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주황으로 채우는 달콤함

by 박수민

대부분 과일을 잘 먹고 좋아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수박이다. 큼직 마한 수박을 쪼개면 달콤하면서도 향긋한 향이 터진다. 잘게 잘라 통에 차곡차곡 넣어두면 언제라도 꺼내먹을 수 있는 간편함도 좋다. 여름내 즐겨 먹다 보면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공기가 스민다. 그렇게 가을이 되면 자연스레 곁에 두는 과일도 바뀌는데, 날씨가 서늘해지면 주로 감을 먹는다.


외갓집에는 감나무가 있었는데 감 익는 시기에 가면 장대를 들고 할아버지는 감을 따주셨다. 예쁜 감을 콕 집어서 잘 익기를 기다렸다 손녀가 오면 하나씩 따주시던 할아버지. 감나무의 감이 따 떨어지고 앙상하게 가지만 남을 때까지 목을 치켜들고는 “할아버지 저 감 따주세요”를 반복했다. 발치에 둔 바구니에 감이 그득해도 꼭 새로 따 달라던 손녀였다. 감보다는 할아버지가 장대로 솜씨 좋게 감을 따는 모습이 신기해서 자꾸만 감을 따 달라고 졸라댔다. 손녀의 말이라면 뭐든지 해주셨지만, 감이 대여섯 개쯤 남으면 할아버지는 새 먹을 것은 남겨 놓아야 한다고 가만히 일러주셨다. 할아버지 옆에서 새도 감을 먹느냐며 묻던 기억이다.


어릴 때는 감을 좋아하지 않았다. 감이 물러서 말랑해지면 그제야 신나게 먹었다. 달콤한 맛을 내는 홍시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좋아한다. 엄마는 과일 중에 감을 좋아하는데, 엄마가 먹을 때면 한두 쪽 먹곤 했다. 엄마는 감 중에 홍시가 될만한 예쁜 감을 골라 바람이 잘 통하는 서늘한 곳에 두고 홍시를 만들어주었다. 그걸 받아 들고는 손과 입에 묻혀가며 먹으면 보드라운 손으로 얼굴을 닦아주던 엄마. 이제는 홍시를 먹어도 얼굴에 묻히지 않지만, 홍시를 먹을 때마다가 엄마와 할아버지가 번갈아 생각난다. 마트에서 예쁘게 포장된 홍시를 보면 엄마가, 시골길을 걷다 감나무를 보면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내 유년의 시절을 품은 감은 가을이면 어김없이 내게로 온다.


다른 과일은 혼자서 잘 사지 않는데 토마토와 홍시는 마트에서 보면 쉬이 사게 된다. 특히 홍시는 가을철에만 맛볼 수 있으니 예쁘게 익은 홍시를 보면 많다 싶어도 “금세 먹을 수 있어”하면서 사 가지고 온다. 언니도 반려인도 홍시를 좋아하지 않아 어릴 때도 어른이 된 지금도 홍시는 오롯이 내 차지다. 홍시를 들여다보며 익은 정도에 따라 먹을 순서를 정해서 가지런히 놓은 후 냉장고에 넣는다.


보드랍고 말랑한 홍시를 터지지 않게 살살 씻어 접시에 담고는 어릴 때와 달리 조심스레 껍질을 벗겨 숟가락으로 떠서 먹는다. 샛주황색 달콤함이 입안 가득 피어난다. 그렇게 달콤한 가을을 먹으며 마음의 달달함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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