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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세용 Feb 05. 2016

도밍고 컴퍼니(2화) – 출퇴근 3초 워밍업 시작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 - 수능 만점자

"오늘이 무슨 날인지 무슨 요일인지 모릅니다. 전 그냥 수영만 해요." - 마이클 펠프스

"라면 먹으면서 개발에만 집중했습니다." - 스타트업 대표


늘 궁금했다. 정말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면 수능 만점을 받을 수 있는건지.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고 수영만 하면서 살 수 있는건지. 오직 제품 개발을 위해서 모든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건지.


난 정도(正道)를 걷는 사람들이 좋았다. 박지성이라든가 김연아 등. 건강한 노력으로 대단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내 롤모델이다. 그들이 걸어간 발자취를 보면 흥분되고, 부러웠다. 난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무언가에 내 열정을 전부 쏟아 붓고 정말 하얗게 불태우는 느낌이 뭔지 받아보고 싶었다. 숨을 헐떡이며 내 성취를 뒤돌아보고는 내 주위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그래요. 나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 라고."



찾았다. 내 아이템.



박지성은 축구를 찾았고, 김연아는 피겨를 찾았다. 마이클 조던은 농구를 찾았고, 이창호는 바둑을 찾았다. 그들의 열정과 노력에 엄청난 박수를 보내지만 한편으론 부러웠다. 그런 열정을 보일 수 있었던 것도, 어린 나이에 자신의 진로를 찾은 것도.


내 아이템을 찾고 싶었다. 내가 가진 잠재력이 완벽히 폭발할 수 있는 그런 아이템. 아무리 피곤해도 생각나고, 내가 노력한것 보다 더 많은 열매를 찾을 수 있는 나만의 아이템.


누군가는 이것을 두고 '꿈' 이라 부르고, '낭만' 이라 부른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며 월급 제때 나오는 회사에 들어가 참한 처자 만나 결혼하면 그게 행복인게라고 말한다. 그들은 알까? 그것도 '꿈' 인것을.



안다. 이제는 안다. 그건 요행이고, 판타지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찾은게 고작 시작임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그런 성취를 낼 수 있었겠다... 라는 추측 정도만 할 수 있지만, 이제는 마냥 그런 '꿈' 이 저절로 '현실' 이 되는 것을 기다리지는 않는다.


1년. 끈기와 근성이 부족한 나로써는 본업 외에 무언가를 꾸준히 1년간 했다는 것은 굉장히 큰 자신감을 주었다. 내게는 6년째 만들어가는 중인 소중한 커뮤니티도 있지만, 비즈니스적인 아이템으로 1년간 근성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아, 1년은 내 기준에서의 근성이다.)


피규어나 연예인을 덕질하는 덕후들이 이런 기분일까? 바라보면 뿌듯하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이고 싶은 이 기분.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그것를 향한 내 열정이 아깝지 않은.



2015년 1년간 운영한 SWIKI 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비록 내 주위 오프라인에서 이 서비스를 높이 평가한 사람은 없었지만, 수백명이 이용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다는 것은 참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하는 스스로가 점점 더 좋아졌다.



워밍업 시작. 집중의 재발견.



지난주를 장염으로 고생하고 나서 정신을 차리니 1월이 10여일 지나갔다. 순간 이번달이 이렇게 끝나버리고 설날을 지나면 금새 2월마저 끝나버릴거란 생각에 조급해졌다. 지금 상태로 그렇게 되어버리면 나는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그저 취준생이 되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좀 무서웠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구석으로 밀고 책상에 앉기까지 3초. 나는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고, 오전에는 컨텐츠를 만든뒤 오후에 개발을 하는 스케쥴을 살아갔다.



일주일만에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업무의 효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이다.



지난 4년간 월급쟁이 삶을 살면서 나는 내 업무의 효율을 알고 있었다. 아침에 출근해 동료들과 커피를 한 잔하고 회의를 들어가거나 잠깐 일을 하면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점심을 먹고 잠깐 업무를 보다가 졸음이 오면 커피를 마시고, 오후시간이 되서야 본격적으로 일 좀 해볼까? 하면 모두가 그런 마음인듯 회의가 잡히거나 업무요청이 오곤 했다. 그러다 퇴근 하던가 아니면 저녁을 거하게 먹고 일을 조금 한 뒤 퇴근하겠지.


물론 매일이 그런 일상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때는 그럴 수 없었고, 프로젝트에 투입되거나 중요한 업무가 주어지면 커피 따윈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이랬던 내 직장생활을 굉장히 한심하게 바라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프로젝트에 투입되면 정말 정신이 없었더라는 것이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냐면 거의 기억이 안난다. 4년 중 대다수의 시간을 프로젝트로 보냈으면서 기억이 안난다는게 이상하지만, 이게 내가 내 일을 찾아 나선 이유 중 하나다.


