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세용 Mar 19. 2016

도밍고 컴퍼니(8화) - 공황장애? 인생은...

이번 주에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어쩜 이리 많은 일들이 한 주에 다 일어났을까 싶은 한 주... 하루하루 스스로 스케쥴을 계획하다보니 주말과 평일의 개념이 없어지고, 낮과 밤의 개념이 없어졌다.


정말 정신이 없다. 가끔 자리에 앉아 있을 때나 걷고 있을때 '내가... 왜 앉아있지??' 라던가 '내가... 어딜 가고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 어떨 때는 미친듯이 몰두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다가, 어떨 때는 1분 1초가 고통스럽다.



이게... 공황장애인가??



연예인들은 대인기피증이나 공황장애를 많이 겪는다고 한다. 뭐, 늘 인생 자체를 자신의 캐릭터에 맞게 연기해야 하니 숨막히긴 하겠다... 싶었다. 헌데 내가 직접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할 줄은 몰랐다.


고민이 많아졌다. 퇴직금으로 시작한 도밍고 컴퍼니는 잔고가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도밍고 뉴스 앱을 출시 한다고 해서 당장 비즈니스 모델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는 고민이 굉장히 커졌다.

그래, 의식주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의식주를 고민한다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나는 취업 전까지는 부모님 댁에서 살았고, 취업 후 바로 독립을 했다. 회사 기숙사에서 지금의 오피스텔에 오기까지 4년간 무려 8번의 이사를 했지만, 의식주 걱정은 하지 않았다. 지방 프로젝트를 가면 늘 회사에서 숙소를 구했고, 먹는 것은 늘 잘 먹었다.


일단 도밍고 뉴스 앱을 출시하면 또 다른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니 최대한 자금에 대해서는 3월 한 달간만은 자유로우려 했다. 하지만, 내 성격상 그게 되질 않았다. 내가 몇 달 버틸 수 있는지 철저히 계산해보게 되고, 지출을 줄였을 경우의 내 심리상태와 정신력이 어떻게 변화될지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순간...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뭔가 굉장히 무거운 무언가가 내 가슴을 짖누르는 느낌이었다. 사방의 화이트 벽지들이 줄어드는 느낌이기도 했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굉장한 압박감이 몰려왔다.


창문을 열고, 현관문도 열었다. 화장실 청소도 해보고, 청소기도 밀었다. 좁은 방 안을 빙글빙글 돌아보기도 했고, 노래를 크게 틀어보기도 했다.


미칠 것 같았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이야기도 해보았지만, 전화를 끊는 순간 다시 압박이 시작되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이러다가 내가 다 놓아버리게 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하...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밖으로 나왔다. 헬스장을 하루도 빠짐없이 다녀왔다. 내 집이 무서워지는 경험을 해본적이 있는가? 내 집인데... 들어가고 싶지가 않았다. 무서웠다. 막... 숨을 쉴 수 없으니까.


본의 아니게 카페 된장남이 되었다. 밥을 해먹으려 했지만, 모니터를 쳐다보며 밥만 먹는 것도 삼시세끼 하려니 괴로웠다. 카페에 가서 샌드위치를 먹기도 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앉아있으니 한결 나았다. 하... 이젠 별게 다 괴롭힌다.



나는 원래 누우면 바로 잠드는 사람이었는데... 2시간에 한 번씩 밤에 깨는 이상한 증상이 시작되었다. 2시, 4시, 6시.


이대로는 우울증까지 올 것 같아 여기저기 지인들을 찾았다. 이번주는 월요일부터 매일 약속을 만들었다. 고맙게도 집 앞까지 찾아와주는 동생, 친구. 흔쾌히 약속을 잡아주는 지인들. 동네 독서모임을 나가보기도 하며 자꾸 머릿속에 멤도는 무언가를 떨쳐내려 애썼다.


아침에 일어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더 괴로움이 몰려오기에 아침에 눈이 떠지면 되도록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고, 그렇게 조금씩 패턴을 바꿔보았다. 환경을 바꾸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들으며 그렇게 압박감을 조금씩 벗어났다.



더 힘든 사람들...



취업하고 나서는 성당에 나가지 않았지만, 나는 가톨릭 신자다. 가끔 기도를 해보기도 했지만 최근엔 정말 기도를 많이 하게 되더라. 그래... 궁하면 찾게 되지.


나 힘들다고 기도했다. 안힘들고 싶다고. 나도 좀 많이 웃고 싶다고.



그거 아는가? 힘들다고 하면, 내 주위로 더 힘든 사람들을 보내준다. ㅋㅋ



요즘 정말 청년들 너무 힘들게 산다.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압박감에서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재정적으로 훨씬 힘든 친구들, 가정에 문제가 생긴 친구들. 업무가 힘들거나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긴 사람들.

