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세용 Feb 06. 2016

도밍고 컴퍼니(3화) – 제자리 높이뛰기

학창시절 시험기간, 뭔지 모를 단어들을 마구 외우는 친구들에게 그게 뭐냐고 물었다.


"너 이거 몰라? 이거 시험에 나온다고 했잖아?"

"?? 그게 뭔데? 우리 시험 80 페이지까지 아냐?"

"90페이지 까진데? 이거 85페이지에 나오는 표잖아"

아뿔싸! 나는 시험 범위를 잘못 알고 있었다.


회사를 떠나 도밍고뉴스를 만든지 어느새 3주가 흘렀다. 위의 예시가 잘 맞아 떨어질까? 솔직한 화법을 구사하는 내게 지인들은 마찬가지로 솔직한 대답을 해주곤 한다.


'네, 서비스는 실패했다고 봐야 해.'

'그래서 너가 하고 싶은게 뭔데? 뭘 원하는건데?'

'넌 그냥 너가 하고 싶은걸 하는 것 밖에 안돼.'

'너 그러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3개월 흐른다?'


누군가 내 방향과 결과에 대해 지적을 하면 당연히 가슴이 아프다. 나 또한 나름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고, 노력 끝에 얻은 결과물이기에. 그럼에도 그들에게 참 고맙다. 그저 악플이 아니라 내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그들의 표현이기에.



Digital Ocean -> AWS | 유료테마



AWS 를 파악하고 마이그레이션 하는데 이틀 걸렸다. AWS 서울리전이 출시되었고, 워드프레스 속도에 대한 불만이 있던 내겐 작은 모험이었다.


사실 AWS 가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작년, AWS 가 1년 무료라기에 덜컥 인스턴스를 생성해보았는데, IP 가 할당되어 사용하지도 않는 인스턴스에 대한 비용이 몇 달째 계속 나갔다. 월 3~4달러의 그 금액은 문자를 받았을 때 굉장히 기분이 안좋았지만, 나중에 처리해야지 하다가 서너달이 흘러버린게 만원 단위의 '꽁돈' 이 날아간 셈이다.


때문에 AWS 가 굉장히 마음에 안들었다. Digital Ocean 을 사용 할 때 IP 가 할당되면 비용이 청구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항의해도 소용이 없다는걸 알았다. 물론 항의하면 캐쉬 등을 주긴 하더라. 하... 근데 귀찮더라고.



AWS 서울리전으로 옮기고 결과는 대만족이다. 따로 측정해볼 필요도 없이 눈에 보일 정도로 속도가 빨라졌고, 특히 어드민 화면은 굉장히 쾌적해졌다. 해외 접속자들이 늘려졌을수도 있지만, 어차피 내 글은 다 한글이니까...


디자인에 대한 갈증이 있어 워드프레스 유료 테마를 구입했는데, 이것도 대만족이다. 단시간내에 깔쌈한 스타일이 되었고, web front-end 를 다루지 못하는 내겐 굉장한 시간단축이었다. 이래서 돈이 짱이구나 싶었지.



그렇게 이번주 월요일을 기쁜마음으로 보내며 한주를 시작했다. 이젠 몸 컨디션도 100%이고, 워밍업도 끝났겠다 달릴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난 뭐하고 있는걸까? 눈치게임



장염때문에 미루고 미뤘던 약속들을 이번주에 3개나 몰았다. 투자한 시간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조급한 상태였지만 내 업무 만큼 내겐 지인들도 중요했다. 또 하나 느낀것은 회사에서 퇴근 후 지인들을 만나는 것과는 굉장히 다른느낌이었다는 것이다.


회사에 소속되지 않으면 눈치를 전혀 보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웬걸? 눈치가 더보였다. 내 눈치.


하핫. 눈치 볼 사람이 없어지니 이제 스스로의 눈치를 보고 앉았다.



'나 2주간 딱히 한게 없는데... 나가지 말까? 나 뭐하냐고 물어볼텐데... 뭔가 계속 하긴 했는데 딱히 보여줄게 없네?'

