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복숭아는 좋아하지만, 복숭아털 알레르기가 있는 나를 위해 손수 복숭아 껍질을 벗겨주던 그 수고로움과 정성. 말캉한 복숭아가 반듯하게 깎여져 내 앞에 놓인다. 입 안에 퍼지는 달콤한 과육을 씹으며 여름에만 누를 수 있는 싱그러움을 먹는다. 복숭아털 알레르기가 있으면서도 매년 여름 빼놓지 않고 복숭아를 먹는데, 그때마다 나는 누군가의 손을 빌린다. 어릴 때는 주로 부모님이었고, 지금은 반려인 때로는 친구 그리고 어느 날은 시언니로 대상이 바뀌어가며 나에게 하얗고 때로는 노란 복숭아 속살을 내밀었다.
어린 시절 주말이면 우리 가족, 이모네, 외삼촌네와 함께 외갓집에 들러 딸기, 상추, 깻잎도 심고, 고구마, 감자 같은 구황작물도 조금씩 심어 함께 나눠먹었다. 그중에는 할아버지가 심어놓으신 복숭아나무, 감나무, 보리수나무도 있어 철마다 따서 집으로 가지고 왔다. 장마가 오기 전에 따서는 나누어 가졌다.
바구니 가득 담긴 복숭아는 금방 물러 엄마 아빠가 함께 껍질을 벗겨 복숭아 조림을 해주었다. 복숭아 껍질을 벗기는 엄마 아빠 곁에 앉아서 제비새끼처럼 입을 벌리면 방금 깐 복숭아를 속속 넣어주었는데, 아직도 그때 먹은 복숭아가 가끔 떠오른다. 한참을 앉아 복숭아 껍질을 벗기고 나면, 엄마는 들통에다 복숭아를 모조리 담고 끓이고 또 끓였다. 그러면 그 여름 내내 달달한 향이 나는 시원한 복숭아를 두고두고 먹을 수 있었다.
에어컨도 없는 더운 여름날, 불 앞에 서서 복숭아 조림을 만드는 엄마의 뒷모습이 아직 생생하다. 나는 요리하는 엄마를 등 뒤에서 끌어안는 걸 좋아했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덥다. 떨어져라”라고 했다. 왜 자꾸 떨어지라고 하는지 궁금했는데, 다 자란 지금에는 말해주지 않아도 안다. 어린아이가 품은 온기는 생각보다 강하니 불 앞 선 엄마는 얼마나 더웠을까.
엄마아빠는 이제 복숭아 조림을 만들지 않으시지만, 다른 사람 손에 만들어진 것을 먹어볼 일이 종종 생긴다.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온전한 보살핌 속에서 마음껏 어리광 부리던 때로 돌아간다. 입 안에서 달콤한 복숭아 향이 가실 때까지 가만히 어린 기억에 머문다. 복숭아는 먹을 때마다 “세상에서 넌 아주 소중한 존재야”라고 속삭여주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