거대한 문제들 앞에서 우리는 작은 소년, 소녀가 되곤 한다.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버티는 수 밖에.



파이썬 개발자로...



나는 자바 개발자다. 안드로이드는 자바로 만들 수 있고, 취업 후 안드로이드 개발자로만 살아온 나는 자바만 할 수 있었다.


5년차 개발자이지만, 스스로 초급 개발자라고 생각하는 나는 중급이 되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두려움을 없애야만 했다. 언어는 굉장히 많고, 각기 다른 색깔이 있기에 무엇이 좋고 나쁘고를 판단 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언어는 도구일 뿐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언어는 사라지고 새로 생겨난다. 자바가 좋다고 자바만 해서는 도태 되는 것이지... 이런저런 고민 끝에 나는 도밍고뉴스의 데이터를 모으는 작업을 파이썬 python 이란 언어로 시작하게 되었다.


현재, 내가 선정한 10개의 웹사이트에서 RSS 를 통해 기사를 긁어와 DB에 넣는 작업을 완료했다.



개발자로써 쾌감을 느낀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는 개발이 그저 '일' 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해야 하는 것.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기도 했지만, 여건이 안된다며 핑계만 대곤 했다.


내 아이템에 올인하는 순간 그런 핑계 따위는 필요없다. 나는 앱을 만들고 있지만, 백단이 있어야 앱이 있는 것이다... 결국 나는 파이썬을 만지작 하며 풀스택 개발자로의 첫 걸음을 떼었다.



뭔가 진전이 생기자 내가 가진 압박감도 조금씩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어제부터는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오피스텔에서도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뜻밖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대구에 간다. 인생... 모른다.



회사를 나오기 전 마지막 프로젝트가 대구에서 진행되었다. 나는 해가 바뀔 때마다 '단어' 하나를 정하는데, 그 해의 컨셉을 뜻한다. 그리고 2015년은 내게 '증명' 의 해였다.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 하겠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프로젝트를 하기로 하면서 나는 대구에서 회사에서 나를 증명하기로 했다. 열심히 했다. 업무를 두고 많이 싸우기도 하고, 요구하기도 했다. 일을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있다. 더욱이 나는 프로젝트가 종료되기 전에 철수하는 입장이었기에 제대로 해두고 싶었다.



그 덕분일까? 당시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사람들과는 퇴사 후에도 지속적인 연락을 하고 있었고, 그동안의 조각들이 모여 내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주었다.



마지막 프로젝트에서 내게 제안이 왔다. 두 달만 일해 달라는 것이다. 사실 지난주에 한차례 전화를 받기도 했었다. 그때는 거절했는데, 내 금전적인 문제와 심하게 압박을 받는 내 모습. 그리고 내 상황을 아는 사람들이 이 일을 하면 내 상황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설득에 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금전적인 욕심이 당연히 생기더라. 하지만, 이 바닥도 룰이 있기에 터무니 없는 금액을 받을 수는 없었다. 전화를 두고 연락을 하던 중 합당한 지점이 생겼고, 나는 잠정적 수락을 하게 되었다.



확답은 월요일에 주기로 했기에 나는 아직도 고민을 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여러 상황을 보았을 때 내게 좋은 기회이기는 하다. 개발자가 자신의 소스를 가지고 조금의 변경을 하는 것은 수월한 일이다. 내가 만든 소스이고, 내가 아는 업무이고, 친밀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나는 마음이 많이 기울었다.



숨이 막히는 현상과 나보다 훨씬 고통을 받는 사람들. 파이썬 개발자로의 시작과 급하게 진행 된 출장... 한 주 동안 일어난 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스펙타클 했다.

기도가... 먹힌건가? ㅋㅋ



회사를 다니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좀 더 열심히 해볼껄... 하는 후회도 있었다. 대구에 내려가게 된다면 나는 이 후회를 만회하려고 한다. 당연히 투입 된 업무가 가장 중요해지겠지만,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을 이용해 도밍고 뉴스를 계속해서 진행할 예정이다.


2달 뒤 5월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기분이 정말 새로울 것 같다.



많은 IT 스타트업들이 외주 용역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그래, 내가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 좀 더 많은 시간을 버틸 수 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도밍고 뉴스는 3월에 오픈하기 위해 계속해서 달리고 있다. 프로젝트에 투입되더라도 3월 중에 오픈할 수 있도록 달릴 예정이다.


도밍고를 응원해주는 많은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고통스러운 한 주를 보냈지만 도밍고 그래도 잘~ 살아 있다고 보고 드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밍고 컴퍼니(7화) - 개발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