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 수술 때문에 나 지방으로 발령 날 거다”
같은 과에서 근무하던 K형님이 다음 주부터 집 근처 지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고 불쑥 말을 꺼냈다. K형님의 무남독녀 공주님은 선천적으로 신장에 문제가 있었다. 1년에 한 번씩은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고 있었다. 아이를 돌봐야 하는 이유 때문에 지사에서만 근무하던 K형님은 승진을 위해 본부에서 2년 정도 근무를 하고 있던 차였다. 이번에는 상황이 극심하게 나빠져 소아과, 비뇨기과 등 각기 다른 분야 세 명의 의사가 통합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장에 구멍을 뚫고 신장 안에 가득 차 있는 고름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 예상시간은 10시간 정도.
K형님의 애달픈 그 눈빛은 와이프 뱃속 쌍둥이에 대한 기형아 검사 결과를 들었던 8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다운증후군이 의심됩니다. 더 정확한 판정을 받고 싶으시다면 양수 검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청천벽력 같은 얘기였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특수학교, 차가운 사회적 시선, 마음의 상처, 평생 보살핌...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너무 복잡했다. 가슴도 답답했다. 아내는 흐느꼈고, 나는 담담한 척 아무 말 없이 아내를 토닥거렸다. 며칠이고 인터넷 검색을 하던 아내가 내게 말했다. “나 양수 검사 안 받을 래. 양수 뽑는 주삿바늘에 태아가 다칠 수도 있대. 확정 판정을 받는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우리는 그렇게 ‘운명’을 받아들였다. 나는 이 아이가 세상에서 덜 상처 받도록 앞으로 내 인생 모두는 이 아이만을 위해서 살아야겠다고 조용히 다짐했다.
우리 부부가 운명에 대해 무뎌질 즈음 문제가 또 터졌다. 출산이 두 달 남은 어느 날. 태아 건강 검진 결과 한 아이의 성장이 멈췄다는 것이다. 다운증후군이 의심된다는 첫째였다. 둘째는 정상적으로 자라고 있지만 이대로 두면 둘 다 생명이 위험하다고 했다. 조기분만을 해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의사. 다음날 바로 병원에 입원을 했다. 의사는 늦출 수 있으면 출산을 조금이라고 늦추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엄마의 뱃속 하루는 인큐베이터의 일주일과 같습니다.” 와이프는 병원에 입원해서 열흘 동안 쌍둥이들을 뱃속에서 더 품었다. 그리고 출산.
첫째는 1.3kg, 둘째는 2.2kg. 건강한 아이들은 보통 3kg 정도로 태어나는데 우리 쌍둥이들은 그 건강을 1/3, 2/3씩 나눠서 태어난 것처럼 보였다.
하늘이 도우셨을까, 첫째가 다운증후군 가능성이 높다는 의사의 진단은 오진이었다. 몸집은 작았지만 첫째는 정상이었다.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마음도 잠시, 손바닥 만한 크기의 첫째는 온몸에 주삿바늘을 꽂은 채 두 달을 인큐베이터 속에 갇혔다. 아내는 아이 온몸에 바늘 꽂은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며 병원에 오지 못했다. 하루 면회 가능시간은 30분. 나는 매일 저녁 인큐베이터 앞에서 ‘섬집 아이’ 자장가를 불러줬다. 집에 돌아올 때는 아빠, 엄마 아들로 세상에 찾아와 줘서 고맙다는 말을 속삭였다.
지금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우리 첫째. 하지만 몸집은 작아서 쌍둥이 동생보다 한 살 어린 아우처럼 보인다. 출산을 도와주신 산부인과 선생님께 첫째가 잘 크지 않아서 걱정이라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 주는 소중한 말씀을 선물해주셨다. “아버님, 건이가 몸집이 작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다른 아이들이 이만큼 자라기 위해서 3배의 노력을 했다면, 건이는 9배의 노력을 한 아이예요. 대단하다고 칭찬해주셔야 해요” 또래보다 몸집이 작아 스트레스를 받던 건이는 선생님의 그 말씀에 어깨가 우쭐해졌다. 현재 건이는 키는 좀 작지만 마음이 단단한 아이로 잘 자라고 있는 중이다.
결혼 전,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평범하고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 보니 건강한 아이를 임신하는 것, 건강하게 아이를 출산하는 것, 그리고 건강하게 아이를 키워가는 것,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것이 없다. 그 평범한 임신, 출산, 육아 하나하나가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힘든 시간은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된다. 어려움을 이겨낸 경험은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큰 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고난 속 순간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추억이니, 삶의 원동력이니 하는 낭만적인 말들은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한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낸 나에게 K형님의 상황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 그냥 ‘형님 건강 먼저 잘 챙기라’는 말 밖에 전할 수 없었다.
‘형님, 힘내십시오. 멀리서나마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