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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택 Aug 06. 2017

129. 사람이 더 생각나는

2017년 6월 8~11일, 여행 260~263일 차, 포르투갈 포르토


여행을 길게 하다 보면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이다. 통상적으로 이 질문은 '그곳의 어떤 모습이나 어떤 광경 때문에 좋았는가'를 의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질문은 굉장히 상식적이다. 어느 도시에 가면 항상 무언가를 보게 되고, 그 볼거리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데 누군가 나에게 '포르토는 어땠나요?'라고 물으면 한 동안 대답을 머뭇거릴 것 같다. 포르토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즐겼는지 그런 것이 크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만났던 사람들이 더 기억에 남는 듯하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

포르토는 유명한 항만도시다. 영어 표기명인 Porto도 잘 보면 항구를 의미하는 'Port'를 의미한다. 유럽 대륙의 서쪽 끝부분에 위치(실제 서쪽 끝은 다른 도시이다.)해 있는 이 곳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바다와 연결된 만을 보러 온다. 나 역시 포르토에 있는 만을 구경하러 갔다. 도시 자체가 조금은 오래되었지만 그것이 멋이 되는 도시였다. 특히 색감이 다채로워서 걸어 다니면서 고즈넉하지만 알록달록한 건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전망대 오르기 전, 파노라마로 담은 포르토의 모습. 멀리서 볼 땐 붉은 지붕이 인상적인 모습이지만, 가까이에서는 알록달록!
전망대에서 보는 포르토 전경. 앞쪽에 긴 지붕을 가진 건물들은 와인창고 들이다.

조금 높은 곳에서 보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는 곳(타지는 않았다.)에 올라가 전경을 보았다. 푸른 하늘과 만 그리고 붉은 지붕들이 재밌는 색감을 만들어 낸다. 혼자 보면 무언가를 보는데 크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기 때문에 적당히 보고 다리를 건너 숙소로 복귀했다. 한국 사람 같아 보이는 한 분이 사진을 외국인에게 부탁하는 모습을 보았다. 외국인들의 사진 관념은 한국인들과 크게 달라 부탁하면 항상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냥 지나갈까 하다가 외국인 대신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퍽 만족스러운 사진을 얻으셨는지, 길을 몰라서였는지 다음 투어가 있던 곳의 위치를 아냐 묻는 '현정'씨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었다. 혹시 내일 같이 포르토 시내를 같이 볼 생각이 있냐고 묻자 그러자고 했다. 혼자 여행 다니는 한국사람들은 참 잘 뭉치게 된다.

서울에서 휴가를 내고 왔다는 현정 씨는 포르토를 출발로 해서 스페인을 여행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직장 새내기들 모두가 갖고 있는 문제들로 머리가 아프지만 포르토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충전해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보통 휴가로 오시는 분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같이 함께 시간을 보내서 서로 재밌었다. 아마, 단기 여행자로서 장기 여행자는 늘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하며 자신들이 이루지 못하는 어떤 이상을 대신 실행하고 있는 대리만족의 존재일 수 있으니까. 처음 만난 사람 답지 않게 낯을 가리지 않았던 현정씨었고 덕분에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저녁을 고민하고 있던 현정 씨에게 내가 요리를 해주는 건 어떠냐고 제안해 봤다. 포르토는 물가가 정말 싸서 같은 요리를 해서 먹으면 더 저렴하니까. 다만 내가 1등급 셰프는 아니어서 조금 민망하다는 게 걱정거리라면 걱정거리랄까. 설상가상으로 숙소에 같이 지내는 여행자 언니가 한 분 더 계신다고 해서 졸지에 3인분을 요리하게 되었다. 통상 1, 2인분만 하는 나에게 3인분은 조금 어려운 도전이었다.  내가 그간 연마한 요리실력으로 스테이크와 연어 샐러드를 해드렸는데 조금 급하게 하다 보니 어설펐는데도 현정 씨도 같이 있던 언니분도 맛있게 드셔주셨다. 이맛에 요리를 하는 거지! 밤늦게까지 저녁식사와 와인과 함께 한참을 이야기 나누고 헤어졌다. 혼자 야경을 보고 나서야 나는 숙소에 도착했다. 그 후 포르투갈에서 현정 씨도, 함께 저녁을 먹은 진아누나도 나는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거리에서 만난 발랄했던 현정 씨와 걸었던 맑은 포르토의 거리가, 진아누나도 함께 먹은 그날의 저녁이, 이미 포르투갈을 떠나 북미를 거쳐 중미에 온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

내가 지냈던 숙소는 그렇게 깔끔한 숙소는 아니었다. 포르토 중심가에서는 꽤나 떨어져 있었고, 가격이 굉장히 저렴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내가 하필 방문했던 때에 포르토가 축제를 앞두고 있었어서 가격이 한창 올라버렸던 숙소였다. 그럼에도 내가 그 숙소를 인상 깊게 기억하는 이유는 거기서 함께 만났던 사람들 때문이다.


먼저 용호 씨. 요리를 전공하고 식당에서 일했다고 했던 용호 씨는 처음에는 미식 여행하듯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했다고 했다. 그런데 나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포르토 식재료가 엄청 저렴하다는 것을 안 이후로는 1일 1 스테이크를 하며 보냈다(...). 무엇보다 나에게 맛있는 스테이크 하는 방법을 전수해 주신 셰프님이다! 

페드로, 아프리카 출신의 독일인인 그는 자기가 태어난 대륙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쳤다. 작금의 청년 문제에 대해서 용호씨와 식사하면서 한참 이야기 했었다. 구조적인 문제 뿐 아니라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까지 함께 이야기 했던 속깊은 친구였다. 쾰른에 가게 되면, 그리고 그가 한국에 오게되면 꼭 다시 보자는 약속을 했다. 보통 이런 약속들은 지켜지지 않는 약속인 경우가 많지만, 내가 굳이 이렇게 기억하는거 보면 퍽이나 이 친구가 맘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포르토 숙소를 함게 했던 용호씨, 섭이형, 나, 페드로. 마지막 프랑스 친구는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사실 굳이 이 글을 쓰는 가장 큰 목적중의 하나는 숙소에서 만난 가장 감사한 분인 '섭형님'이었다. 나와 같은 방을 쓰는 섭형은 원래 굳이 이런 여행자들의 만남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나도, 섭형도 본능적으로 우리가 굉장히 비슷한 사고를 갖고 있음을 방에서 묘하게 느꼈고, 와인을 나누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는데 정말 소름돋게도 형님이 처했던 과거의 상황이 나의 상황과도 유사했다. 형님의 지금 모습이 내가 시도하려는 모습이기도 하면서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무엇이 됬던 상택씨가 해보고 싶다면 용기내서 하세요,
지금 여행한 것 처럼 하면 되잖아요!' 


여행이 길어지고, 돌아갈 날이 가까워질 수록, 그리고 수많은 여행자들을 만날 수록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섭형이 해주셨던 그 한마디와 그에 대한 설명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용기있던 사람이었고 그 용기로 여기까지 왔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돌아가더라도 그 용기를 다시 발휘해서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것이었다. 시간이 우릴 그렇게 많이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유럽 대륙의 마지막 도시, 포르토가 본 것도, 즐겼던 것도 거의 기억이 남지 않는 곳이되었다. 하지만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시간이 오롯히 남아 내 기억에서 쉬이 지워지지 않는 곳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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