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면 떠오르는 사람들. 그들의 사랑은 화수분과 같아서 종종 그 소중함을 잊는다. 그러다 문득 그 마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얼마 전 엄마의 생신을 축하하러 엄마아빠집에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양손 가득 들려진 반찬을 보며 나보다 엄마의 마음이 훨씬 깊고 커다랗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한 거라고는 엄마가 좋아할 만한 케이크를 주문하고, 용돈과 짧은 메시지를 준비한 게 전부다. 엄마의 반찬에는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하기 위한 시간과 수고가 그대로 담겨 있다. 딸의 든든한 식사를 위해 얼마나 분주히 움직였을지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엄마의 시간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 마음을 받아 들고 오는 길에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무슨 반찬을 이렇게 많이 했어?”라는 딸의 말에 “우리 반찬 만드는 김에 조금 더 만든 거야”라는 엄마의 말. 그러나 나는 안다. 엄마 아빠 두 분이서 10가지가 넘는 반찬을 한 번에 만들어 드시지 않는다는 걸. 나를 먹이려고 많은 반찬을 만들어놓고는 매번 아닌 척하는 엄마다. 한 번은 추석즈음에 코로나에 걸려 엄마아빠한테 가지 못한 때가 있었는데, 엄마는 아빠에게 부탁해 함께 먹으려고 만든 반찬과 전, 튀김을 현관문 앞에 두고 가셨다. 한 상자 가득히 담긴 엄마아빠의 사랑에 벅참을 느꼈다. 그때 나는 미각이 둔해져서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했는데, 엄마가 싸준 음식은 남김없이 먹었다. 그게 내가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엄마가 보내온 사랑을 남김없이 소화하는 것. 그것만으로 뿌듯해하는 엄마를 보면서 모자란 내 사랑에 멋쩍음을 느낀다.
아낌없는 주는 사랑을 받기만 하는 딸에게 엄마가 바라는 것은 나의 건강과 행복. 때로는 어떻게 하면 한 대상에게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는지 궁금해지곤 한다. 내 안에도 누군가를 향한 사랑은 있지만, 나에 대한 사랑인 먼저인 나로서는 엄마니까 가능한 거라 생각하고 만다. 부모자식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불균형. 그 공정하지 못한 마음의 깊이를 나 한 사람의 생애 끝까지 유지하는 것은 부모이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모든 부모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주 감사하게도 나의 경우에는 엄마아빠에게 늘 넘치는 사랑의 받고 있다. 때로 어둡고 축축한 우울의 늪에 빠질 때도 엄마아빠 곁에서는 온전히 보호받는다는 안정감에 마음에 환한 빛이 순간 들이치기도 한다. 엄마아빠에게 깊게 뿌리를 내리고서 엄마아빠의 사랑을 마음껏 들이켠다. 그런 날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는 아마 평생을 가도 그 사랑에 보답할 수 없겠지만, 엄마아빠는 기꺼이 내게 마음을 내어주고 또 내어준다.
언젠가는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 날을 생각하면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인 지금이 너무 소중해서. 안으로만 향한 사랑을 엄마아빠에게로 향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