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세계 | 편견 탈출
지난 1월 22일 금요일에 기사를 올리고 더 이상 올리지 못하였다. 기사를 읽을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기사를 읽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난 기사를 올릴 수 없었다.
난 개발자니까 개발자스럽게 글을 쓰면 될거야! 뭐... 경력이 많지 않으니 신입들이 보면 도움이 될거야! 아... 대학생들이 보면 좋지 않을까?
라며 나는 늘 이 아이템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럴만 한 것이 SWIKI 를 읽어주는 사람들은 꾸준히 있었고, 당연히 그들은 이 서비스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래, 단지 내 생각이었다.
개발자의 솔직한 얘기를 좋아할거야, 나보다 모르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 도대체 난 무슨 근거로 이런 생각들을 했을까?
이거 기능 개발하는데 뭐, 하루면 되나?
별거 아니에요~ 대리님이 하시면 금방 할거에요~
로딩이 좀 느리네, 좀 신경써서 속도 좀 빠르게 해줘요.
하하. 수도 없이 받았던 요구사항이다. 그럴때면 늘 속으로 말했지.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회사에 소속된 상태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때는 주변에서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헌데, 이 프로젝트를 나의 메인잡으로 바꾸자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변했다. 좀 더 솔직한 의견을 들려주기도 했고, 깊은 조언을 주기도 했다.
라고 생각했다.
기사 고르기, 코멘트, 아이템에 대한 의견, 비전 등. 나는 그동안 순전히 내가 보고 들은 것에 따라 행동하고 생각했다. 그게 당연하다고? 아니다. 그렇게 판단을 해서는 안되었다. 도전이다, 젊음이다 외쳤지만 난 결국 '도박' 만을 한 셈인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변한 것도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들은 늘 그렇게 말했다.
그걸로 돈을 벌 수 있겠어?
정말 사람들이 그걸 볼까? 난 안 볼 것 같은데?
그래서 너만의 차별화가 뭔데?
그래. 난 안 들었던 것이다.
난 왜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까? 내가 들려달라고 해놓고 왜 안들었을까? 도대체 나는 왜 내 생각만 하고 있었을까?
난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싫어한다.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치우치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내가 보고 듣는걸 가지고 생각하는데 어찌 내가 객관적일 수 있겠는가?
다양한 관점에서 본다고 노력했더라도 난 개발자고, 개발자 관점에서 일을 처리했었던 것이다. 아무리 프로젝트 관점에서 생각했다 하더라도 정작 프로젝트 관리자가 보기엔 난 개발자였겠지.
다양한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실제로 책장을 보니 다양한 책이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분류를 해보면 개발 관련 책이 많았다. 뭐, 어쩌겠는가 개발자인데.
난 편견이 없다 생각했다. 정치를 볼 때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본다고 생각했으며, 그를 위한 실천으로 페이스북 내 팔로워들도 다양한 성향의 친구들을 만들어뒀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역시나 난 중립이 아니었다.
편견의 한 예를 하나 더 들어 볼까? 나는 키보드 워리어들을 증오했다. 그저 집에서 할 일 없는 놈들이 연예인 욕이나 해댄다고 생각했다. 2013년 통계에 따르면 실제 악플러들은 40, 50대가 가장 많다고 한다. (국민일보 | [기획] 애들인줄 아셨죠?… 악플러 형사처벌 40∼50代가 가장 많아)
기사에 대한 코멘트를 감성적으로 적으려 했다. 난 직접 취재나 인터뷰 따위를 하지 않았기에 내가 갖는 차별성은 감성이라 생각했다. 감성적인 코멘트를 달다보니 내 생각이 나올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나는 나도 몰랐던 내 생각들을 알게 되었다.
난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 공부를 안했으니까. 대학시절 다양한 경험도 하지 못했고, 스펙이란걸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을땐 이미 3학년 2학기였다. 운이 좋게 이런 저런 교육을 받아 취준생을 겪지도 않고 4학년 2학기에 취업했지만, 그게 내 생각이 닫히는 결과 중 하나였다.
세상의 무서움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어리버리 신입시절을 그리 오래 겪지도 않았고, 좋은 사람들이 많던 회사 덕분에 선배들의 예쁨을 받는 편이었다. 일을 하면서부터는 나이와 경력에 맞지 않게 많은 기회를 얻었고(뭐, 힘든 일을 하긴 했지만), 특수한 포지션 덕분에 정말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다.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 자신감이 넘쳤다. 내게 대놓고 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내 주변엔 늘 동료들이 있었다. 다양한 관심사 덕에 늘 정보가 많았고, 단지 여러 정보가 있다는 것도 자만의 이유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은연중에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무시했다. 어떻게? 삼성은 샤오미, 화웨이 등에게 2등 전략을 빼앗겨 곧 망할거야! 우리나라는 이런 식으로 정책을 펼쳐선 안돼! 객관식따위의 시험은 없어져야 돼! 창의력을 망친다고.
