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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부동산 분양받으세요.

by 오늘도 생각남

“우리에게 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홀어머니 살아생전에 작은 땅이라도 있었으면. 콩도 심고 팥도 심고 고구마도 심으련만...”

‘땅’이라는 노래 가사다. 일곱 살 때쯤이었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때가. 누나가 초등학교에서 배워온 노래를 옆에서 따라 부르다 보니 가사를 외우게 되었다. 구슬픈 음정과 애잔한 가사가 일곱 살짜리의 입에도 잘 달라붙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땅’ 노래 가사를 무심코 흥엉거릴 때가 있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를 처음 만난 건 작년 8월이었다. 한 편씩 쓴 글이 어느새 100개가 되었다. 브런치와의 백 번째 만남. ‘100번째’라는 것에 뭔가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 같아 첫 글부터 99번째 글까지 쭉 훑어보았다. ‘브런치는 나에게 무슨 의미일까’를 생각하는데 문득 노래 ‘땅’의 가사가 생각났다. 그렇다. 브런치는 나에게 ‘땅’이었다. 콩을 심고 팥을 심듯이 내 생각과 감정의 씨앗을 심어 글이라는 열매를 키워낸 ‘밭’이었다. 글 농사를 전문적으로 지은 것은 아니라 큰 수확은 없었지만 그동안 뿌렸던 99개의 씨앗들은 새싹을 틔우고 나름 열매를 맺었다. 99개의 씨앗들을 돌아보며 그간의 소회를 정리해봤다.

‘크리에이터 둥이 아빠’에서 ‘아웃풋 하는 남자’로

처음 나의 브런치 작가명은 ‘크리에이터 둥이 아빠’였다.(브런치 작가명은 브런치 플랫폼 상의 ‘아이디’를 의미한다.) 크리에이터는 마흔이 되어 갖게 된 내 꿈이다. 소비자의 삶에서 생산자, 기획자의 삶으로 전환된 삶을 살고 싶었다. 쌍둥이 육아는 업무 시간 외 내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크리에이터’와 ‘둥이 아빠’를 합쳐 첫 작가명을 정했다.

현재의 작가명은 ‘아웃풋 하는 남자’다. 크리에이터가 굳이 자신을 크리에이터라고 소개하는 것은 촌스러운 것 같아 작가명을 바꿨다. 작가명에 삶의 지향성을 더 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세상이 주는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하는 인풋 중심의 삶을 벗어나 스스로 가치를 담은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 아웃풋의 중심의 삶. 나이가 들어갈수록 살고 싶은 삶의 방향이다.

카테고리 글쓰기가 정돈된 삶을 만든다.

브런치에서는 ‘매거진’을 발행할 수 있다. 매거진은 쉽게 말해 ‘카테고리’다. 브런치는 주제별로 매거진을 만들어 그 주제에 관련한 글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매거진은 총 10개까지 만들 수 있다. 카테고리를 분류해서 글을 쓰는 것과 카테고리 없이 글을 쓰는 것은 천지차이다. 그것은 계획이 있는 삶과 계획이 없는 삶의 차이와도 같다. 카테고리 글쓰기는 자기 관심 분야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나의 브런치 카테고리(매거진)는 총 8가지다. 육아, 글쓰기, 마인드맵, 마음공부, 기획, 건강, 필사, 단상 등. 내 삶은 이 8가지 카테고리 안에 다 들어있다. 관심사, 읽는 책, 쓰는 글 모두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앞으로의 삶과 아웃풋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하다. 카테고리는 ‘안테나’ 역할을 한다. 안테나가 전파를 받아들이듯 삶의 카테고리는 관심 분야 정보에 집중하고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게 한다. 안테나를 켜고 사는 사람은 허투루 읽지 않고 건성건성 듣지 않는다. 카테고리는 잘 정리된 ‘서랍장’ 역할도 한다. 카테고리 없이 글을 쓰는 것은 하나의 서랍장에 구분 없이 옷을 쌓아두는 것과 같다. 생각해보라. 코트, 바지, 셔츠, 속옷, 양말을 구분 없이 한 서랍장에 쌓아둔 상황에서 급히 필요한 옷을 찾아야 하는 불편을.


탄탄한 출력은 꾸준한 입력에서 나온다.


한 때 너튜브에 ‘1일 1 깡’이 유행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1일 1 브런치’를 도전했다. ‘아웃풋 하는 남자’라는 작가명에 부끄럽지 않게 ‘1일 1 아웃풋’을 목표로 필사적으로 글을 썼다. 한 달 정도 매일 글을 쓰다 보니 쓰는 행위는 익숙해졌다. 하지만 벽을 만났다. 동일한 패턴, 빈약한 어휘로 돌려막기를 하다 보니 글이 정체돼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용’을 생각하고 썼는데 쓰고 보면 ‘지렁이’였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필사’였다. 최애 관심인 글쓰기 관련 책(은유, 쓰기의 말들)을 정해서 ‘1일 1 필사’를 시작했다. 마음을 흔든 한 문장을 찾아서 내 상황에 맞게 변주해보기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아웃풋 하는 삶’은 역설적이게도 꾸준한 ‘인풋’을 통해 완성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됐다.

나를 향한 글쓰기 vs 남을 향한 글쓰기

글을 쓰다 보니 글은 독자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구분이 됐다. ‘나’를 향한 글쓰기와 ‘남’을 향한 글쓰기. 바꿔 말하면, ‘표현하기’ 위한 글쓰기와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 둘은 비슷한 듯 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글쓰기는 쏟아내기가 중요하다. 반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는 정리하기가 중하다. 물론 표현하기 위한 글쓰기도 누군가에게 보여줄 목적이라면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글쓰기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남을 향한 글쓰기에 앞서 나를 향한 글쓰기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먼저 쏟아내야 정리할 게 있는 법이다.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첫 수확 농산물을 내다 팔 생각부터 하는 것은 욕심이다. 우선 이것저것 심어보고 성공과 실패를 경험해봐야 한다. 가끔 내 땀으로 결실을 맺은 상추를 따다가 가족들 밥상에 올려놓은 행복감을 맛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 유명 유튜버가 말했다.

“70,80년대 산업화 시대에는 어느 곳에 땅을 사느냐가 중요했잖아요. 디지털 경제 시대에는 디지털 부동산이 중요해질 겁니다. 어느 디지털 매체를 사용했는지, 안 했는지에 따라 부의 지도가 달라질 겁니다.”


브런치는 디지털 부동산 분양소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게 ‘브런치’며 ‘다음’이라는 디지털 공간을 분양해준다. 그것도 무료로. ‘브런치 북’이라는 글 농사를 잘 지으면 값을 두둑이 쳐서 대신 팔아주기도 한다. 어서 빨리 브런치에 작은 디지털 땅덩어리를 분양받자. 그리고 이왕 글을 쓸 거라면 브런치에 쓰자. 콩도 심고 팥도 심을 ‘땅’은 아무나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인생 글을 심을 수 있는 ‘디지털 부동산’을 가진 능력 있는 부모는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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