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알에 담긴 마음

by 박수민

어릴 때 우리 집 근처에는 대추나무가 있었다. 누구네에서 키우던 것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는 이웃집에 왔다 갔다 하며 놀았으니 놀러 다닌 집 중 하나겠다. 가을쯤이면 대추가 열렸고, 선명한 초록빛의 대추를 몇 개씩 따먹었다. 아삭하고 달큼한 맛. 이상하게 갈색빛이 돌면 대추 먹기를 멈추었다. 어린 눈에 갈색의 대추는 맛있어 보이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한 후로 더 이상 대추나무를 볼 수 없었고, 눈에서 멀어지니 서서히 기억에서도 지워졌다. 가끔 만나는 대추는 삼계탕에 들어간 것이었다. 쪼글쪼글하고 축축하게 물기를 머금고 있어 어린 날의 대추와는 달랐다. 발견하면 건져내기에 바빴다. 대추를 먹을 일이 없으니 대추에 대한 기억도 잊었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대추를 선물 받기 전에는 말이다.

친구네에 들렀는데 차를 내어준다고 했다. 친구는 차를 즐겨 마시는데, 자그마한 잔에다 차를 조금씩 덜어준다. 그렇게 마시는 차 맛은 몰라도 마음이 차분해져서 좋다. 게다가 다기도 예뻐서 보는 맛도 있다. 그때 친구가 차와 함께 마시라고 대추칩을 내놓았다. “웬 대추?”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친구의 성의에 하나 집어먹었다. 생각지도 못한 식감에 놀랐다. 바삭바삭해서 마치 과자 같았다. “와! 대추 생각보다 맛있다”라고 했더니 “그렇지. 집에 갈 때 챙겨줄게. 가져가”라는 친구다.

생각보다 맛있었지만, 차보다 커피를 즐겨 마시고 그조차도 친구처럼 예쁘게 차려놓고 마시는 건 아니어서 거절했다. 그런 내게 “자기 전에 조금씩 먹고 자. 심신에 좋대”라고 한다. 곧잘 수면장애를 앓는 나를 배려한 친구다.


고마운 마음에 대추를 가져와서는 아끼는 그릇에다 대추칩을 한 줌 꺼냈다.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먹다가 어릴 적 달큼한 대추가 떠올랐다. 색감과 식감은 다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 대추는 달큼하고 행복한 맛이구나 싶었다. 친구가 말한 심신의 안정은, 어쩌면 대추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친구의 마음 덕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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