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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상택 Aug 26. 2017

139. 일상으로 시작하는 중미

2017년 7월 25~8월 2일, 여행 307~315일 차, 멕시코

캐나다와 미국을 포함한 약 6주 간의 북미 여행이 끝났다. 원래는 미국에서 비행기를 이용하여 남미 국가로 이동한 뒤 남미 여행을 시작하려고 했다. 내 개인적으로 불어 닥친 여러 가지 변수들과 더불어, 괜시레 육로로 미 대륙을 정복하고 싶은 욕심(!?)을 누군가 불을 붙여 주어 팔자에도 없던 중미 여행을 결심하게 된다. 샌디에이고에서 미국과 멕시코의 접경지역인 티후아나에서 국경을 넘은 뒤 국내선을 이용하여 멕시코 시티로 향했다. 중미의 첫 베이스캠프이자, 가장 일상적인 것으로 여행의 스타트를 열게 된, 그 멕시코 시티였다.


아프리카의 전우, 중미의 전우로!

중미 여행을 결심하게 된 것은 아프리카 여행의 동반자였던 우꾼(ttomot.tistory.com)이 가장 컸다. 캐나다에서 불법 외국인 노동자(?)로 활동하고 있을 때, 일정 마지막에 우꾼이 토론토로 왔었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중미에 가볼 생각이 없냐고 제시하였다. 본인에게도 조금 어려운 여행지 일 수 있고, 나에게도 계획에 없던 여행 연장이 찾아온 만큼 중미를 함께 여행하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였다. 

멕시코 시티 소칼로 광장 어딘가에서, 우꾼 (흰옷 아님)

결론적으로 나는 멕시코행을 선택했고, 그와 함께 중미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속도감 있고 여러 나라를 방문하기를 좋아하는 우꾼과는 조율이 필요하겠지만 아프리카 여행 때처럼 행복한 순간들이 많을 것 같아서.

하루 먼저 내가 숙소에 체크인을 했고, 그 다음날 바로 우꾼이 합류하면서 중미 여행의 서막이 열렸다. 아프리카의 전우가 이제는 중미의 전우가 되었고, 내 개인적으로는 가장 긴 여행 동행자가 되었다. 

합류한 이후 우리는 처음 며칠을 밀린 블로그와 더불어 밀린 휴식을 몰아서 했다. '우리 이렇게 오랫동안 쉬어도 되는 거야?'라며 서로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된 답변하지 않은 채 그냥 쉬었다. 어려울 것만 같았던 중미 여행은 익숙한 친구와 함께 익숙한 일상으로 시작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멕시코를 만나다!

나는 마음 같아서 며칠이고 한량 짓하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태생이 부지런한 우꾼은 '뭐라도 보고 오자!'라는 의견이었다. 나 역시도 양심의 가책 (?)이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숙소 주변 산책뿐 아니라 조금 더 나가 멕시코 시티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보기로 했다. 멕시코 시티는 다른 멕시코 내의 도시에 비하면 볼거리가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내가 멕시코에 있음을 짙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숨어 있었다!

고기에서 우러난 기름에 양파까지! 토르티야에 싸먹는 타코는 정말 일품
나와 우꾼이 머물던 BnB 근처에서 팔던 인생 타코 맛집 주인아저씨! 아직도 저 타코집이 생각이 날 정도.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타코(Taco)! 멕시코 사람들의 일반 식사 메뉴 중 하나이며 가장 대중적인 음식이 아닐까 싶다. 얇게 반죽하여 익힌 토르티야(Tortilla)에 맛있게 익힌 고기와 치즈 등을 여러 야채와 소스(멕시코에서는 Salsa라고 한다)를 얹어 싸 먹는 타코는 멕시코 길거리부터 레스토랑까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음식이다. 길거리에선 하나에 4~6백 원 정도면 먹을 수 있는 저렴한 음식인데도 고기와 탄수화물, 비타민까지 없는 게 없는 완전체 음식인 데다가 맛은 또 어떠한가! 가게마다 조리법이 조금씩 차이가 있고 손맛이 다르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먹는 타코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그 어느 곳보다 나와 우꾼이 지내던 BnB앞 빨간 옷 아저씨들의 타코 집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육향이 짙게 배인 내장 볶음을 넣은 타코는 인생 음식이었으니까!

