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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타조 Dec 22. 2020

엄마표 소고기 뭇국

감정 들여다 보기

"역시 엄마가 해주는 소고기 국이 제일 맛있네."

오랜만에 먹는 엄마표 음식을 한 숟갈 뜨고 나온 말이었다. 아들의 갑작스러운 고백이 그렇게 좋았던지, 엄마도 오랜만에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그렇다고 내가 듣기 좋으라고 거짓을 보탠 것도 아니었고, 소고기 뭇국만큼은 정말로 엄마표가 가장 좋은 게 맞다.


끼니때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음식을 집밥이라 한다. 어릴 때는 그런 말이 없었는데, 외식 문화가 발달하고 객지 생활이 흔해지면서 집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 집밥 역사에도 계보가 있어왔다. 성년이 될 때까지의 대부분은 엄마표가 집밥의 원천이었고, 아주 어릴때는 집과 오분 거리 밖에 안되는 할머니의 호박잎 쌈밥, 밥위에 올린 된장, 깻잎과 콩잎 같은 것도 집밥의 범주였다. 하숙하며 살던 대학교때는, 그중 가장 오래 묵었던 하숙집이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의 솜씨 또한 집밥의 맛이 났다. 그리고, 결혼하고 지금까지는 아내의 음식들이 집밥으로 차지하는 중이다. 뭐가 낫냐고? 뭐, 어려울 것도 없다. 엄마 밥 시절은 그때가 최고였고, 가끔 먹는 할머니 밥도 운치가 있었으며, 하숙집 밥은 타지 생활을 달래주는 대안적 집밥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서서히 궤도를 수정하듯 아내의 맛에 나의 입맛도 맞춰졌다. 나이와 환경에 사는 법이 변해왔으니, 내 입맛도 변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예나 지금이나 공통적으로 먹는 메뉴 중에는 특출난 기억이 나는 메뉴가 있는데, 그 중에 소고기 뭇국만큼은 엄마의 맛이 최고로 남아있다.




한 번은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러 갔을 때였다. 어느 식당에 소고기 뭇국이 메뉴판에 있었고 나는 주저 없이 주문했다. 그런데, 잠시 후 나온 멀건 외모(?)를 보고는 마치 주문이 잘못된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소고기 뭇국이라고 했고, 그때서야 서울형 소고기 뭇국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경상도의 소고기 뭇국만이 빨간색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허참, 이딴 걸 소고기 뭇국이라고.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소고기 뭇국은 말야...'

무와 파와 소고기가 넉넉하게 들어가고 붉은 기름이 떠있던 엄마표 소고기 뭇국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지난 금요일, 갑작스러운 부모님의 호출로 고향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까지 셋이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결혼 후에는 항상 아내나 아이들이 같이 있었고, 셋이서 식사하는 경우에도 외식을 주로 했으니, 고향집 안방에서 셋이 먹는 식사는 꽤나 오랜만의 일이었다. 작은 아들이 한끼 대접하고 싶은 마음으로 어떻게 먹을까 고민이 되었다. 냉장고 음식으로 대충 먹기에는 성이 차지 않았고, 외식하기에도 코로나 때문에 찜찜했다. 결국 적당한 식재료를 사 와서 해먹어야 했는데, 몇 가지를 생각하는 중이었다.

"아들아, 소고깃국 끓일까?"
엄마가 먼저 말했다. 두말할 것 없었다.

어린 시절의 소고기는 쉽게 접할 수 있는 먹거리가 아니었다. 요즘이야 숯불과 불판 위의 소고기가 흔해졌지만, 그때는 정말 언감생심의 존재가 바로 소고기였다. 찌개나 국에는 가끔 등장했는데, 그마저도 넉넉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된장찌개 속 소고기는 유사한 모양 때문에 낭패 본 기억이 있고, 소고기 뭇국의 소고기는 감질맛 날만큼 양이 적어서 아쉬울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엄마가 끓여준 소고기 뭇국은 항상 좋았다. 막 끓여낸 소고기 뭇국은 그 특유의 얼큰함과 시원함 때문에 금세 한 그릇을 비우고도 또 밥 한 주걱과 국자 두어 번을 얹어 먹기도 했다. 기억컨데, 확실히 엄마표 집밥의 베스트 메뉴였다.

 

엄마가 요리하는 동안 거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 레시피를 직접 취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주방 보조처럼 옆에 딱 붙어서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레시피라고 글로 남기기에는 계량컵, 스푼 따위 없이 손과 숟가락으로 휘리릭 해버리는 바람에 정확한 기록을 남길 수 없었다. 다만, 들어간 식재료를 대략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고, 그렇게 완성된 국의 양이 5~6인분 정도 였다.


[재료들]
- 국거리용 소고기 1근 (양지)
- 무 1개 : 3 ~4센티가량으로 
- 대파 4개 : 흰 부분은 2센티, 녹색 부분은 5센티가량 슝슝
- 다진 마늘 6~7개 : 식칼 손잡이 끝부분으로 퉁퉁
- 양파 1개 : 대충 크게 어떻게 잘라도 상관없어 보임
- 국간장, 참기름, 고춧가루 : 양을 확인 못했음.

[조리 순서]

1) 적당한 두께로 썰은 무와 소고기를 큰 냄비에 때려 넣고는 참기름을 넣고 살살 볶는다.

2) 어느 정도 고소하게 지글거리면, 소고기의 색이 변하고, 무에서 물도 제법 나온다. 그러면, 냄비속 무와 소고기를 넘기고도 500cc가량의 물을 더 넣는다.  

3) 물이 끓기 시작하면, 미리 준비한 파, 양파, 대파, 다진 마늘을 한꺼번에 쏟아 넣는다.  국간장과 고춧가루도 넣는다. (국간장 두 스푼, 고춧가루 세 스푼 정도 되었던 것 같다)

4) 이렇게 모든 식재료를 넣은 뒤, 끓는 상태로 15분가량 지속한다.  (오래 끓을수록 좋다고 했다.)


역시 일품이었다. 기대했던 그대로였고, 그때처럼 두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몇 해 전에 엄마에게 찾아온 뇌졸중은 말과 행동뿐아니라, 엄마표 집밥마저 빼앗아 갔다. 산만하게 흐트러진 주방 상태도 그렇고 식재료들을 다듬는 일도 예전 같지 않아 보였다. 조리기구를 다루는 일은 더욱 그래 보였다. 그래서, 요리하는 데도 한참이 걸리니, 지켜보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엄마표 집밥을 이제는 먹어보지 못하는 건가 아쉬워하다, 소고기 뭇국에 감사를 했다.


소고기 뭇국 만큼은 건재하고 있었다.

"역시, 엄마가 해주는 소고기 국이 제일 맛있네."

뭇국 맛이 좋았고, 웃어서 더 좋은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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