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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택 Aug 05. 2017

126. One More Night

2017년 5월 22~29일, 여행 243~250일, 스페인 그라나다 外

발렌시아에서 이동할 때부터 몸이 영 좋지 않았다. 도시를 이동하는 ALSA 버스에 몸을 실고서도 영 찌뿌둥한 것이 몸이 심상치 않았다. 원인을 알 수 없어서 더욱 답답한 상황에서 버스는 이미 그라나다에 도착해 버렸다.

그라나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라가까지. 나에게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은 도시들로 기억 될 것 같은 그 곳에서의 일 주일을 소개한다.


아프기 전 : 방심은 금물

그라나다는 게임 '대항해시대'에서도 등장하는 유명한 항만도시다. 영화 '어새신 크리드'에도 나오는 알함브라 궁을 갖고 있으며, 스페인 내에서도 이슬람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몇 안되는 도시 중 하나이다. 알함브라 궁의 경우 인기가 굉장히 좋아 새벽부터 예약을 해야만 볼 수 있다고. 몸 상태를 봐서 당장은 새벽 예약은 무리인 것 같아 하루 밤을 푹 자고 야경을 본 뒤에 다음 날 알함브라 궁 입장권을 사기 위해 새벽에 이동해야겠다고 계획을 세우고 야경을 보러 떠났다. 알함브라 궁전 내에선 궁전을 볼 수 없으므로 근처 전망대에 가면 알함브라 궁의 전경을 멀리서 볼 수 있다. 전망대로 가는 길 역시 이슬람 문화권에 영향을 받은 듯한 상점들이 있어 눈길을 끌지만 파키스탄과 이집트, 터키를 다녀온 나로서는 큰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다.

알함브라 궁과 그라나다 시내의 전경. 알함브라 궁은 사연도 깊은 궁인데 내가 들어가보지를 못했다.

 야경을 찍고 숙소에 왔는데 몸이 영 아니었다. 하룻 밤 푹 자기도 했고, 밥도 간만에 외식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어는데도 나아질 기색이 없었다. 그 날부터 일 주일 동안 나는 꼼짝없이 앓아누워야 했다. 발열, 소화불량, 설사, 근육통, 오한. 원인은 알 수 없고 이런 저런 증상만 겹쳐서 움직이기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의 아픔이 시작됬다.


아플 때 : One more night

아파서 누워있는 동안은 모든 것이 멈춘다. 아프기 시작하면 빠르게 몸을 낫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로 병원에 가는 것이 가장 현명했다. 여행자에게 있어서 스페인이 가장 의료 복지가 관대한 나라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기 때문이다.원인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아팠고, 가진 약의 한계때문에 해열제, 지사제, 소화제만 연거푸 먹었다. 내가 아마 그라나다에서 지내는 동안에 가장 많이 한 말은 아마 'One more night'이었을 것이다. 예상한 것보다 증상이 해결되지 않아서 숙박을 계속 하루 단위로 늘려야 했으니까. 말라가를 포기하고 그라나다에서 계속 휴식하려고 했지만 One more night도 한계가 있다. 방에 예약이 들어와서 말라가로 이동해야만 하기도 했다. 아픈 몸을 끌고 힘들게 말라가로 이동해서도 One more night은 계속 되었다. 이틀을 예약해놓고 계속 늘려가면서 지냈다. 말라가에서 내 증상은 최고조로 심했는데, 너무 심해서 침대에서 아무것도 못한 채 잠 자고 깨기만을 하루 내내 반복을 한 날도 있었다.

말라가 호스텔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다는 의무감에 누워서 담은 사진.

나중에는 폐부가 아플 정도로 기침이 심해졌다. 증상을 찾아볼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떤 방법이든 시도해보고 안되면 병원에 가야겠다 생각해서 여행커뮤니티를 수소문해 항생제를 얻을 수 있었다. 항생제를 먹은 뒤 이틀이 지나서야 내 증상들이 사라졌다. 일주일 만이었다. 그냥 내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폐렴 초기 증상이나 기관지 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항생제를 먹자마자 증상이 많이 호전되고 이틀만에 나았으니. One more night, 1박을 늘려달라는 의미였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이 연장한 하룻 밤 뒤엔 내 병이 나았으면 좋겠다 하는 염원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아프고 나서 : 뒤늦게 보이는 것들

그라나다는 뭐 본 것도 없이 버렸고, 말라가도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너무 아파서 빨리 가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다른 경우의 수 였던 모로코 행을 포기하고 바로 지인이 있는 캐나다 행 비행기 표를 끊었기 때문이었다. 포르투갈로 이동해서 남은 일정을 보내고 이동해야 했기에 말라가는 단 하루 돌아다녀 볼 수 있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된 몸은 아니지만 뒤늦게라도 볼 수 있는 것들을 보고 싶어서 무리를 해서라도 돌아다녔다. 마치 선물인냥, 하늘은 날 위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극적인 구름을 선물로 주었다.

말라가 시내에서 몸이 다 낫고 나서 처음 찍은 사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름!

말라가에 대해 알아볼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 그냥 지도에 있는 포인트들을 찍으며 움직여야 했음에도 아프고 나서였을까 보이는 모든 것들이 아름다웠다. 역시 여행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신변이라는 사실을 한 번더 깨닫게 된 좋은 기회였다.

말라가 히브랄파로 성에서 본 말라가 전경. 바다와 도시, 그리고 선물같은 구름이 어우러져 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말라가에서 마지막 날에 멋진 날씨와 풍경을 봐서 괜히 떠나기는 싫었다. 하지만 일정은 진행 해야 하는 법. 스페인의 마지막 도시인 세비야에서 더 좋은 풍경,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환경을 허락하길 바라면서 세비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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