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장금이가 아들에게 하는 말, '된장이옵니다'
감자가 아니고 된장이옵니다
“홍시입니다, 설당이 아니고 홍시이옵니다”
음식을 먹어보고 어떤 재료가 들어있는지 맞혀보라는 수라간 최고 상궁의 질문에 어린 장금이가 대답했다. 왜 그리 생각했느냐고 수라간 최고 상궁이 물었다.
“예? 저는 제 입에서 고기를 씹을 때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고 생각했냐고 하시면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고 생각한 것이 온데...”
2003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 ‘대장금’의 한 장면이다. 거의 20년 전 드라마지만 나는 그때 어린 장금이의 똘망지면서도 명쾌한 대답을 잊을 수가 없다.
“아빠, 라면에서 감자 맛이 나는데요?”
아홉 살 준이의 말은 20여 년 전 '홍시'라고 말하던 어린 장금이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초등학교 2학년 준이는 최근 라면 맛에 ‘푹’ 빠져 있었다. 김치를 못 먹던 8살부터 라면은 먹기 시작했다. 음식에 넣기만 하면 요리가 다 맛있어진다는 마법 가루 ‘라면 스프’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라면 한 그룻을 다 먹지 못하고 아빠가 라면을 먹을 때 몇 젓가락 달라고 말하는 준이. 준이는 라면을 먹고 싶을 때 이렇게 말한다.
“아빠는 오늘 점심 라면 드세요.”
며칠 전 또 나에게 라면을 먹으라고 말하는 준이. 어린 나이에 몸에도 좋지 않은 라면만 먹이는 것이 신경 쓰여 라면 국물에 된장을 조금 풀어넣었다. 전에 삼겹살 집에서 먹어본 '된장 라면'의 구수한 맛도 생각났고, 인스턴트 라면 스프를 천연재료로 조금이라도 ‘희석’하고 싶은 아빠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라면 맛이 달라진 것을 준이가 눈치챈 것이다. 준이는 일전에 먹었던 된장찌개 맛을 기억하는 것 같았다. 된장찌개에 감자가 들어 있었는데 그 감자에 벤 된장의 맛을 기억하고 된장 맛을 감자 맛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준이의 말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건강 라면’의 기억을 소환했다. 어머니의 라면에는 항상 ‘다른 것’이 들어있었다. 어머니는 라면만 순수하게 끓여주시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항상 라면에 무엇인가를 추가하셨다. 떡국 떡이나 만두를 넣어주시거나 라면 스프 대신 고기 육수로 국물을 만들어주셨다. 나는 항상 불만이었다. 라면 ‘고유의 맛’을 느끼고 싶은 내게 다른 첨가물들은 모두 라면 맛을 방해하는 불청객일 뿐이었다.
‘아, 그래서 내가 라면에 된장을 넣었구나’ 라면에 천연 재료를 넣으려고 찾는 내 모습에서 밀가루 음식인 라면만 먹일 수 없어 건강한 재료를 조금이라도 더 넣어보려고 분주하게 찬장과 냉장고를 뒤지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문득문득 내 행동에서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보일 때가 있다. 어머니는 한 번도 육아법을 가르쳐주신 적은 없다. 하지만 육아가 처음인 초보 아빠에게 어머니는 '육아 교과서'였다. 아이를 키우다 문제가 발생할 때면 자연스레 어린 시절 어머니가 어떻게 하셨는지를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무래도 라면에서 감자 맛이 난다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준이게 희한하다며 끝까지 시치미를 뗐다. 그리고 속으로 넌지시 '진실'을 말해주었다.
‘준아, 앞으로도 라면에서 다른 맛이 나는 일이 많을 거야, 왜냐하면 아빠는 할머니 아들이거든. 참, 그리고 어린 장금이가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대’
‘된장입니다, 감자가 아니라 된장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