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욕심이 참 많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지. 어느 욕구 하나 버리기 쉽지 않고, 때문에 그 어느 것도 취하지 못 할 때가 있다.
2년차. 그때쯤 같이 살던 동기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도밍고 : 나... 행복하지 않아.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워.
동기 : 야, 너 잘하고 있는데 왜?
도밍고 : 아냐...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내가 분에 넘치게 너무 많은걸 들고 있는것 아닐까? 하는. 너무 많이 들고 있어서 더이상 줍지 못하는걸까? 하는... 하나씩 놓아볼래. 필요 없는게 있나...
바보같이 그때 내가 놓았던 것은 '건강' 이었다.
나는 나를 혹사시켰다.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밤 12시에 귀가하던 시절이었는데, 지하철에선 책을 읽곤 했고, 주말마다 세미나, 팀프로젝트, 커뮤니티 등을 누볐다. 늘 피곤에 쩔어 있었고, 그저 더 얻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늘 장트러블에 시달렸고, 신종플루에 걸려 1주일간 움직이지 못하기도 했다. 면역체계가 무너진 것이다. 결국 몸소 깨달았지. '아... 건강은 버리는게 아니구나...'
나는 성당에서 교리교사를 3년 정도 했었다. 그때 쌓았던 경험들은 아직도 소중하게 남아 내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때 중학생 아이가 내게 물었던 질문이 생각난다.
학생 : 쌤. 전 겁이 많아요. 너무 무서워요.
도밍고 : 뭐가 무서워?
학생 : 언니들도 무섭고, 다른 쌤들도 무섭고, 학년 바뀌면 만나는 친구들도 무섭고...
도밍고 : 나는... 안무섭니?
학생 : 에이... 쌤은 친하잖아요.
도밍고 : 너 원래 나랑 안친했잖아? 나 알게 된지 1년도 안되었고, 그치?
학생 : ... 그렇네요.
도밍고 : 너무 겁먹지마 ㅎ 누구나 태어날땐 아무도 몰라. 앞으로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고, 너가 더 행복해질 수도 있어. 그때도 지금처럼 친하게 지내면 되는거야. 지금 너의 친구들처럼 나처럼 무섭지 않게 친하게 지낼 수 있을꺼야.
캬... 내가 뭘 안다고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작게 시작하여 조금씩 키워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경험치가 축적되는 RPG 게임을 좋아하며, 커뮤니티에 속하는 것 보다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에 더 흥분을 느낀다.
지난 4년간 회사에서 내 입지 또한 그렇게 만들었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더 생길 때마다 얼마나 좋은지. 그렇게 나를 알아주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건 정말 큰 행운이다.
그럼에도 나는 늘 갈증이 있었다. 지금의 현실이 좋기도 하면서, 뭔가 다른걸 더 원하기도 했다. 처음엔 추가적인 무언가였던게, 어느새 회사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더 원하게 되었다. 처음엔 병행하자 마음 먹었던게, 어느새 그럴 수 없다는걸 깨달은 것이다.
나와 4년을 함께 일한 동료는 내게 '많이 내려 놓았다. 현실과 타협했다.' 라고 말한다.
나는 현실과의 타협이란 말이 참 싫다. 내가 굉장히 속물이 되는 것 같고, 패배자 같은 느낌이 든다. 뭐... 지난 경험을 돌이켜보니 속물이기도 했던 때도 있지만...
주변에서 내 행동들을 많이 이야기 해주는 편이다. 그런 이야기를 해주던 한 선배는 내게 그랬다.
'들어서 먹힐만한 사람이니까 하는 거야. 듣지도 않으면 아무도 말 안 해.'
나는 함께 하는데서 가장 큰 의미를 찾는 사람이다. 나 혼자 웃는건 의미가 없다.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내가 웃길 때 웃는 것도 당연히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웃는걸 볼 때 더 좋더라. 때문에 내가 항상 웃기 위해서는 내 주변에 행복한 웃음을 짓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그럼 난 항상 웃을테니까.
4년간 함께 했던 사람들을 떠나는건 굉장히 어려웠다. 내 학생이 했던 이야기처럼 나도 세상에 대한 무서움이 많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내가 모르는 곳을 가는 것. 하지만 정작 무서운건 그게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을 잃을 때다. 그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만큼 잃었다. 소중한 사람들과 멀어지거나 다신 보지 못하게 될 때 그 아픔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거리가 생길땐 가슴이 찢어지는 듯 하다. 그게 연인일 수도 있고, 친구나 선배, 후배일 수도 있지.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무언가를 더 얻고자 하는 마음은 내 여가 시간을 할애하게 만들었고,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이런 방법으로는 롱런 할 수 없음을 깨닫곤 방향을 바꿨었지.
내가 속한 회사, 커뮤니티 등을 내가 원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미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있겠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도록 적극적이 노력을 해보는 것이다.
