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이 없거나 반찬이 없을 때면 냉동실에 얼려둔 명란젓을 꺼낸다. 한 조각 떼어내 잘게 자르고 참기름을 부으면 그거 하나로도 밥 한 공기쯤은 뚝딱 비워낸다. 간단하게 먹고 싶을 때면 간장계란밥보다 명란젓을 찾는다. 계란을 굽지 않아도 되고 냉동실에 꺼내서 참기름만 부어주면 금세 고소한 향으로 입맛을 돋운다. 신기하게도 우리 집에서는 아무도 명란젓을 먹지 않는다. 국에 간할 때 조금 넣는 거 빼고는 상 위에 올라온 적이 없는 나 혼자만의 최애메뉴.
한 때 회사에서 친한 동료들과 두어 달 정도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날씬해져 보자며 각자 집에서 다이어트식을 싸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다양하게 가져와 함께 나눠 먹었다. 그러던 중에 한 동료가 명란젓을 싸가지고 왔다. 머뭇거리는 내게 아주 친절하게 밥 위에 명란을 올려주며 먹어보라고 권했다. 기대하지 않고 먹은 한 입이었는데 그 후로 나는 이 반찬을 좋아하게 됐다. 한 덩이쯤 사놓고는 입맛 없을 때 조금씩 꺼내 먹으면 그걸로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요리를 못하는 내게 참기름 한 바퀴만으로 충분한 맛을 내니 그렇게 간편할 수 없었다.
명란으로 한 요리는 대부분 좋아한다. 술은 못하지만 명란구이에 오이를 곁들여 먹는 안주도 좋아하고, 명란을 잔뜩 넣고 만든 계란말이도 엄마가 가끔 만들어주는 명란국도 좋아한다. 이 낯선 식재료는 단숨에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옛날부터 젓갈을 반찬으로 올리지 않았다. 왜였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아빠는 젓갈을 좋아하는데 다른 반찬이 있어도 젓갈 하고만 밥을 먹는 아빠의 식성 때문이었다. 아빠의 입맛을 닮아 먹고 자라지 않아도 혼자서도 짭조름한 명란젓을 그릇에 담아내고는 콧노래를 부른다. 덕분에 뒤늦게 좋아하게 됐어도 먹은 양은 적지 않을 것만 같다. 이런 내 취향을 아는 시어머니는 신기하게도 명란이 떨어질 즈음 새로운 명란을 건넨다. 친절하게 언제 구입했는지 날짜까지 쓰인 명란이 냉동실 한 곳을 차지한다. 그렇게 얌전히 앉아 입맛이 없어진 나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