소칼로 광장에 자리잡은 소칼로 성당. 스페인에서 볼 수 있는 건축양식이 그대로 녹아 있다.

멕시코 시티의 대표적인 볼거리 중 하나는 소칼로(Zocalo) 광장이다. 스페인에게 지배받던 시절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광장이며, 몇 골목 들어가면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시장 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공공 기관의 건물도 이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경찰들이 지키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아쉽게도 내가 갔을 때에는 이 광장이 공사 중이어서 넓고 멋있는 공장의 전경을 볼 수는 없었다. 

차풀페텍 성의 모습. 멋진 외관만큼 내부 볼거리도 풍성하지만, 아쉬운 점이 많다.

멕시코 시티의 전경을 볼 수 있으며 여러 문화재들이 많이 보관된 차풀테펙 성(Chapultepec)은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았다. 물론, 멕시코 학생증이 있으면 무료로 방문할 수 있지만 내부에 전시된 모든 전시물에 대한 영어 설명이 하나도 없다! 단 하나도! 멕시코가 아무리 스페인어 권 국가라고는 해도, 국가적으로 경쟁력이 될 만한 저런 전시물들에 대한 영어 설명이 하나도 없는 것이 (심지어 수도에 있는 것인데도!) 어이가 없었다. 누군가 차풀테펙에 멕시코 시티의 전경이 아닌 내부를 보러 간다고 하면 전시물보다는 차라리 벽화를 보라고 하고 싶다. 중미에 불었던 벽화운동이 예술로 승화된 것 들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차풀테펙의 영어 한 단어 없던 안내 표지판을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난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혜자(가격 대비 성능비가 훌륭한 것을 빗대어 이르는 말)'스러운 시설과 유물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 있으니, 차풀테펙 성을 나와 공원을 지나면 나오는 멕시코 인류학 박물관이다. 역시 멕시코 현지 학생증이 있으면 무료로 방문할 수 있는데, 인류의 시작으로부터 멕시코에 주로 있는 고대 아즈텍, 마야 문명을 비롯하여 현대 멕시코인들의 삶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박물관이다. 영어로 설명도 충실히 되어 있으며 보유 중인 유물들도 상당하므로 꼭 가서 보기를 강력 추천한다!

박물관 뒷 편, 마야 문명 유적지를 재현한 공간.


멕시코, 방심하지 말 것!

중미 오기 전부터 여러 가지 말들을 많이 들어서 긴장을 많이 했지만, 그것에 비해 멕시코 시티는 경찰들도 많이 배치되어 있고 생각 외로 치안이 잘 유지되고 있었다. 고 하지만 항상 자신의 물건은 조심해야만 한다. 사람이 많은 곳에 움직일 때는 반드시 소지품을 유의해야 한다. 나와 우꾼도 멕시코 시티를 돌아다닐 때 저렴하다는 이유로 지하철을 자주 탔는데, 지하철을 타고 내리고 나니 끈에 묶어두었던 무언가가 사라졌다(...) 가져간 줄도 모르게 가져가서 그들의 손기술에 감탄했다. 없어지는 것이야 장기 여행자에겐 항상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 큰 멘붕은 없었지만... 항상 여행지에서 방심은 금물이라는 사실을 한 번 더 깨닫게 해주는 멕시코였다.