같이 살던 동기와 그 이야기를 나눈 뒤 2년간 나는 회사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동료들, 부장님, 이사님, 상무님, 사장님 상대가 누구든 내가 속한 곳을 더 낫게 만드는 일이라 생각이 들면 그렇게 행동했다.
반응은 모두가 달랐다. 내 이야기에 버럭!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었고, 내 이야기를 신중히 들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2년간 지금 가진 것과 더 가지고 싶은 것 모두를 한 공간에서 한번에 얻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실패했다.
언젠가 주위를 돌아보니 나와 트러블이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늘 불만이 있던 내게 이런 환경은 익숙치 않았다. 그러다 문득 동료들이 나 외에 다른 이들에게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피한다' 는 느낌을 들 정도로 상대방에게 맞춰주고 있었다. 설마... 하는 생각에 물어보았다.
도밍고 : 있잖아, 평소에 상대방에게 요구를 더 하는 편이야? 아니면 맞춰주는 편이야?
동료 : 나는... 맞춰주는 편이지. 싸움이 싫거든.
그랬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좋아했던게 아니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이 내 생각대로 행동 할 때 좋았던 것이다. 내 말에 웃는다던가,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때. 그래야 난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나의 이면성에 충격을 받았다. 소름이 돋았다.
나는 생각보다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 대단한 사람도 아니었고... 그저 대한민국 20대 직장인 그 뿐이었다.
혼란스러웠다. 늘 철학적 고민을 많이 한다고 자부했지만, 그럼에도 내 실체를 파악한 순간 너무도 무서웠다. 내가 싫어지기도 했고, 세상 모두가 어두워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를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실수도 하고, 작은 성공도 얻고. 싸우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그때부터였을까? 집착을 조금씩 버리기 시작했다. 'CEO 라면 이래야 해!' '팀장은 이래야지!' '막내는 이래야 해!' 하하... 그런 잣대들이 얼마나 의미없는지 알게 되었다. 얼마나 나쁜 것인지도.
나를 받아들이는 방법은 '이해' 가 아니다. '인정' 이다. 나는 나 라는 자아를 인정해야 했다. 세상에 나란 녀석이 있다는 것을 내가 '인정' 했다.
나를 인정하고 나니 그제서야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어떻게? 아... 저 사람도 나처럼 그냥 사람이구나... '인정'
스티브 잡스의 창의력, 박지성의 정신력, 오바마의 리더십, 호날두의 열정, 메시의 재능, 푸틴의 카리스마, 탐 크루즈의 외모.
그래, 저런 사람들이구나. 저 사람들은 저런 사람들 이구나... '인정' 하니 '이해'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본 모습을 가지고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꽁꽁 싸메 둔 내 내면을 그제서야 내게 개방했다. 이제 나는 나를 알게되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비법? '인정' 이다. 그저 그런 내 모습을 인정하면 되었다.
내가 주변 사람을 보고 웃는게 아니라, 나를 보고 내가 한 행동을 보고 웃는다라는 것을 인정하자 많은게 바뀌었다.
나를 욕하는 사람들이 조금 덜 무서워졌다. '아, 쟤는 나랑 안맞는군. 하고 인정하면 되니까.'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도 되니까.
아무도 만들지 않은 나만의 울타리를, 스스로가 만든 울타리를 부수자 굉장히 세상이 맑아졌다. 애초에 선도 악도 없고, 좌도 우도 없는거다. 그냥... 그렇게 볼 뿐인거다. 그들은 그저 그들인 것이지.
나는 나에게 더 집중하고 싶었다. 내가 속한 곳이 바뀐다고 해도, 내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진다고 해도 그건 내 행복이 아니란걸 이제야 깨달았다.
자기중심적? 이기적? 글쎄, 그게 사람인데?
풀어줬다. 넌 학자금을 갚아야 해, 넌 2억을 모아야 결혼 할 수 있어, 넌 착한 리더로 커야 해, 넌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하고, 넌 지각하지 않아야 하고, 넌 다이어트를 해야 하고, 넌...
버렸다. 나를 짖누르는 그것들을 버렸다. 그것은 내가 아니다. 뻥~ 차 버렸다.
한 달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감사하게도 한 달 동안 만난 사람들은 내게 많은 시간을 할애 해주었으며, 나와 많은걸 공유했다. 내 이야기를 깊게 들어주었고, 나를 응원해주었다.
또, 변할거다. 계속해서 변할꺼다. 나란 놈을 인정했으니 이제 내 행동을 이해하는건 굉장히 쉽다. 내가 어디로 가던 그 모습을 내가 좋아하니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 좀 무섭지만... 그래도 괜찮다.
내 이런 철학적인 고민들이 내가 만드는 삶에, 제품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모든걸 뒤엎고 처음으로 돌아간 '도밍고 뉴스' 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