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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질도 복불복이다

'나도 작가다' 공모전 불합격 후기

by 오늘도 생각남

행운의 편지는 오지 않았다. '삽질'을 해봤지만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내 꿈은 작가다. 베스트셀러를 쓰겠다는 목표는 아직 없지만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은 있다. 브런치와 EBS가 기획 한 '나도 작가다' 공모전은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내게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공모전 참여는 브런치 작가로 제한돼있었고 나는 브런치 작가가 아니었다. 불현듯 10여 년 전 성공한 '삽질'의 경험이 떠올랐다. 나는 공모전 신청 글을 먼저 쓰고, 공모전 접수 마감 사흘 전 가까스로 브런치 작가에 합격하여 공모전에 응모를 했다.


때는 바야흐로 2008년 9월. 나는 공무원 수험생이었다. 공무원 필기시험에 응시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당시 필기시험은 7월 말, 필기시험 결과 발표는 9월 말, 면접시험은 11월 초로 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필기시험 결과가 나온 후 면접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은 한 달 남짓. 필기시험 가채점 결과 내 점수는 2007년 합격점 커트라인과 동일했다. 다음 시험까지는 남은 시간은 1년. 혹시나 필기가 합격할 수도 있는 상황.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면접 준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면접 학원에 등록했다. 이번에 떨어져도 차후 면접 준비에 도움이 될 거라는 초 긍정적인 생각과 함께. 비싼 학원비를 내고 면접 준비를 시작하면서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9월 중순, 추석이 되어 고향집에 내려갔다. 공부하느라 힘들지 않냐고 묻는 형에게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조심히 이야기를 꺼냈다.

형, 나 면접 학원 다니고 있어.


형은 내게 필기 결과가 나왔냐고 물었고 아직 발표 전이라고 대답했다.

임마, 삽질하지 말고 그럴 시간에 공부나 해.


형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고, 말을 하고 있는 나도 웃음이 났다. 그리고 9월 말. 장난처럼 나는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내 점수가 작년과 동일한 합격 커트라인이었다. 10년도 지난 일이지만 그렇게 나는 '성공한 삽질'경험을 갖고 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걸까? 2020년의 삽질은 통하지 않았다. 나는 '나도 작가다' 공모전에 떨어졌다. 나름 깊은 고민 속에서 한 문장 한 문장 정성을 들였다고 생각했는데 평가위원들 눈에는 들지 못했나 보다.


불합격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복기를 해봤다. 부족한 점이 무엇이었을까? 나에게 남은 것은 또 무엇일까? 솔직히 아쉬움은 남지만 내게 남은 것도 많이 있었다.


우선 공모전에 제출한 글이 남았다. 당선은 못했지만 그 글을 쓰기 위해 40년 인생 전체를 몇 번이나 돌아봤다. 20년 전의 일기장을 들쳐보기도 했다.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 다움'은 또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 내가 어느 곳을 향해 달려왔는지, 앞으로 어디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지. 타인의 인정여부를 떠나서 40년의 삶을 정리하는 계기가 됐다.


내 꿈 중 하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브런치에서 '작가'로 인정받았고, '1일 1 브런치'를 목표로 글을 쓰고 있다. 많은 작가들이 말한다. 책을 쓰는 것은 어렵지만 글을 쓰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고. 책을 쓰려하지 말고 글을 쓰라고. 차곡차곡 쌓인 글이 어느새 한 권의 책이 돼 있을 것이라고. 나는 그 말을 굳게 믿고 있다. 브런치가 친절하게 구분해놓은 매거진에 비슷한 생각들을 잘 분류해서 쌓아두면 그것들이 어느새 책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날 것이라 믿고 있다.


만약 가 공모전에 당선됐다면 기쁘다, 감사하다 정도의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떨어진 지금은 할 말이 많다. 사연있는 남자가 된 것이다. 10년 전의 '삽질'까지 운운할 정도로.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좋은 글감이라고 내 자신에게 주문을 외워본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지만 나는 '삽질의 힘'을 믿는다. 할수록 느는 게 삽질이다. 실력도. 요령도. 글 쓰는 사람으로서 내 삽질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나를 흔드는 글감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더 단단한 '삽'을 갖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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