테오티우아칸, 아즈텍 유적을 마주하다

몇 일간 목적 없는 휴식은 우리를 굉장히 게으르게 만들었다. 나도, 우꾼도 바쁘고 지친 북미여행때문인지 의욕적으로 뭔가를 해야 겠다라는 생각을 함부로 못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멕시코에 세월아 네월아 있을 수도 없었기 떄문에 반드시 움직여야 했다. 간단한 계획과 더불어 곧 주일이 다가오니 예배를 위해 교회를 방문하기로 했다. 한인 교회에 단순히 방문하는 것은 아니었고, 우꾼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목사님이 사역하고 계신 사역지에 가게 된 것인데, 이 곳에 방문한 것이 우리의 권태를 아주 적극적으로 벗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우리 예상보다 거리가 꽤 되었기 떄문에 스스로 방문할 수 없어서 목사님께서 직접 데릴러 와 주셨다. 12년째 멕시코 시티에서 사역 중인 교회였고 규모도 생각보다 컸는데 일련의 일들로 되려 작아지신 거라고. 미국에서는 더 작은 규모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었고 아프리카나 서남아시아를 생각해 보면 교회도 깔끔해 간만에 한국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느낌으로 예배를 드렸던 듯 하다. 사모님께서는 나와 우꾼이 세계일주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멕시코 시티 근교에 안가본 곳이 있다면 거길 다녀와 보시는게 어떨까요'하며 제안해 주셨다. 덕분에 목사님의 차로 원래 나와 우꾼도 가려고 했던 아즈텍 유적지인 테오티우아칸을 교회 청년들과 함께 방문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테오티우아칸 가는 길. 산을 따라 이어진 지붕들이 예쁘게만 보인다

테오티우아칸은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하고 큰 유적지 중 하나이다. 너른 벌판에 신단과 같은 형태의 사각 피라미드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 모든 구조물들을 누가 지었고, 언제 지었는지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고 한다. 테오티우아칸 유적지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이다.

입구에서 보이는 태양의 피라미드. 피라미드의 알록달록한 것은 장식이 아니라 사람이다 (...)

피라미드라는 구조물 자체가 아직도 정확한 목적이나 의도가 파악된 바가 없다. 하지만 이 곳의 피라미드는 그 목적은 다소 명확한 편이다. 바로 인신 공양이 이루어졌던 제단으로서의 기능을 했다고 한다. 정상에는 과거에 커다란 은으로 만든 장식품이 있어서 인신 공양 후 그 곳으로 오는 태양 빛을 받는 의식도 했다는데, 지금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사람들이 정상에 올라가 그 자리에서 팔을 벌려 태양의 기운을 받으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그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는 정상에 올라간 기념사진을 찍기 바빴다.

목사님 꼐서는 아즈텍 문명들은 대체로 계산이 잘 되어 있어서 짜여진 듯 잘 맞춰있는게 특징이라고 하셨다. 나중에 보게 될 마야 문명들은 그보다 엉성하고 곳곳에 흩어져 있어 보존상태도 엉망이지만 그만큼 손타지 않은 느낌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해주셨다. 커다란 피라미드에 직접 올라가 볼 수도 있었고, 멋진 고대 문명을 봐서도 좋았지만, 나중에 보게 될 마야 문명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지는 테우티오아칸이었다. 아,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돌아가는 길에 목사님께서 먹어보라고 무언가를 사주셨는데, 선인장 열매라고. 데킬라도 선인장을 이용한 술이고, 선인장을 구워서 먹기도 한다고. 내가 멕시코에 있긴 하구나!


권태를 벗고, 둥지를 떠나다

원래는 테오티우아칸을 본 다음 날 다음 목적지인 칸쿤으로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봐두었던 항공권이 결제 오류가 나서 계속 구매가 되질 않았다. 숙소 예약은 정해진 기간이 있었고, 별 수 없이 하루를 더 멕시코시티 어디에선가 지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사모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뻗어 주셔서 하룻 밤 목사님 댁에서 지낼 수 있었다. 사모님은 우리를 너무 대견스럽게 여겨주셔서 식사 자리에서도 이런 저런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자주 연락을 주고 받으며 우리의 여행을 지켜보셨다고 해 주셨다. 다행히 사모님과 목사님 덕택에 강제 이동(!?)도 하고 하룻밤 좋은 곳에서 묵으며 권태를 벗을 수 있었다. 이제 중미 돌파를 위한 발걸음을 내딛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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