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단어 짓기(바다, 벚꽃, 비)
세상이 불타는 느낌이다. 온종일 여기저기서 불이 났다는 소식이 전해져 온다. 어떻게 이런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지 믿기지 않지만, 세상은 믿을 수 있는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니니까. 하필 그게 불이라니. 얼마나 더 태우고 꺼질는지, 가느다랗게 내리는 비로는 이미 번진 불을 잡기 부족하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내리는 비가 고맙기만 하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길가에서 벚꽃이 드문드문 피었다. 팝콘을 터뜨리기도 전에 내리는 비에 벚꽃 잎은 이미 후드득 떨어졌지만, 벚꽃이야 이번 봄에는 아무렇게 피어도 좋을 듯싶다. 그저 하루빨리 불길이 잡히길 바랄 뿐.
내가 있는 곳과 거리가 멀어 소식을 뉴스로 접하는 게 다지만, 한 지인의 친구는 곳곳에 타는 냄새가 난다고 했다. 산림이 타고 있는 것도 슬프고, 며칠간 타는 냄새를 맡는다는 것도 얼마나 괴로울까 싶다. 그리고 불을 끄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많은 사람들,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나는 그저 멀리서 그분들의 안녕을 빌어본다.
작은 부주의라고 했다. 여느 때처럼 쓰레기를 소각하고 남은 작은 불씨가 옮겨 붙고 옮겨 붙어 여러 그루의 나무와 산과 그 속에 있는 크고 작은 생명체를 위협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산림이나 태워 먹으라고 인간에게 불을 준 게 아닐 텐데. 뒤늦게 곳곳에서 간절히 비를 바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도 그중에 하나다. 멀리서 일어나는 일에는 무감해서, 뉴스를 볼 때야 어떻게 하나 싶지만, 그새 잊고 내일의 계획을 세운다.
친구는 다가오는 주말에 바다에 간다고 했다. 연말에도 쉬지 않고 일한 자신에게 주는 휴가란다. 하필 이런 때에 여행인가 싶지만, 불이 나기 전에 끊어둔 기차표를 날리고 싶지 않다는 친구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친구에게 하루의 시간은 잘 나지 않는 귀한 시간이라, 고개가 끄덕여진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주말 하루를 혼자서 보낸다고 하니 어쩐지 집안일도 더 열심히 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녀가 떠나는 주말께에는 더 이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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