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렇지만 차는 내게 먼 존재다. 바람이 차가워지거나 감기 기운이 있을 때면 과일청으로 만든 차 정도만 마신다. 달콤한 과육이 따끈하게 우려 나온 차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마음이 절로 데워지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찻잎을 우려내 차는 어쩐지 손이 가지 않는다. 예쁜 다기를 보는 것도, 다기를 다룰 때의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도 좋아하지만, 내가 즐기기엔 어쩐지 먼 느낌이다. 그런 나지만, 언젠가 차를 즐겨 마시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바람은 아직 학생이던 때부터 시작됐다.
대학생 때 인턴을 한 적이 있다. 그 회사에는 차를 즐겨 마시는 선배가 있었다. 말끔히 정리된 책상 한켠에는 다기와 찻잎이 종류별로 놓여있었다. 호기심이 일었지만, 긴 머리에 가냘픈 체격, 앙다문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낮은 음성, 그 선배가 주는 외적인 분위기는 좀처럼 다가가기 어려웠다. 어느 출근길에 선배와 마주쳤는데, 어색하게 인사하는 나에게 선배는 “커피 한잔할래요?”라고 물었다. 당시의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지만, 거절의 말을 찾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선배가 자주 간다는 커피숍에 다다랐다. “뭐 마실래요?”라고 묻는 선배, 커피숍에 잘 가지 않던 나는 핫초코가 아닌 다른 메뉴는 알지 못했다. 그저 “선배랑 같은 걸로 마실게요”라고 할 수밖에.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오고, “감사합니다”하고 한 모금 마신 후에 나는 알았다. 그 음료는 마시지 못하고 버려질 거라는 것을.
나에게 첫 아메리카노는 쓰고 쓰고 또 썼다. 도대체 이 쓴 것을 왜 마시는지 알 수 없었다. 커피를 어쩌다 가끔 마시긴 했지만, 그마저도 아메리카노는 아니라 믹스커피 정도였다. 그 정도만 마셔도 밤잠을 설치던 때였다. 그런 내게 갑자기 주어진 한 잔의 아메리카노. 선배는 “커피 맛은 괜찮아요?”라고 물었다. “네”라고 대답했더니, “다행이다. 여기 커피 진해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더라고요”하며 웃는 선배. 커피 맛은 내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차가워보이던 선배가 베푼 친절과 다정함이 그저 고마웠다. 회사로 돌아가는 내내 선배는 말이 없었지만, 회사에 다다르자 “내 자리에 차가 있는데, 언제 시간 될 때 마시러 와요”라고 하면서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 어쩐지 선배 뒤로 환한 빛이 어리는 듯했다.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는 학생에게 인턴으로 지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어려운 일은 없었지만, 부서 사람들 외에는 외우려 하지 않는 이름이었다. 그저 “인턴”하고 부르면 ‘나를 부를 건가?’하고 두리번거렸다. 함께 두리번거리는 인턴 친구들이 있어 외롭지 않던 그런 시기였다. 그런 나에게 커피 한 잔이 무게는 결코 가벼울 수 없었다. 커피 한 잔이 가진 따스함의 무게와 달리 몇 모금 마시지 못한 채, 퇴근길에 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아직도 피곤할 때면 그때의 아메리카노를 떠올린다. ‘선배도 이래서 매일 커피를 마셨나’하면서.
차 마시러 오라는 선배의 인사를 마음에 품은 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먼저 다가갈 용기가 없는 나에게 그날도 선배는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 “잠깐 시간 괜찮아요? 나 지금 차 마실 건데 같이 마실래요?” 선배 덕분에 여자 휴게실에 처음 들어가 보았다. 소파에 앉은 선배는 다기를 내려놓고는 이번에도 나에게 어떤 차를 마실지 묻는다. “저 차는 잘 몰라서요”라고 답하자, 찻잎의 종류를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도 어려워하는 나에게 선배는 국화차를 권했다. 차 맛은 기억나지 않지만, 다기를 데우던 선배의 느리고도 조심스러운 손짓과 찻잔에 얌전히 핀 국화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아마 그때 선배가 내어준 꽃잎이 내 안에서도 피었나 보다. 그때 선배를 보며 ‘나도 언젠가 후배들에게 차 한잔 선물할 줄 아는 선배가 되어야지’라고 다짐했던 것 같은데 나는 아직도 차랑 멀기만 하다. 언젠가 내 안에 남은 온기로 누군가에게 꼭 따뜻한 차를 대접해야지 하고 마음먹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