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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택 Aug 09. 2017

130. Canadian Dream?

2017년 6월 12일~7월 9일, 여행 264~291일 차, 캐나다

유럽대륙의 마지막 국가였던 포르투갈을 마치고 향했던 대륙은 북미였다. 남미를 가는 것이 비용적으로는 더 저렴하지만, 아프고 났던 직후여서 급하게 예매했던 캐나다였고 무엇보다 교회에서 오랫동안 가족끼리 알고 지낸 '정 사장님'(편의상 그 편이 좋겠다.) 이 지내고 계신 곳이었기 때문에 눌러 앉을(!) 목적으로 향했던 캐나다였다. 캐나다에서 약 4주 정도 지냈는데, 주로 토론토에 본거지를 두고 왔다갔다한다던가 방에 누워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여행기를 지역별이 아닌 테마별로 묶어서 정리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첫번째 테마는 기회의 땅 캐나다에서 있었던 나의 노동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작은 정 사장님의 일

포르투갈에서 비행기로 약 8시간 정도 이동하면 도착할 수 있는 캐나다 동부의 중심도시 토론토. 오랫동안 알고지내던 정 사장님 댁에 한 달 정도 지내기로 했다. 출발 전 부터 캐나다에서 간략하게 찾아보기는 했는데 성수기가 시작된 입장에서 서부든 동부든 여행을 움직이는 것이 금전적으로 꽤 부담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나는 보통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니까, 프로백수가 아니고 그냥 백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처음 하루 이틀은 피곤함이 덜 풀려서 잠을 자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이상이 지나니 그것은 꽤나 무료한 것이다. 그 때 쯤이었다. 정 사장님의 아드님-그러니까 나랑은 세 살차이 나는 동생이지만 나는 그 역시도 '작은 정 사장'내지는 '정 사장'이라고 불렀다-이 나타나 컴퓨터를 좀 사고 싶다라는 떡밥을 던져주었다. 아니, 이건 떡밥이라기 보다는 거의 명령에 가까웠다. 우리는 이틀 동안 함께 컴퓨터 부품을 알아보고 가격을 검색해가며 견적을 뽑았고, 견적이 뽑히자마자 배포가 큰 정사장은 1,000CAD (한화 약 90만 원)을 통크게 긁어버린다!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던 그는 매장에 달려가 부품을 수령하였고 '거 시원하게 빨리 조립 좀 해보시오!' ... 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노동 근성이 발휘한 내가 정 사장님이 업장에 가 계신 동안 그 컴퓨터를 조립해 버린다. 

과거 용산 바닥을 누비던 나의 날렵한 손놀림(?)으로 컴퓨터는 금새 조립이 완료되었고 정 사장님은 크게 만족해 하셨다. 이 것은 캐나다에서 시작된 나의 첫 노동의 발자국이고 그 뒤에 따라오는 진정한 노동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노동의 역습, 큰 정사장님의 등판

내가 지내고 있던 집의 정 사장님은 정원 관리(Gardening)나 집의 이 곳 저 곳의 인테리어를 꾸미는 일을 하고 계셨다. 한국에서 일 하시던 분야와는 조금 다르지만 본인 께서 꽤나 즐겁게 일을 하시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와중 집에서 시체처럼 누워 유튜브를 보는 나의 모습을 보시고는 '상택이 친구들 부탁 처럼 사람 멩글어 줘야 겠다!'라고 생각이 드셨던 모양인지, 같이 일을 하러 가지 않겠냐고 제안하셨다. 그 전까지 나는 정 사장님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순순히 '아이고, 그럼요! 밥을 축낼 수 없지요!'하고 따라나섰는데 이 것은 나의 캐나다 여행의 판도를 조금은 뒤집어 버리는 놀라운 일의 시작이었다.


