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마시지 못한 한 병

by 박수민

그녀가 건넨 와인은 몇 년째 냉장고 속에서 머물러 있다. 네가 온 날 “오늘은 와인 한 병 해야 한다”며 네 손에 들려있던 그 병은 그날과 함께 잠들었다. 친구가 오지 못한 이유는 수없이 많았고 홀로 그 와인을 비우고 싶지 않았기에 아직까지 옆으로 몸을 뉘인 채 비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부디 다음 해에는 친구가 평온해지기를 바랄 뿐. 크리스마스쯤 놀러 오겠다는 너. 그땐 아마 다른 와인이 네 손에 들려있겠지.


나는 와인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건 화이트 와인 혹은 스파클링 와인 달콤하고 톡 쏘는 게 좋다. 와인을 맛을 모르는 나는 페어링쯤은 거뜬히 무시한다. 가끔은 치즈에 초콜릿 등을 먹지만 대부분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며 와인을 한 두 모금 마시는 게 전부다. 그마저도 드라이 와인은 마시지 못한다.


친구네 갔는데 냉장고에 와인이 여러 병 있었다. 혼자 한두 잔씩 마시기 시작했더니 주변에서 추천해 준 와인이 이렇게 쌓였다는 거다. 그중에서 오렌지향이 나는 와인을 꺼내서는 “오늘은 딱 이 한 병만 마시자”라고 말하는 친구가 너무 멋있어 박수를 쳐줬다. “와인 마시는 너, 멋지다”라고 했더니 동글동글한 치즈도 꺼내 놓는다. 이렇게 마셔본 적은 없는데 어쩐지 그날은 둘이서 정말 꼬박 한 병을 마셨다. 그 병을 다 비우는 동안에 나는 취하지 않았다. 내 기억으로는.

그 이후로 와인을 마실 일이 없는데 연말이 되니 선물로 와인이 한 병 들어왔다. 와인은 모르는데 집에 한 두병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친구들을 죄 불러 모아 “이거 다 마셔야 잘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찬장에 고이 모셔둔다. 언젠가 마시게 되겠지 하면서.


언젠가 집에 있는 와인을 모두 비우는 날이 오면 어쩐지 뿌듯함을 느끼겠지. 취향에 맞는 와인 하나쯤은 있는 어른인 채 하면서 맛도 모르는 와인을 분위기로 마시겠지. 그래도 함께 하는 사람이 좋다면 그것만으로 좋은 게 아닌가.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그녀와 함께 냉장고에 잠들어있는 와인을 비워야지. 그러고는 또 다른 와인을 너를 위해 재워두고는 네가 오는 날을 다시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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