난 삼성도 아니고, 샤오미도 아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들의 미래를 논한단 말인가? 난 정치도 잘 모르고 행정도 잘 모른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게 마련인데,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잘못되었다는 것은 정말 잘못된 생각이지.
내가 운영하던 커뮤니티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도밍고 : 스펙은 중요치 않아! 그보다 중요한게 더 많다고 생각해. 토익이 900점이면 뭐해 대기업에 들어가 인생의 꿈도 없고, 그저 시키는 일만 하고 있는 사람들인데.
후배 : 형...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되죠. 형이 토익 900점도 아니고 대기업도 아닌데,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아요?
그 대화를 끝으로 그 후배는 더이상 커뮤니티에 나오지 않았다. 당시에도 그 일은 충격이었고, 토익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들도 있다는 식으로 내 생각을 순화시키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내 생각에 큰 변화는 없었던 것 같다.
난 편견쟁이였던 것이다.
40, 50대에 명예퇴직을 하면 엄청난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한다. 임원이나 부장 직함을 달았던 그들은 시스템을 벗어나면 굉장히 어색했을 것이다. 커피를 타주는 신입도, 일정을 보고하는 대리도, 권위를 세워주던 과장도 이젠 더이상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일어나서 할 일이 없다는게 큰 충격이라는데, 이들의 경험을 모두 해보진 못했지만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대리 직함을 버리고, 나는 내 이름 석자 외에 설명할 방법이 없어졌다. 회사도 딱 정해진 업무도 없으니까. 5년차 현업 개발자라는 내가 만들어낸 수식어도 붙여도 되는건가 싶다. 요즘엔 개발 외적인 일들을 더 많이 하는 것 같거든.
한편으론 이렇게 일찍 벗겨져 본게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이직 사이에 1년 정도 쉬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따지면 난 고작 4주를 쉰 것 뿐이다. 물론 다짜고짜 이직을 하기 위해 회사를 떠난건 아니지만, 스스로를 위안하자면 그렇다.
이젠 말 하는게 정말 조심스럽다. 이렇게 서서히 말 수가 적어지는 걸까? 농담이나 가벼운 일상 대화는 여전히 수다쟁이로 남겠지만,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분야 정확한 근거가 없는 분야는 말 하기가 꺼려진다. 늦었지만 그러면 안되는걸 알았으니까.
방금도 MS 의 News Pro 앱 출시를 보며 1시간여 글을 썼지만, 단순히 내 생각들을 주저리 적기엔 도밍고뉴스의 미래가 걱정스러워 공개를 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고민들 끝에 나는 내가 직접 기사를 모으는 것 보다는,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하여 모으는 것이 더 낫겠다고 판단을 내렸다. 예를들어 조회수를 기반하여 주간 큐레이션을 한다는 등의 데이터 말이다.
이런 생각이 성장이라면 분명 더 나은 사람이 된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내 도전을 막기도 할 것이다. 저지르고 얻는 것 또한 분명히 있다. 지금의 내 상황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근거없는 도박은 삼가해야 하는게 맞는 것 같다.
도밍고뉴스는 계속 만들거다. 제대로 만들어지지도 않은 이 아이템이 내게 준 가르침을 생각해보면 난 기필코 이 아이템을 만들어야만 한다. 얼마나 지속 될 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한 오랜기간 함께 성장하고 싶다.
도밍고뉴스 페이스북 페이지를 좋아요해준 130명의 분들께는 어떤 컨텐츠를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다. 더이상 매일 같이 4~5시간동안 기사를 큐레이션 해서 5개의 기사를 뽑아내는 일은 하지 못할 것 같다. 좀 더 전문화 하려다 보니 이 분야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란걸 알았거든.
도밍고뉴스는 좀 더 엔지니어스러운 방법으로 만들어나갈 생각이다. 그게 내 정체성과 더 맞는 것 같고, 내 발전에도 더 좋을 것 같다.
이 글을 읽어준 당신을 비롯하여 이 아이템을 지켜봐주시는 모든 이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 보답으로 계속해서 발전하고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