'그래서 뭐먹고 살거냐고 물어볼텐데, 허허 나도 잘 모르겠는걸?'

'커뮤니티에서 찌질한 모습 별로 보이고 싶지 않은데... 나 안찌질 했는데... 요즘은 좀 찌질한 것 같기도 하고.'

지인들과의 만남은 좋았다. 여전히 어딘가 소속된 느낌이었고, 주말이 끝난 뒤 월요일에 만나 소주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커뮤니티 친구들과의 만남은 언제나처럼 새로웠고, 역시 나는 '말' 을 해야 기분이 좋아진다는걸 다시 깨달았다. 혼자 있다보니 말 수가 거의 없었으니까.



지인들과의 만남은 좋았지만, 일에 대한 답답함은 계속되었다. 도밍고뉴스는 100여개의 기사 중 20개 정도를 추리고, 거기서 5개 정도를 깊이 생각한 뒤 코멘트를 달아 업로드 하는게 전부이다. 문제는 이게 많게는 4~5시간 까지도 걸렸다는 것이다.


도밍고뉴스의 컨셉상 내가 다는 코멘트의 힘이 약해지면 의미가 없다. 그저 스크랩에 불과 할 테니까. 또한 이 일에 올인하고 있다는 생각이 이전 SWIKI 때보다 몇 배 이상의 결과를 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상당했다. 그렇게 짖누르는 압박감을 겪으며 다짐했었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자, 내가 생각했던거 그걸 차근차근 해보자.'


그리고 그게 흔들림의 발단이었다.



개발자가 되기까지.



느려가지고. 빨리 좀 해라.

다했어? 다했어? 야, 다했어?

내 신입시절 별명이었다. '다했어?'

내 사수는 굉장히 빠른사람이었고, 덕분에 난생처음 내가 느린사람이란걸 알게 되었다. 빠른속도를 요구하는 선배에게 난 물었다.


"선배님, 빠르기 보다 정확도가 더 중요하지 않나요?"

"정확도 중요하지, 빠르고 정확하게 해."

"..."


잘 하고 싶었다. 평생을 개발자로 살고 싶단 생각은 아니었으나, 지금 내 일은 개발이고 나는 돈을 받는 프로였기에 한사람 몫을 하고 싶었다.


그 선배가 회사를 떠나고 다른 동료와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동료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도밍고, 너는 개발을 할 때 참 멀리 생각을 하는 것 같아. 확장성을 생각한달까?"

"오... 좋은거군?"

"그런데, 너무 그렇게 생각만 하면 안돼. 직접 해보면서 눈으로 확인해야지. 직접 테스트를 해봐야해."


성향이 다른 두 선배와의 4년이 나를 바꾸어 놓았다. 어느새 나는 빠르게 시도하는 스타일의 개발자가 되어있었다. 문제는 내 관심사가 '기술' 에만 한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머리로 일하는게 좋았다. 뭔가 신박한 아이디어를 내고, 팀의 방향성을 잡거나 예측하는 일 따위가 흥미로웠다. 내가 무언가 만들고 싶을때는 내 아이디어가 생겼을 때다. 누군가의 생각을 현실화 해주는 일은 큰 흥미가 없었다. 뭐든 만드는게 재밌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더욱이 내 주변에는 대부분이 개발자. 개발자라고 하기엔 조금 다른 성향을 지녔던 나는 개발자들 사이에서 기획자스럽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고, 그래서 스스로가 기획 마인드에 가까운줄로만 알았다.


안드로이드 개발은 자신 있었다. 안드로이드 관련된 모든 것을 알진 못하지만, 사실 개발자에게 중요한건 모든걸 아는것이 아니다. 뭐든 찾아서 바로 내것으로 만들 수 있으면 되었다. 어차피 매일 새로운게 나오는 이 바닥에서 모든걸 다 알고 있을 수는 없거든.


때문에 도전했다. 이 바닥에서 살아 남았던것 처럼 다른 곳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었다.


그리고 다른 세계의 사람을 만났다.



기획자 | 다른 두뇌와의 만남.



