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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치나 Apr 18. 2024

리뷰)카지노믹스의 허구

굴뚝 없는 황금산업은 없다


    일본의 카지노 합법화에 반발하여 그 실상을 고발하는 책. 다만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일본 카지노 합법화에 대한 정치적 관심보다는 일본 국내 도박의 실태, 특히나 파칭코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국내 도서 중에서 파칭코의 부정적인 실태를 보여주는 책을 찾아봤으나, 파칭코 하나를 중점적으로 해체하여 비판하는 책은 보이지 않았기에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파칭코가 자주 언급되고, 때로는 콜라보 형식으로 파칭코 기기를 내기도 한다. 작중 가벼운 여가 정도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불운한 가정 환경이나 다량의 빚을 동반한 암울한 분위기가 동반되는 것이 대다수다. 일본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파칭코를 접한 뒤, 도대체 파칭코가 무엇인지 궁금하여 일본 여행 당시 파칭코 매장에 방문해 봤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이전부터 생각하던 도박장이란 분리된 장소에서 출입자에 대한 검문이 있는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장소였다. 그러나 직접 일본에서 마주한 파칭코는 예상과 완전히 달랐다. 놀랍게도 파칭코 매장은 번화가 가운데뿐만 아니라 일반 거주지 인근에까지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입장 시 신분에 대한 증빙을 요구할 줄 알았지만, 아예 입구를 지키는 인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일상생활을 하다 남는 시간에 피시방이나 카페에 들어가는 것만큼 집 주변의 열린 여가 공간이 바로 파칭코였다.


    도박의 일종인 파칭코가 어떻게 도심 한가운데나 민간 거주지 주변에 위치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일반 매장처럼 오픈된 형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일본은 공식적으로 법에 따라 도박이나 복권의 판매를 금지하고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특례법에 따라 형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예외적인 공영도박이 6개가 있다. 전후의 혼란 속에서 부흥을 명목으로 경마, 경정, 경륜, 오토레이스, 복권이 형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1998년 토토가 추가되었다.


    전후 부흥이란 명목이 사라진 지 오래인데도 특례법이 유지되는 점도 신기하지만, 그 이상으로 놀라운 것은 파칭코가 특례법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칭코는 일본 법체계 안에서 도박이 아닌 풍속법에 근거한 유기, 즉 오락으로 취급되고 있다. 파칭코를 한 대가로 받는 것이 돈이 아닌 경품이기에 도박이 아닌 일시적 오락이라는 논리이다.


    물론 사람들은 당연히 경품을 그대로 가져가지 않고 파칭코 근처의 매입 업자에게 환전받는다. 실질적인 도박이나 다름없지만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이러한 매장, 매입 업자, 그리고 경품 도매상을 오가는 삼점방식은 1961년 전직 경찰에 의해 고안된 이후 계속되고 있다. 놀랍게도 자금의 투명화 구실로 경찰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 방식은 전직 경찰들이 파칭코 업계에 취업하며 일본 경찰의 이권과 맞물려 일본 사회에 깊은 뿌리를 내렸다.


    실질적인 도박임에도 오락이라는 빌미로 진행되는 파칭코 산업은 일본 사회의 경제, 정치 아래에 오랜 기간 뿌리를 내려 이제 와서 완전히 철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성장해 왔다. 파칭코로 인한 도박 중독자는 국가적으로 엄청난 사회 비용을 일으키지만, 국가는 도박 중독을 사회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취급하고, 오히려 카지노를 합법화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데 비판을 가하는 게 이 책의 요지이다. 제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 그 돈을 어떤 식으로 환원하더라도 도박 중독자에 의한 사회적 비용의 증가로 이어지면 카지노의 도입은 모순일 뿐이다.





    일본에서 유명한 게임이나 만화가 파칭코 업체와 협업하는 일은 그렇게 드물지 않다. 단순히 캐릭터를 빌려서 겉모양만 꾸미는 것이 아니라 음성과 전용 애니메이션까지 만드는 등 매우 적극적이다. 일본 사회 내에서 많은 돈이 흐르는 곳에 서브컬처 산업이 호응하는 모습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직접 파칭코를 보고 그 실태를 마주하니 복잡한 생각이 든다.


    만화나 애니메이션도 결국 돈을 위해 존재하기에 속하는 사회 내부의 모순을 가지고 있는 모습은 당연하다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직접 느낀 파칭코 매장 내부의 기묘한 감각은 쉽사리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일렬로 정렬된 수많은 초호기 모양의 보라색 기계, 그리고 그 기계들 앞에서 멍한 눈으로 구슬을 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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