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조각만 더

by 박수민

지금은 피아노 악보도 볼 줄도 모르지만, 초등학생 때까지 피아노를 배웠다. 그땐 그저 언니 따라 학원에 쫄래쫄래 다녔다. 언니는 피아노를 곧잘 치는 걸로 기억하는데 나는 그냥 매일 열심히 다니기만 했다. 그러다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게 됐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피아노를 굉장히 빨리 쳤다. 그런데도 최우상을 수상한 걸 보면 어린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그런 대회가 아니었나 싶다.


대회보다 기억에 남는 건 끝나고 먹은 피자였다. 그때만 해도 피자 프랜차이즈가 많이 없었던 때라 대회 준비하느라 고생했다고 피자를 먹으러 간 모양이다. 문제는 엄마표 피자는 먹어봤지만 매장에서 파는 피자는 처음 먹어보는 거였다. 엄마는 불고기 피자를 주문했는데, 내 입맛에는 영 맞지 않아 엄마가 시켜준 음료수만 실컷 먹었던 기억이다. 그런 나를 보며 “얘가 오늘따라 영 안 먹네”라며 피자 한 조각을 더 먹으며 음료를 하나 더 시켜준다던 엄마였다. 어릴 때 엄마는 탄산음료도 잘 주지 않았는데 한 조각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었던 것 같다. 꽃다발에 상에 짐이 많았으니 포장해 온다는 생각을 못했겠지. 뭐든 아끼는 엄마는 남은 피자가 아까웠을 거다. 그날 이후로 꽤 오랫동안 피자를 먹지 않았다.


그런데 점점 피자가 대중화되고 먹어 버릇해서인지 어느새 곧잘 먹는다. 여전히 불고기 피자는 좋아하지 않지만. 첫 피자의 기억이 강렬해서인지 불고기 피자는 선호하지 않는다. 가끔 엄마집에 놀러 갈 때도 피자를 시켜 먹는다. 엄마 아빠는 항상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하지만 막상 맛에 대한 평은 까다로우시다. 두 분 다 얇은 도우를 좋아하시는데, 가끔 한 조각 먹고는 드시지 않으면 괜히 마음이 쓰인다. 피자를 앞에 두고 한 입만 더 먹으라던 어린 시절의 엄마가 떠오른다. 그때 엄마 마음을 짐작해 본다. 없는 살림에 대회 준비하느라 수고했다고 새로운 음식을 사주셨을 텐데 한 조각도 먹지 않은 딸을 보며 속상하셨겠지. 지금 안 먹으면 곧 배고프다고 칭얼거릴 텐데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겠다.


부모님과 새로운 식당에 식사를 하러 갈 때면 긴장된다. 그때의 피자처럼 엄마 아빠가 즐겨 드시지 않는 음식을 먹으러 갈 때면 혹여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마음이 쓰인다. 입맛에 맞지 않아도 엄마 아빠는 ‘이런 음식도 있네’하시며 드시지만, 엄마 아빠의 표정에서 알 수 있다. 이 메뉴는 실패라는 것을. 그런데도 딸들과 함께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는 부모님이다. 어린 시절의 나도 철이 조금만 들었더라면 그래서 엄마의 애달픈 마음을 알았다면, 피자 한 조각쯤이야 거뜬히 먹었을 텐데. 그저 어리기만 한 열 살 아이는 “그만 먹을 거야”라고 엄마에게 칭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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