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일정은 언제인가요? '
'2달 남았다.'
'말도 안돼... 부장님 이 일정으론 절대 오픈 못합니다. 디자인 팀은 언제 철수죠? 지금 이미지 다 커팅 되었나요? 아, 시안은 픽스 된거에요?'
'이번주에 될거야... 아, 내일 업체에서 내려오는데 회의 들어가야 된다.'
'아직 확정 안된 기능이 있어요? ... 맨먼스 늘려야겠는데요?'
'여유가 없다.'
늘 그래왔다. 실무를 하는 입장에서는 인력과 일정이 부족했고, 얼마나 부족한지, 왜 부족한지를 정확히 어필해야만 무언가를 얻을 수 있었다. 그게 인력이든 일정이든.
사실 처음엔 PM 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신입사원에겐 마냥 멀고도 높은 존재라 그냥 엄청난 일을 하겠거니... 했었다. 그리고 1, 2 년이 지나고 나면 그 존재를 대단하다 생각하지 않게 되지... 어쨌든 PM 은 개발이든 디자인이든 실무를 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좀 더 프로젝트에서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보게 되면 의외로 PM 이라는 책임자가 갖는 압박감은 어마어마 했다. 책임자이되, 결정권이 없을 때가 태반이었다. 일정을 늘리는 것도 결재를 받아야 하며, 기능을 넣거나 빼는 것도 결재를 받아야 하고, 하물며 맘 편히 아래 직원들에게 업무를 주지도 못할 때가 많았다.
책임자는 그저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할 뿐, 절대 포식자가 아니었다.
난 PM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만, 내가 만들고 싶은걸 만들거라 생각했었지. 그래, 정확히 말하면 결정권자, 갑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고? 나도 나름 심사숙고하여 만든 결과물인데, 어느 누구의 손짓 한 번에 의해 '와르르' 무너지는 내 새끼가 가여워서? ~,.~
회사를 나와 이제는 내 머릿속의 무언가를 실체화 시키겠다고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다. 이미 "도밍고 컴퍼니(0화) - 나는 왜 회사를 나왔는가?" 에서 조금 언급을 하기도 했었다.
이런 저런 생각들과 준비를 마친 뒤 나는 2016.1.4 월요일부터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내 집이자 회사다. | 출처 - 도밍고 책상>
저 자리를 꾸미는데 4년이 걸렸다. 오피스텔 보증금을 마련하고 맥북프로를 구입하고 모니터, 키보드 등. 그야말로 내가 원하던 환경을 만들었다.
아직도 철이 덜들었나보다. 노트북 하나 들고 라면 먹으며 제품을 만들었다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너무도 멋져보였다. 낭만이랄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업계의 선배들은 '피식' 거리며 돈 잘주고, 일 편한 곳이 최고라고 했다. 타 업계의 선배들은 IT 에서 고생하지 말고 자기 밑으로 오라고 했다.
그래도 내 철 없음에, 낭만에 응원해주는 이들도 있었다. '넌 잘 될거야' 라며 응원해주던 친구들, 어떤 친구는 내가 잘 안되면 누가 잘 되겠느냐고 했다. 글쎄, 잘 되는게 뭘까?
이제 내겐 상사도 없고, 갑도 없다.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나만의 요새를 만들었다. 비록 시한부 요새지만. 그리고 달리기를 시작한 첫 날.
"그래서 뭐부터 해야하지?"
첫 날 부터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한다면 내게 다들 '피식' 할 것이다. 그래, 결국 아무런 대책없이 나온거였냐며...
글쎄, 난 대책없이 나오지 않았다. 주 업무가 자사 서비스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늘 갈증이 있었고 경험을 위해서 주말과 여가 시간을 이용해 서너번의 프로젝트를 했었다.
안드로이드 팀원으로 두 번의 프로젝트를 했고, 한 번은 제품도 출시했었다. java 만 사용하던 내가 C# 으로 제품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해보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지난 1년간 SWIKI 프로젝트를 운영했었다.
나는 내 서비스를 만드는게 좋았다. 이용자가 몇 명 늘었을까? 오늘은 몇 명이 늘까? 오늘은 어떤 댓글이 달릴까? 이게 궁금해서 회사에 가고 싶었던 적이 있는가? 적어도 난 그랬다. 회사에 가고 싶었다. 내가 담긴 서비스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는 것이 너무도 좋았다.
엘론 머스크는 자신을 테스트해보기 위해서 하루 1달러 살기 프로젝트를 했다고 한다. 소시지와 오렌지만 먹으며 컴퓨터로 제품을 만들었다. 그 결과 자신은 하루 1달러만 있어도 행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멋지지 않은가?
나는 엘론 머스크가 아니다. 다락방에 앉아 물리학을 독학 할 수 있는 천재성은 없다. 그런데 혹 누가 아는가? 다른데서 천재성을 발견할 수 있을지?
안타깝게도 첫 날 그 천재성을 발견하는건 실패였다.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아침 6시에 일어나 활동을 시작했는데,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스트레스였다. 왜냐고?