캐나다에서 가드닝이든, 인테리어든 이런 시공에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은 해당 가정 집주인과 함께 자재비용부터 인건비까지를 총 견적내게 된다. 그렇게 해서 따낸 집의 시공을 시작하면, 개인 혹은 업체가 알아서 자재를 준비하고 그 시공을 진행하게 된다. 정사장님은 이런 일들을 주로 혼자 하고 계셨다. 그래서 내가 함께 하게 된 첫 임무는 '자재 구매'였다. 물론 내가 산 것은 아니고, 작은 정 사장님과 함께 각종 자재와 공구를 파는 대형 마트인 홈 디포(Home depot)에 따라 간 것이지만. 북미의 만물 상자라고 불리는 홈 디포는 규모부터 소유하고 있는 물건 까지, 공사에 관련해 없는 것이 없는 곳이었다. 

지금 저 나무 다 차에 실어야 하는거, 실화입니까?

정 사장님 말씀하시길 '홈 디포에 있는 자재로 집도 지을 수 있다.'라고 할 정도로 북미는 DIY(Do It yourself)가 철저히 보장되는 환경이다. 아니, 보장된다기보다 물가가 비싸니 다들 스스로 만들거나 수리하는것이 익숙하기에 이런 매장이 운영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정 사장님은 집의 데크(그러니까, 발코니 같은)를 만드시기 위해 어마무시한 나무 더미들을 사셨다. 그 나무들을 실는 것이 첫 임무였는데 첫 임무 부터 쉽지 않았다. 그 후로 약 세 번정도 정 사장님과 함께 일을 따라 나섰는데 겉으로 표현은 안했지만 꽤나 골병 날 지경이었다. 이 것을 거의 매일 하시는 정 사장님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진짜 캐내디언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

일은 나와 정 사장님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일을 돕는 헬퍼 역할을 하시는 한 분이 함께하셨다. 했던 일의 종류에 따라 오시는 분들은 달랐고, 나는 그 분들의 성만 듣고 '박 사장님'이라던가 '최 사장님'이라고 호칭해야 했다. 그 분들은 보통 가족이 한국에 있거나 캐나다로 유학 와있는 상황에서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일 하시는 분들이었다. 약 10년 전 쯤부터 이주하여 캐나다의 선진화 되어 있고, 여가가 보장 된 '더 나은 삶'을 찾아 오신 분들인데, 와서 일이 계속 될 수록 그 것을 영유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힘든 것들을 감당해야 한다고 느끼셨다고 했다. 정 사장님이나 그 분들이 하는 가드닝이나 인테리어가 물론 이 곳에서 천하게 취급받는다거나 하지 않는 다는 점은 좋지만, 그만큼 몸이 고되고 힘들다. 아마 다른 업종은 다른 업종의 고충이 있겠지. 아무튼, 이민 생활이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하고 호락호락 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매력적인 부분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요즘도 '캐내디언 드림'을 꿈꾸며 캐나다로 향하고 있다. 나에게 일을 같이 하던 한 사장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학생도 올거면 조금이라도 빨리 시작해보는게 좋을거야. 빨리 시작하면 과정에서 오는 피로도 덜하고, 돌아 봤을 때 후회가 남는다던가 하는 경우도 적으니까. 쉽게 시작할 순 없어도, 하고나면 꽤 괜찮아, 이런 삶도.'

분명 외국에서의 삶이 편하고 좋을 것이다. 최근 한국이 향하고 있는 방향을 보노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여행 출발 전, 내가 시도하고 싶었던 계획 중에 하나도 이민이었으니까. 그런데 여행 때문일지, 그냥 내 변화 때문일지, 한국에서 내가 지내는 곳에 대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작은 욕심도 꿈틀 거린다. 그래서인지 그 말이 예전같았으면 쉽게 끄덕일 말임에도, 쉽게 끄덕여지지가 않았다.


아무튼, 좀 정리해보자면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나 이민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만을 보고 우리는 '이민 생활이 정말 좋구나..' 라고 빠르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게 되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들을 영유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궤도에 오르기 까지가, 그리고 궤도에 오르고 나서의 자신의 모습을 돌아봤을 때가 그렇게 생각보다 행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캐내디언 드림을 꿈꾸는 모든 분들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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