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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항상 남을 향해서만 글을 쓰나요?

by 오늘도 생각남

나는 글쓰기 공부 장수생이다. 글을 잘 쓰고 싶어 10년째 글쓰기 공부 중이다.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배워 본 적은 없다. 직장생활을 하며 때때로 글쓰기 책을 읽고 유튜브를 통해 가끔 작가들의 글쓰기 강의를 들은 정도다. 장수생 특징 중 하나가 자기 시험은 못 보지만 공부한 것은 많아서 훈수가 는다는 사실이다. 글쓰기 공부 10년 차 장수생으로서 최근 깨달은 사실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내부 고객부터 만족시켜라.’ 마케팅의 기본 원칙 중 하나다. 그 원칙은 기업의 크기에 관계없이 적용된다. 작은 식당조차 예외가 아니다. 직원들의 불만은 손님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서비스에 불만족한 손님들은 아무리 음식 맛이 좋더라도 그 식당을 찾지 않게 된다. 문제는 아는 것과 실천은 별개라는 점. 알면서도 내부 고객을 챙기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내부 고객 우선 원칙’은 글쓰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점까지 포함해서.


글쓰기는 독자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나’를 향한 글쓰기와 ‘남’을 향한 글쓰기. 전자의 대표적인 사례가 ‘일기’다. 하루 동안의 경험과 단상을 적는 일기는 독자가 ‘나’ 자신이다. 형식, 문법, 기교 모두 필요 없다. 그냥 좋으면 좋다고 짜증 나면 짜증 난다고 적으면 된다. 자랑거리를 쓰던 화가 난 일을 적던 내 마음대로다. 쓰다가 마무리가 안 되면 멈춰도 그만이다. ‘감성의 배설 행위’라 볼 수 있다. 사람은 먹으면 싼다. 먹기만 하고 싸지 못하면 병이 된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경험하고 뭔가 느꼈다면 표현해야 한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쌓아놓기만 하면 병이 생긴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병. 그리고 갑자기 폭발해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병.


시인 이훤은 ‘군집’이란 시를 통해 표현하지 못해 생긴 병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세계에 검열당하고

나에게 외면당해

잉태되지 못한 감정들이 모여

내밀히 일으키는

데모


누군가는 그것을 우울이라 불렀다


이따금 정당하기도 했다.


‘남’을 향한 글의 대표적인 사례는 칼럼이다. 칼럼은 명확한 주장과 메시지를 담고 있다. 소위 의도가 있는 글이다. 독자의 생각이나 마음을 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도하고 싶은 욕망이 깃들어 있다.


‘나’를 향한 글쓰기와 ‘남’을 향한 글쓰기의 중간쯤 ‘에세이’가 있다. 일기인 듯 일기 아닌 일기 같은 글. 에세이는 의뭉스러운 글이다. 일기처럼 필자의 경험을 담담히 적은 듯 보이지만 사실 에세이 또한 ‘남’을 향해 있다. 칼럼이나 논설처럼 메시지를 강하게 드러내지 않을 뿐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글마다 나름의 목적이 있지만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남’을 향한 글을 쓰고 싶어 한다. 자신의 생각을, 제품을, 그리고 콘텐츠를 전달해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고 독자에게 잘 전달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고 글도 써본 사람이 잘 쓰는 법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듯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 역시 연습이 필요하다. 글쓰기의 기본은 생각 쏟아내기다. 쏟아낸 생각을 정리하고 다듬는 것은 그다음 문제다. 여기서 우리는 ‘내부 고객 우선의 법칙’을 다시 한번 떠올려야 한다. ‘남’을 향한 글쓰기는 내용과 함께 형식도 중요하다. 반면 ‘나’를 향한 글쓰기는 앞서 말했듯이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 일기를 쓸 때 중요한 것은 내 감정을 쏟아내는 일이다. 충분히 쏟아낼 줄 알아야 그 안에서 남들에 보여줄 값진 메시지도 찾을 수 있는 법이다.


나도 독자다. 내 글의 첫 손님은 나 자신이다. 남을 향한 글쓰기에 집착하지 말고 나를 향한 글쓰기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남을 위한 ‘에세이’ 보다 나를 위한 ‘일기’를 먼저 써보자. 빛나는 통찰이 담긴 ‘서평’보다 내 감정을 느낀 대로 표현해보는 ‘독후감’을 먼저 써보자. 나를 위해 한 편 한 편 써 내려간 글들이 모여 탄탄한 나의 글쓰기 근육을 만들어줄 것이다.


‘잘 쓴 독후감 하나가 열 개 서평 안 부럽다’라고 위안을 삼으며 글쓰기 장수생은 오늘도 나를 향한 글을 한편 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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