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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비 Jan 24. 2022

혼자 사는 내가 앞으로도 유지하고 싶은 규칙 2가지

곧 2월 14일이 오면 난 가족들로부터 독립한지 3년이 된다.


오래 전, 엄마가 사주를 보러가서 나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항상 듣던 말은 " 당신 딸은 해외로 나가거나 혼자 독립해야지 잘 살아~"

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이야기가 아주 먼 미래의 동화 속 그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그림은 어느덧 현실이 되었고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내가 그때 엄마가 들은 말 한마디가 무슨 뜻인지 생생하게 체험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가 직접 만들어가는 시간들로 24시간을 구성한다는 것은

실은 마법과도 같은 일이었다.


누군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온전히 내 시간을 만들어가고

그 시간 속에서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목소리들은 

온전히 나로서 살도록 해준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고하는데

'나'로서 살아가는 환경을 만들고 나면 그 질문이 인생에서 사라지게 된다.

대신 어떻게 '나'를 더 멋지게 누리며 살아갈까? 라는 질문이 생긴다.

이 순간 나는 이미 내가 누구인지 너무나 뚜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이 어떤 성격의 사람이든, 주변 상황과 경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나는 언제나 내 안에 그대로 있어준다.


그 느낌을 느낀지 3년이 되었다.


이처럼 혼자 있는 이 순간을 이렇게 평온하게 누릴 수 있게 해준 

 규칙들은 분명 존재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내가 혼자 있는 순간을 오랜시간 누릴 수 있던 것은 아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나도 외로워질 때가 있었고,

밤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공포가 몰려올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 규칙은 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따스하고 포근한 담요 위로 나를 옮겨주는 듯했다.



첫째,

스마트폰 인터넷은 

밤 12시부터 낮 12시까지 사용하지 않기


침대에서 누워서 하는 스마트폰과 거리두기라...

그것은 '거리두기 시대'에 더욱 어렵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없는 시간의 가치는 그만큼 커다랗다.

내가 까먹었던 일, 

기억해야할 문장들, 소통해야할 사람들, 주변에 보다듬어야줘야할 것을 눈 앞에 가져다준다. 


언어들이 휘몰아치는 화면에서 순식간에 나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불안에서 사랑으로 전환되는 시작이 되는 것이다.


아니 근데 요즘 같은 세상에 12시간씩이나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겠다. 물론, 알람이나 유튜브 뮤직 같은 것은 사용한다.

내가 사용하지 않으려하는 것은 딱 다음 목록이다.


카카오톡 / 네이버


이 2가지 중에 네이버는 검색할 때만 사용하고 뉴스판을 삭제한지 어느덧 3년이 넘었다.

뉴스는 경쟁 게임판이다.  두려움, 분노, 화를 자극하여 클릭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제목을 잘 쓸지 우열을 가리는 곳이다.

우리가 진짜 봐야할 본질이나 도움을 받아야할 곳이나 도움을 주어야할 곳들은

뉴스가 아니라 직접 검색할 때 더 자세히 나온다. 

뉴스를 끊은지 3년이 넘어가다보니 한 개의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될 경우

이 기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가 오히려 더 뚜렷하게 보이는

넓은 관점의 통찰력까지 얻게 된다.


그 다음 카카오톡,

클라이언트와 일을 할 경우에도 나는 가능하면 낮 12시부터 소통한다.

엄청 급하게 소통해야하는 경우의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급하게 소통해야하는 곳에는 오직 

마음이 급하고 강박증이 있는 사람들만이 존재한다.

(한 때는 내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알게된 사실이다.)


급하게 연락해야 할 일이 있을 경우 전화가 올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아예 발생하지 않게끔

무작정 급하게 무언가를 요청할 가능성이 있는 클라이언트와는 아예 일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일에 대한 계약 내용이 굉장히 두루뭉실하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기에 처음부터 티가 난다.)


이렇게 최소한 자신이 장기적으로 건강하게 생활하기 위한 규칙을

정해두는 것은 삶의 행복을 오래 유지하는 아주 기본적인 토대이다.


'일'보다도 일을 하는 '나'의 안정적인 습관들을 지키는 것.


이런 건강한 습관들을 외부의 사람들하고도 

편안하게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한국에서도 인간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업무환경이 점점 조성되어갈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새로운 일의 문화가 아니라 

당연히 처음부터 그랬어야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렇게 외부의 다양한 사람들과의 소통에 시간을 정해두는 것은

나의 내면 세계가 갑자기 등장한 휘몰아치는 바람이나,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로부터 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상대방은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말이나 행동이고 나에게도 아무렇지 않은 말이나 행동일 수 있지만

밤과 아침처럼 몸의 각성상태가 높은 시간에는

그것들이 나의 무의식에 깊게 새겨지기 쉽다. 

그런 말과 행동을 주고받는 것을 아침에도 밤에도 자주 하게될 경우

나의 하루 생각패턴은 굉장히 불규칙적으로 오르락 내리락한다.

그것은 내가 정말 집중해야할 일에 집중이 어렵게 하는 것은 물론,

충분히 안정적인 상태에서도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을

굳이 불안정적인 마음상태와 모습으로 처리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내가 한국에서 직장인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직장을 다닐 때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와 원인 모를 질병을 얻게 되는 이유는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 (신체와 마음) 를 완전히 차단한 채, 

'의무감'이라는 테두리에 갇힌 업무들만을 처리하는데 몰두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은 당연히 경직되고 순환이 되지 않는 상태로 들어간다.




둘째,

일어나자마자 먹는 것은 하루 중 가장 좋은 것을 먹는다.


공복 상태에서 어떤 음식을 먹을까? 고민하는 것은

아주 깨끗하고 하얀 도화지 위에 어떤 물감을 칠할까? 고민하는 것이다.

어떤 물감을 칠하든, 그 깨끗한 도화지에 가장 선명하게 남을 것이며 뒤에 그리게 될 그림의 방향도 정해준다. 그 물감의 색깔이 어둡고 탁할 수록, 그 위에는 맑고 발랄한 색의 그림은 그리기 어렵다.



우리의 신체도 마음도 마찬가지다.

먹는 것은 나의 몸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의 마음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3년 동안 내가 먹는 음식들을 더 선명하게 관찰하게 되면서 알게된 명백한 진리였다.


일어나자마자 급하다고 먹게 된 먹다남은 치킨은 그날 하루 이유없이 불쾌하고 쉽게 짜증나는 기억까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일어나자마자 차분한 상태로

따뜻하게 끓인 맑은 차를 마시고,

달콤하고 싱그러운 사과 1개를 먹은 날은 그날 노력하지 않아도 기분이 좋고,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라, 지난 날을 돌이켜보았을 때 통계적으로도 그랬다.

가장 먼저 먹는 음식만큼은 철저하게 황금 보석처럼 대우해주고

그런 나 자신 또한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고급진 사람으로 대우해준다.




위의 2가지만큼은 내가 앞으로도 꼭 잘 지켜가고 싶은 규칙이다.

지금까지 혼자 살아오면서 이 규칙들은 항상 나의 중심을 잡도록 도와주었다.

자기계발서와 심리학책들을 이제는 지겹게 느낄 정도이다.


나를 위한 모든 규칙은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이 규칙들을 실천해오면서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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