회사는 규율이 있다. 9시에 출근해서 12시부터는 점심시간이고, 1시부터는 다시 일을 해야 한다. 6시가 되면 퇴근이고, 혹 고객의 요청이 있다면 다시 출근 할 수도 있다. 야근을 할 수도 있겠지.
도밍고 컴퍼니는 아무런 규율이 없었다. 몇 시부터 일해야 하고, 몇 시까지 일해야 하는지. 안다, 나도 학사 출신이다. 내가 스케쥴을 짜고, 가장 중요한 일부터 차근차근 하면 된다는 것 쯤은 나도 안다.
문제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PPT 로 스토리보드를 만드는게 좋을까? 아니 구글 DOC 를 쓰는게 좋겠지? 서버는 java 로 할까? 아냐 Python이 잘 나간다는데... Node.js 도 좋아보이지 않아? 아 머리 아프네? 잠깐 쉬었다 할까? 그래도... 괜찮을까?
생각이 많은 편이긴 했다. 결정 장애는 아니었지만, 결정을 잘 하고 싶기는 했지. 어차피 프로토타입을 먼저 만들어야 할테고, Lean 하게 진행하기로 했었지만 막상 시작하게 되니 예상보다 압박감이 있었다. 왜냐고?
내 선택에 내가 모든 책임을 지어야 하니까...
그랬다. 나도 결국엔 직장인이었다.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직장인은 평생 약 400회의 월급을 받을 뿐' 이라고. 직장인은 월급날만 기다리고 사는데... 그렇게 되면 고작 400번의 이벤트가 전부 아니던가?
그날로 나는 직장인이되 직장인이 되지 않겠다 결심했다. 고작 400번의 희열로 인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내가 틀렸다. 직장인이 무서운건 직장인 마인드였다. 그저 시키는대로 하는 정신. 월급 받은 만큼만 일하는 정신. 나는 그게 싫었다. 그렇게 되면 그게 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직장인 4년. 나는 이미 그렇게 되버린걸까?
내가 내 선택에 모든 책임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결정 장애가 왔다. 물어볼 사람도, 아니 정확히는 같이 결정을 해 줄 사람이겠지. 회의 없이 무언가를 결정한다는게 굉장한 부담이었다. 원래 회사에서는 그러면 안되거든...
생각해보니 PM 은 아무것도 안하는 것 처럼 보여도 스트레스가 상당했겠더라. 어쨌든 결정을 해야 하니까...
그날 밤 나는 시름시름 앓았다. 온 몸에 식은땀이 나고 설사를 했다. 지난 4년간 매 해 응급실을 가긴 했었다. 원래 그런 약골은 아니었다. 이상하게 입사하자마자 아프더니 한 해에 한 번 꼴로 아팠다.
밤새 앓다가 아침에 병원을 갔더니 장염이란다. 탈수가 굉장히 심하다고. 내가 며칠간 먹은걸 듣더니 의사는 세균성 장염인 것 같긴 한데... 원인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아, 지난주에 먹은 샐러드가 시큼하긴 했는데... 그걸지도.
결국 화요일은 약먹고 앓다가 지나갔고, 수요일도 낫지 않아 다시 병원엘 갔다. 목요일부터 큐레이션을 시작하긴 했지만 정작 해야 할 개발은 거의 하지 못했다. 그렇게 도밍고 컴퍼니의 첫째 주가 흘러갔다.
난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픈 몸뚱이라 영향이 있긴 했을거다. 하지만, 원인은 음식물. 뭔진 모르지만 그냥 짜증이 났다. 아파서 누워있는데도 짜증이 났다. 왜냐고?
내가 누워있으면 월급도 안나오고 시간만 흐른단 말이다...
회사에 속해있을때는 아플땐 아픈 것만 잘 나으면 되었다. 신입땐 맡은 일이 없어 아파도 괜찮았고, 일을 시작했을땐 감사하게도 동료들이 자리를 메워주었다. 일이 늘었다고 투덜대긴 했지만... ㅋ
그런데 이젠 아픈 것도, 내 일도 신경써야 했다. 하... 혼자 누워있는 것 보다 그게 더 서러웠다. 아픈게 짜증나는게 아니고, 일을 못하는게 짜증났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해야 되는게 짜증났다.
꼬박 4일을 아프고 나서야 이제 좀 괜찮아졌다. 어젯밤에는 배가 고파 서럽더라...
내가 구상한 '도밍고 뉴스' 특성 상 기술과 컨텐츠 모두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어뷰징 업체마냥 마구 긁어와서 컨텐츠를 채우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받지.
애초에 내 능력 밖의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기에 도전해보는게 아닌가? 가뜩이나 시간이 부족한데, 장염따위로 1주일을 버리고 나니 남은 시간이 더 소중해졌다. 정말이지 내 마음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구나.
서서히 떠나가는 망할 장염에게 스토리를 만들어 줘서 고맙다 하련다. 망할놈. 다신 찾아오지 않길.
다음주엔 기술적인 일을 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