져 있던 내 마음에 조약돌처럼 날아온 그 사진은 파문을 남긴 것 같다. 살면서 우리는 어느 순간 '목표'에 집중하게 된다. 인생의 목표, 올 해의 목표, 오늘의 목표. 나의 목표는 무엇이고 남의 목표는 무엇인지 끊임 없이 확인한다. 그런데 그 목표가 정말 중요한 부분일까. 목표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이 순간, 앞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사진이 내게 '지금 이 순간 넌 충분히 찬란하다. 넌 틀리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듯 했다. 그래서 였던 것 같다. 난 지금 찬란했고, 나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라는 위로 같아서. 누가 내게 내 여행의 목적이 묻는다면 아직도 난 답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뭐 형식적인, 관성적으로 하던 대답을 하겠지만). 하지만 적어도 여행하고 있는 동안 그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찬란할 것이고, 그게 쌓여서 날 만들것이라는 것 만큼은 확실하다. 그러기에 나의 지금은 또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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