내 뇌는 시키는 일을 할 땐 효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직장생활이란게 늘 보고와 회의의 연속이며, 개발자 또한 마찬가지다. 조직에서는 누군가가 결정하고 누군가가 행동해야만 했다. 행동하는게 마냥 귀찮고 싫지는 않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결정을 행동하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내 뇌는 그런 나를 보호하려는건지 내 모든 능력을 개방하지 않았고 심지어 지금은 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번주 나의 업무량을 말해보자면 보통 8-9시 사이에 업무를 시작해 12시쯤 잠들기까지 일했다. 중간에 식사를 하거나 운동을 다녀오는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나는 거의 12시간 이상을 일했다.


사실 12시간의 업무량은 회사에 다닐때도 많이 해왔었다. 중요한 것은 업무 효율이다. 언젠가 업무를 진행하며 내가 제대로 집중하는 시간을 헤아려보았는데 고작 4~5시간 정도였다. IT칼럼니스트 임백준씨는 개발을 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을 최대 5시간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개발자에게 야근은 미친 짓이다.)


그리고 이번 일주일을 보낸 결과 제대로된 내 집중 시간은 8시간을 넘어섰다.



수많은 선택? 책임은 오로지 내가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버그를 수정하기 위한 단연 첫번째 단계이며, 이 원인에 따라 책임이 가려지기에 비즈니스 관점에서 원인을 찾는 것은 너무도 중요했다.


나는 이 원인에 따른 업무의 진행에 능한 편이었다. 일단 원인이 정확히 파악되면 빠른 시일내에 회의를 소집하여 총 책임자에게 원인을 보고하고 해당 버그를 수정할 담당자를 지목해 일정을 정해야 한다. 이걸 정확히 못하고 프로젝트 오픈일이 다 되서야 원인을 말한다던가, 다른 파트의 문제인데 스스로가 고쳐보겠다고 끙끙대고 있으면 이 바닥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내가 그렇게 쌓은 능력치를 단 1%도 사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일을 위한 일' 의 능력치다.



지난 일주일간 제품에 대해 고민을 하며 나는 그동안의 회의 참여, 책임자 선정 등. 일에 대한 문제해결 능력을 단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다. 왜? 나 혼자 다 해야 했으니까.


원인을 파악했으면 곧바로 수정해야 했다. 더 나은 방안이 생기면 바로 실행해야 했다. 좀 더 자세히 말해볼까?

한글 기사가 아니라 영어기사를 읽고 요약해봐야겠다 생각이 들면 그 즉시 그렇게 하면 되었다. 하루의 큐레이션이 하나의 포스팅으로 올라오면 노출이 적은 것 같아 기사별로 포스팅해 하루 5개정도로 올렸다. 워드프레스 테마 디자인이 별로인 것 같아 유료 테마를 구입해야겠다고 다짐했고, 다짐 후 1시간 뒤에 구매했다.


디지털오션의 서버를 쓰고 있었는데, aws 서울 리전이 나왔다고 해서 옮겨야 되나 고민하기도 했고, 서버작업을 php 로 할지 java 로 할지도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굉장히 피곤했다. 그저 내가 원하는대로 하는 것인데 뭐가 피곤하느냐고? 난 책임을 지는데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내가 맡은 업무는 책임을 졌다. 하지만, 모든 선택들이 내 책임이 될거란 것은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지금 내 선택이 3개월 뒤에 결과를 바꿀 수도 있단 생각을 하니 결정을 내리기가 망설여졌다. 혼자인데도 그러한데 팀을 꾸려 하루하루 달리는 스타트업 대표들은 어떤 기분일까?



역시 인간의 적응력



지난해 12월 중순정도까지 프로젝트에 투입되었었다. 특히 12월에는 굉장히 스트레스가 많았다. 퇴사 전이기에 내가 짜는 코드들이 남는자들에겐 "똥" 이 될 것이였기에 평소보다 신경을 많이썼고, 잔여 업무가 있다면 무책임한 자로 불릴 것이기에 평소보다 더 꼼곰히 신경썼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프로젝트 중 가장 날카롭게 업무를 째려봤고 꼼꼼히 했다. 그런데 고작 1달이 지난 지금? 하나도 기억 안난다.



인간의 적응력은 굉장히 놀랍다. 아마 내가 다시 그 업계에 들어가게 된다면 다시 기억이 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하는 도밍고 뉴스만 생각하고 산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내가 동료들과 농담 따먹기를 할 수 없다는건 꽤나 익숙치 않고 힘든 일이지만 업무에 집중을 방해하는 모든 행위가 없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어 좋다.



1월 22일을 도밍고뉴스 Android 버전 오픈일로 생각했었다. 헌데, 장염으로 1주일을 날리고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생기며 얼마나 더 미뤄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lean하게 개발하여 기능을 추가해 나가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이제 워밍업을 끝냈다. 다음주는 본 궤도에 올라 생각보다 더 높은 효율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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