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시작한 블로그에 현재까지 283개 글을 작성했다. 이 중 서평이 대부분인데, 175개다. 대학 시절 가장 잘한 일 하나를 꼽으라면, 블로그에 서평 을 쓰기 시작한 것을 꼽겠다. 부모님의 동기부여도 있었고, 여러 행운이 따랐지만 어쨌든 서평을 꾸준히 쓴 건 내가 한 것이다.
나는 책을 정독해야 쓴다. 서평 175개는 내가 175권을 정독하고 쓴 글이다. 굳이 정독하지 않아도 내게 뭐라 하는 사람이 없지만, 그저 내가 그게 편하다. 다 읽지 않으면, 책에 담긴 중요 메시지를 놓칠 것 같은 불안감이 꽤 크기 때문이다.
175권을 읽고 쓰며 서평 포맷이 크게 바뀐 것은 없다. 글이 매끄러워지고 깊이가 생겼지만, 서평 포맷이 바뀌지 않은 것은 바꿀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읽게 된 동기, 한줄평, 서평, 인상 깊은 문구로 이어지는 내 서평 포맷은 큰 흠이 없다. 그런데, 최근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커리어를 개발자로 시작해 창업을 지나, 기자 그리고 다시 개발자로 돌아오기까지 각기 커리어는 짧지만, 나는 이 커리어를 모두 연결했다. 모든 커리어가 내 선택이었고, 내가 원하는 배움이 있었다. 커리어를 연결하다 보니 내 관심사가 늘었고, 학습할 물리적 정보량이 늘었다.
사실, 한 분야에서 잘하기 위해서도 많은 학습이 필요하다. 각 커리어 기반 지식이 생기며, 쌓아야 할 정보가 확장됐고 이제는 선택해야만 한다. 정보를 선택할 시기가 된 것이다.
물리적 정보량은 늘어나는데, 내 시간은 한정돼 있다. 여기에 해가 바뀔수록 책임이 는다. 업무나 개인적이나 사회에서 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관심사를 줄여야 한다.
언젠가 내 글에 공감하는 사람이 생겼으면, 언젠가 내가 글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으면, 언젠가 내 글이 필요한 곳이 생겼으면. 블로그를 시작하며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시기가 빨라졌다.
내 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글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졌다. 내 글이 필요한 곳이 생긴 것은 정말 행운이다. 계획이 앞당겨지다 보니 부작용이 생겼다. 생각보다 생산할 정보량이 늘어났다.
쓰고 싶은 글은 물론, 써야 할 글이 생겼다. 쓰면 좋은 글은 물론 언젠가 썼으면 하는 글도 있다. 문제는 생산을 위해선 학습이 몇 배는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생산을 할지에 따라 어떤 학습을 할지 선택해야 한다. 정보를 선택할 시기가 된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어느새 8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뒤, 그리고 대학을 다닌 만큼 흘렀던 4년 뒤, 그리고 대학을 다닌 만큼의 2배가 흐른 오늘까지. 크게 세 번 작은 좌절을 겪었다. 언제까지 내가 학습을 위한 학습을 해야 하는가? 하는 좌절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갈수록 아이가 되는 것 같다. 배울수록 모르는 것 같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뭘 모르는지 아는 단계가 학습의 시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배울수록 작아지는 것은 어쩌면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 내 방향은 틀리지 않았을까?
새해를 맞이해 여러 계획을 세우고, 나름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이 열정이 또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만은 꽤 오랜만에 성장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동안 경험을 보자면, 분명히 이 열정은 식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이 열정을 오래 태워보고 싶다.
어쩌면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깨우친 시기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스스로 학습을 유도하는 방법을 깨우친 시기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스스로 학습에 재미를 들린 시기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학습할 것이, 생산을 위해 학습할 것이, 학습을 위해 학습할 것이 넘치는 지금은 꽤 괜찮은 시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