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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타조 Jun 18. 2020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일터 들여다보기

"우리가 하는 일은 말이야...

 조금 손해 보더라도 누구를 도우는데 가치를 두어야 해. 작은 것을 먼저 챙겨서 팀장, 임원이 되는 것보다, 내가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에 의의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거의 끝나가면서, 그간 고생해준 프로그래머를 위한 환송 회식을 했다. 회식이 끝나고 마침 같은 방향의 지하철을 타기 위해 둘이서 같이 걷게 되었다. 두 달 약간 넘는 기간 동안, 일정에 비해 많은 요구사항을 전달했고, 그럼에도 묵묵히 일해준 것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더군다나 사람을 대하는 진지함이 마음에 들어 동생 같은 마음이 생겼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인생 후배로, 같은 업을 막 시작한 동료로서 그의 수용 여부와 상관없이 선을 넘는 오지랖을 떨었다.




직장 인생의 멘토인 J와는 이십 대 끝자락 즈음부터 함께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토목과 출신인 내가 IT 회사로 입사하여 얼마나 어리바리했을까 싶지만,  것조차 품어준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회사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J가 말했다.
"야, 너는 토목과 출신이 왜 IT에 온 거야? 너 같은 녀석들이 오니까,  IT 하는 사람들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말을 듣는 거야."

J는 내 하나하나를 다 살펴주었다.
한 번은 전표 관련한 프로그램 코딩을 잘못해서 결산 사고가 났다. 회계팀 실무자와 실랑이를 벌이게 되었는데, J가 나서서 실무자와 팀장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일방적인 나의 잘못이 아니라, 업무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은 실무팀도 원인이 있으며, 잘 해결해 주겠으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다. 그리고는 주변 동료들과 건건히 데이터들을 수정하여 마무리해 주었다. 이런 일 외에도 제때 개선 일정을 맞추지 못하면 어려운 프로그램 부분은 몰래 코딩해 놓거나, 자존심 상하지 않을 만큼, 적정한 사람을 붙여주기도 했다. 기술적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인간관계 고민도 밥과 술로 풀어주었다. 그중 가장 좋았던 기억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해 줄 때였다.

"이 친구 전공이 토목인데, 시스템 잘 만들려고 IT로 직업을 바꾸었데요. 건설 회사에 딱 맞는 인재죠."

건설사의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나의 업으로 삼도록   박았다.

 

17년을 함께 했다. 같이 일한 지 7년 정도 되었을 때, J는 퇴사를 했다. IT회사는 더 이상 맞지 않는다며, 고객사였던  회사이직했다.  몇 년 후 나도 J가 있는 구매부서까지 따라갔다. 

근데, 문제가 있었다. 구매부서에 있는 IT 엔지니어, 이 두 사람 조직의 이방인이었다. IT인들이 열심히 하던, 그렇지 않던 구매부서 사람들지 못했다. 수고 많다고 칭찬해도 그 포인트가 잘못될 때가 많았고, 화를 낼 때도 우리 사정을 모르기에 설명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았다. 사람들은 우리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고, 그들의 칭찬과 위로는 우리 공감을 끌어내지 못했다.


우리 일의 가치를 어디서 찾을까, 일의 보람을 어디서 느낄까를 두고 술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임원과 팀장이 몰라줘도, 평가를 좋게 주지 않아도 개의치 말자고 했다. 우리가 선택한 이방인이니, 그들의 몰이해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말이다. 보다 우리가 아야 할 은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기술로 도와주는 것이며, 우리가 챙겨야 할 것은 고맙다는 인사말과 잘 풀려서 웃는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맞추었다.

말이 좋았다.

일의 가치는 사람들의 웃음에서 찾자는 말이 좋았다.




J는 떠났다. 이방인은 이제 혼자이다. 둘이 하던 일을 혼자 하게 되면서 일은 많아졌고 고되 졌다. 무엇보다 서로 부르던 응원가를 듣지 못해 아쉽다.


회식을 마치고 생뚱맞게 2개월 보름 같이 일한 프로그래머를 붙잡고 일의 가치를 말했다. 그 말을 해주고 깊었다.  또 그건 나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J가 그립기도 했고, 고단한 현재에 나에게 위로하는 말이기도 했다. 지금도 변치 말자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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