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담론을 마주하며

정의란 무엇인가

by 오세용

책을 다 읽고 덮은 뒤 '멍~'함이 오래 가는 책이 있다.


책 속에 담긴 거대한 메시지가 머릿속을 휘젓기 때문이기도 하고, 미처 담지 못한 저자의 내공에 압도돼서이기도 하다. 이 메시지를 내 삶이 어떻게 녹여야 할지 소화하는 중이기도 하고, 도대체 이 메시지를 내 미래에 어찌 적용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서이기도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번역서 기준 2010년에 출판된 책이다. 책 좀 본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책장에 꽂혀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다. 나는 분명 책장에 꽂혀 있었는데, 읽으려고 보니 없어져서 중고로 구매했다.


책을 읽으며 초반엔 다소 짜증이 났다. 도저히 시간이 안 나서, 휴가를 쓰고 읽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도대체 이 책의 명성은 누가 준 것인지 짜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책이 술술 읽히더니, 책을 덮고 난 뒤에는 '멍~'함이 왔다.


현실에 집중해야 한다며, 내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며, 나만 잘하면 된다며 애써 외면하던 사회적 문제들이 떠오른다. 당장 내 일이 아니니, 내 자리만 잘 지키면 다 잘 될 거라 애써 외면했다. 상자에 넣어 뚜껑을 닫았지만, 뚜껑을 열고 나온다. 조금씩 비집고 나오더니, 뚜껑이 닫히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언젠가 내가 치워야 할 분리수거 통처럼 말이다.


삶에 바쁘다며, 다들 이렇게 산다며, 나름 애쓰고 있다며 미루고 미뤘다. 그런데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저자는 묻는다. 당신은 정의로운 시민이냐고. 정의도, 시민도 모르는 나는 왜 바쁘고, 무엇에 애쓴 걸까.


얄팍한 이익에 흔들린 그동안의 경험이 부끄럽고, 꽤 고상한 척 했던 때가 떠올라 또 부끄럽다. 훗날 떠오를 현재가 보여 숨을 곳이 없다.


묵직하다 못해 혼미한 이 거대 담론을 우리는 얼마나 나누고 있을까? 내 존엄성을 지속해서 확인하고,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STEW에 감사하며. 꽤 의미 있는 휴가였다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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