개발자이되 기획자의 생각도 함께 가진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내게 연락을 주면 좋겠다. 만나보고 싶다. 나와 비슷한 사람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분명히 어딘가에는 많이 있을텐데 내 활동 범위에선 만나보지 못했다.


SWIKI 와 도밍고뉴스의 유저인 한 기획자분이 내게 연락이 왔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 내게 해주고픈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너무도 감사한 마음에 냉큼 약속을 잡았고, 어제 만났다. 그리고 그와의 만남이 나를 굉장히 흔들어 놓았다.



생각보다 나이 차이가 많았던 그를 나는 선배님이라 불렀다. 그 기획자 선배님은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었고, 좋은 기회다 싶어 혼자만의 생각으로 간직하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모조리 털어놓게 되었다.


대화를 나눌수록 내가 만든 미궁 속으로 우리는 함께 들어갔다.



그 선배는 내게 말했다.


"스스로 만들고 싶다는 엔지니어적인 성향이 강하시네요."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충격을 받은 것 자체도 충격이었지.


나는 4년간 개발자로 키워졌다. 개발자로써 싸웠고, 일했다. 그런데 뭐가 문제냐고? 그래도 난 기획자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기획자가 내게 개발자스럽다고 했다. 내 정체성은 뭘까?


선배는 기획자스러운 생각이 어떤건지 몸소 보여주었다. 기획은 꿈을 현실화 하는 것이며, 철저히 데이터를 분석하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판단을 해야 한다. 감정은 배제되어야 한다. 아뿔싸! 내 프로필은 '글쓰는 감성개발자' 인걸...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결국 난 이도저도 아닌가? 퇴사 후 처음으로 강하게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고, 퇴사 후 단 한번도 후회한 적 없다는 동료들의 말이 다 구라임을 몸소 깨달았다. 후회를 안한다는건 다 구라다.


난생 처음 본 남자 둘이 앉아 저녁도 안먹고, 화장실도 안가고, 시계도 안보고 세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했으니 얼마나 집중했는지는 상상에 맡긴다.


말도 안되는 내 상상속에서 하나하나 슥슥 썰어가며 핵심을 짚어주고자 했던 그도 결국엔 '나도 햇갈리네요' 라며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나도 안다. 내가 상상하는 모든 것을 단시간 내에 현실화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선배의 말처럼 다소 냉정하게 분석하여 '선택'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근데 이 선택이라는게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고, 그 선택으로 인한 리스크를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게 내키지 않는다는게 문제다.


나는 언제까지 이따위 감성의 늪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인가?



제자리 높이뛰기



제자리 높이뛰기란 단어를 '의미 없음' 이란 뜻으로 사용하려 했는데, 제자리 높이뛰기란 종목이 있더라. 허허... 하지만 이 단어가 지금 내 상태를 그나마 표현하는 것 같아 그냥 사용한다.



지난 3주간 나는 열심히 뛰었다. 눈 앞에 나름 생각한 목표물이 있었으니까. 글을 읽고, 쓰며 인사이트를 넓히겠다. 안드로이드 개발을 좀 더 깊이 파겠다. iOS 개발과 back-end 도 해야지? 회사를 다니며 너무 일만 했어, 일 외적인 부분도 신경 써야 해. 졸업 후 못본 동창들도 좀 봐야지 너무 바쁜척만 했어.


난생 처음 갖는 3개월의 자유에 나는 정말 열심히 뛰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뛰었던 나는 3주 뒤 제자리인 것을 깨달았다.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목표 속에서 나는 결국 어디로도 가지 못했던 것이다.



뭐 이딴 바보 같은 놈이 다 있는가? 한심함의 극치. 아무런 전략도 없이 그저 전장을 누비는 무식한 칼잡이 마냥 검을 휘둘렀다. 그렇다고 검술이 뛰어난 것도 아니지.




속상한 한 주다. 3주간 제자리 높이뛰기를 한 내 다리 근육이 달리기를 시작 할 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밍고 컴퍼니(2화) – 출퇴근 3초 워밍업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