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때로 기억된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가. 그녀는 사연이 많았다. 그래서 더욱 보호 본능을 일으켰다. 나는 그녀에게 연민인지 뭔지 모를 감정을 느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낀 그 감정에서 상당한 날동안 헤어 나올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순정만화 속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일곱 살 여름이었다. 누나와 형은 초등학생이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놀러 갔던 큰 이모집에서 만화책이란 것을 처음 보게 됐다. 순정만화였는데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만화책을 덮고서 두근두근하고 아련했던 그 감정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한 달 정도 계속됐던 것 같다. 순정만화 속 그 여주인공에 대한 아리고 아리던 그 감정. 지금 생각하면 나는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였던 것 같다.
얼마 전 고향집에 다녀왔다. 2주 간격으로 차이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칠순을 바라보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뵐 때마다 눈에 띄게 노인이 돼가셨다. 역설적이게도 고향집에 다녀오는 것은 기쁘고 슬픈 일이었다. 고향집에 갈 때면 아버지, 어머니를 뵐 수 있어 너무 좋았지만 고향집을 나설 때면 가슴이 너무 아려왔다. 어머니는 백발이 돼 있으셨다. 눈 건강이 나빠져서 염색을 못한 탓이었다. 밥을 차려주시고 설거지를 하려고 걷어 올린 팔뚝이 너무 가느다랬다. 앙상한 뼈에 축 처진 근육들이 간신히 붙어 있었다. 젊은 시절 삼 남매를 키우며 논으로 밭으로 일을 나가시던 그 건강한 팔뚝은 온데간데없었다. 아버지 건강도 좋지 않으셨다. 갑상선 저하증이 있어 약이 드시는데 아무리 밥을 드셔도 요즘 살이 찌지 않는다고 하셨다. 건강 검진을 받을 때마다 대장에 용종이 나와서 떼어내곤 하는데 그 크기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고도 말씀하셨다. 조직 검사했을 때 별 이상이 없었다며 걱정하시 말라고 말씀을 하시는 아버지는 혈액 순환이 잘 안되시는지 연신 앙상한 종아리를 주무르고 계셨다.
집에 돌아와 며칠이 지났는데도 어머니의 가느다란 팔뚝, 아버지의 앙상한 종아리가 잊히지 않았다. 자식 키우며 밥벌이하고 산다고 잘 살펴드리지 못하는 게 죄송했고 이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출근을 해도 퇴근을 해도 마음은 고향집을 한 발짝도 떠나지 못했다.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라 생각했는데 나는 ‘금감빠’(금방 감정에 빠지는 사람)에 가까운 듯하다. 내 감정 골의 깊이를 알 길이 없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힘들다.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되는 경우도 많지만 감정도 마찬가지다. 내 감정이지만 원하는 감정을 선택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슬픈 책을 읽고 슬픈 일을 꺼내 슬픈 글을 쓰면 슬픈 채로 산다. 살아갈 수 있다. 슬픈 사람은 할 말이 많기 마련이며 거기서부터 글쓰기는 시작된다.”
우연히 읽은 은유 작가의 글이 감정의 수렁에서 허덕이는 내게 손을 내민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내 감정의 깊이를 들여다보는 일. 그 깊은 수렁의 감정들을 끄집어내 적어 보는 일. 그리고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는 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려본다. 갑자기 그녀가 떠오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곱 살 아이의 마음을 빼앗아 갔던 순정만화 속 그녀. 일곱 살 때 내가 감정을 끄집어내 적어보는 일을 했다면 아마 그녀에게 첫 러브레터를 썼을 것 같다. 깊고 깊은 감정의 수렁 속 그 아련한 마음들을 삐뚤빼뚤한 글자들에 담았을 듯하다.
오늘은 아버지,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한통 드려야겠다. 식사는 잘하셨냐고.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다녀와서 또 가고 싶어 난리라고. 곧 다시 찾아뵙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