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황작물을 좋아한다. 옥수수, 감자, 고구마 등을 쪄먹는 것도, 음식에 넣어먹거나 반찬으로 만들어 먹는 것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감자채 볶음을 특히 좋아한다. 어릴 적 감자채 볶음이 반찬으로 올라오면 엄마 아빠가 수저도 들기 전에 한 입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실은 상 위에 수저를 놓으며 몇 입 집어먹기도 했다. 엄마께 혼나더라도 갓 볶은 감자채 볶음은 참기 어려웠다. 그런 내 입맛을 알아서인지 엄마는 부엌에 달린 자그마한 창고에 감자를 자주 넣어두었다.
창고 정리를 할 때면 가끔 들려오던 “아, 감자에 싹이 났네”라는 엄마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으면 ‘감자에 싹?’하는 호기심에 엄마한테 쪼르르 달려가곤 했다. 어느 날은 감자에 난 싹이 마치 머리카락처럼 자랐길래 신기해하며 머리채 잡듯이 감자채를 잡아 올리고는 엄마 곁에서 까르르 웃었다. 그렇게 한바탕 놀고 나면 엄마는 싹이 많이 난 감자는 버리고 싹이 조금 났거나 나지 않은 감자만 골라내 감자채 볶음이 아닌 감자조림을 해주었다. 감자는 좋아하지만 감자조림은 따뜻할 때만 좋아하는 까탈스러운 어린이였던 나는 한 끼만 신나게 먹고는 다음번 식사에 올라오면 모른 체하며 먹지 않았다. 그렇게 남은 감자조림을 볶음밥으로 만들어 상 위에 놓으면 다시 맛있게 먹었다. 지금도 감자조림과 감자채 볶음에 대한 취향은 여전하다. 내 기억에 감자채 볶음은 한 번도 남은 적이 없고, 다음 끼니에는 다른 밑반찬이 올라왔다.
고등학생 때 딱 한 번 감자채 볶음으로 스스로 만들었다. 엄마께 크게 혼나고서는 화해와 용서를 빌 요량으로 만들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감자는 잘 익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먹는 것은 쉽지만 요리는 수고스러운 과정이다. 감자채를 굵게 썰었는지 아무리 볶아도 익기는커녕 자기들끼리 붙으려고 했다. 이미 기름은 너무 많이 부었고 답답한 마음에 접시에 옮겨 담고는 전자레인지를 돌렸다. 어느 정도 익어 물컹해진 감자를 다시 프라이팬에 넣고 볶았다. 어떤 부분은 부서지고 자기들끼리 붙은 부분도 있었지만, 엄마는 감자채 볶음을 맛있게 드셨다. 그 이후로 나는 감자채 볶음을 만드는 사람이 아닌 먹는 사람이 됐다.
가끔 엄마 아빠 집에 놀러 가면 엄마가 만들어주신 것을 먹는데, 이상하게 집에 가져오면 또 처음 먹을 때만큼 맛있지가 않다. 살짝 볶아서 먹으면 맛있을 텐데 게으른 나는 차가운 감자채 볶음을 밥 위에 올려놓고는 냉기가 가신 후에 먹는다. 감자채 볶음은 그렇게 먹어도 잘 먹는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엄마 반찬이다. 엄마의 손맛은 여전하지만 옛날과 달리 몸에 좋다는 것을 자꾸만 더 넣고, 바깥 음식에 길들여진 나는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게 됐다.
입맛도 변했고, 따끈한 감자채 볶음을 몰래 집어 먹을 일도 없어졌지만 엄마의 감자채 볶음은 여전히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