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

by 박수민

낯설고 잘 모르는 대상이라도 좋아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게는 ‘뱅쇼’가 그렇다. 레드와인을 끓이고 그 안에 오렌지와 계피를 함께 넣어 만든다는 정도만 안다. 그리고 그것이 감기에 좋다는 것도. 와인이었던 그것은 끓으면서 알코올을 죄 공기 중에 날려 보내고는 술도 음료도 아닌 빨갛고 뭉근한 액체로 변한다.


예전에 다닌 회사는 지하철 역에서 아주 멀었다. 도보로 20여 분을 가야 했는데, (이는 물론 느릿느릿 내 걸음을 기준으로다.) 오전에 문을 여는 다른 커피숍과 달리 유독 한 곳만 문을 꼭 닫은 채 열릴 기색이 없었다. 커피숍이라고 했지만, 커피보다는 저녁에 와인을 판매하는 곳인 듯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와인의 맛을 알지 못할 때라 그곳에 갈 일은 없었다. 감기에 걸리기 전까지.


감기가 심하게 걸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오후 시간에 병원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 커피숍은 문을 열었고, 밖에는 손으로 그린 듯한 보드가 세워져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감기에 좋다는 뱅쇼를 소개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감기에 점령 당해 골골대고 있던 터라, 발걸음이 가게 안으로 향했다. 홀린듯한 걸음에는 호기심도 한몫했다. 아직 해가 비치는 오후인데도 내부에는 벌써 어둠이 내리 깔려 있었다. 이런 곳이라면 한낮이라도 와인 한 잔정도는 거뜬히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그런 감상과 달리 술을 마시는 사람은 없었고, 주인만이 뜬금없는 시간에 방문한 나를 당황하듯 맞았다.


뱅쇼를 받아 든 나는 한 번 더 당황했다. 검붉은 와인과 오렌지 그리고 통계피가 그득히 들어앉아 테이크아웃 커피 잔은 비좁아 보였다. 당황한 기색을 읽었는지 주인은 “몇 모금 마시고 뚜껑 닫으시면 돼요”라고 일러주었다. 낯설어서 얼른 밖으로 나오고 싶었지만, 나를 빤히 보는 시선에 순순히 몇 모금 마셨다. 호로록 마시기에 뱅쇼는 뜨거웠지만 어색한 공기에 눌러 입천장을 내어주고 뚜껑을 닫고 걸음을 옮겼다. 뱅쇼는 내게 뜨거운 입김 같았지만, 입안에 감도는 향과 속은 뜨끈하게 데우는 느낌이 좋았다. 그 후로 드문드문 여러 해에 걸쳐 뱅쇼를 마실 때가 있었는데, 처음의 그 강렬한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찬바람에 몸이 으스스한 날, 메뉴판에서 뱅쇼를 만나면 한번쯤은 시켜본다. 처음의 그 뜨거운 온기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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