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그런 것까지 닮니?

by 오늘도 생각남

“건이는 벌써 끝났잖아요. 저는 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

국어 숙제를 하던 준이(8살)가 또 울음을 터뜨렸다. 글씨 따라 쓰기를 할 때마다 반복되는 광경이었다. 쌍둥이 형 건이(8살)는 글씨 따라 쓰기 숙제가 일찍 끝난다. 고민 없이 쓱쓱 써 내려가기 때문이다. 꼼꼼한 성격의 원칙주의자 준이는 시간이 배로 걸린다. 글씨를 쓰다가 선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지우개를 찾는다. 한 글자를 쓰면서도 썼다 지웠다를 수없이 반복한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큰 고구마 하나가 가슴에 콱 걸려있는 듯하다. 글자 하나 삐져나간 것을 고치지 위해 수없이 지우개를 찾으며 끙끙대는 준이의 모습은 고지식함으로 똘똘 뭉쳐있던 내 어린 시절의 복사판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미술시간이 제일 싫었다. 친구들은 신나게 그림도 그리고 색칠도 했지만 나에게 미술시간은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나는 그림을 있는 그대로 똑같이 그려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마치 '사실주의 화가'처럼. 똑같이 그려야 하는데 그렇게 그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한 획을 시작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색칠도 현실 세상 색깔과 같은 색깔을 찾으려고 했다. 얼굴은 살색으로 칠해야 하는데 크레파스에 살 색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친구들은 얼굴에 녹색도 칠하고 파란색도 칠했다. '저렇게 칠해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쉽사리 따라 하지 못했다. '조금 틀리게 그려도 돼', '현실과 다르게 그려도 상관없어'라는 말은 내 머릿속에 입력돼 있지 않았다. 초등학생 그림에 맞다 틀 리다를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을 텐데 나는 사실과 조금이라도 틀리게 그림을 그리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혼자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네모 칸을 벗어난 글자 하나를 바로잡기 위해 종이가 찢어질 정도로 썼다 지웠다는 반복하는 준이. ‘글자 좀 삐뚤게 써도 괜찮다’고 달래주다가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아하며 울먹이는 모습에 미술시간에 혼자 스트레스 받아가며 힘들어하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이 겹쳐 보여 화가 났다. 글자 하나 쓰는 것에 집착하지 말라고 준이를 혼내는데 어린 시절 중이염으로 고생하던 내게 화를 내시며 속상해하시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너는 왜 그런 것까지 닮니?”


만성중이염을 발견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청력검사를 하는데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이비인후과에서는 선천적으로 오른쪽 귀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며 오른쪽 귀에 물이 들어가면 고름이 생길 수 있으니 평소에 주의하고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으라는 진단을 내렸다. 내 귀에서는 간헐적으로 고름이 나왔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한 달의 1~2번씩은 이비인후과를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머리를 감을 때도 물이 들어갈까 봐 항상 화장지로 귀를 막았다. 수영을 하는 것은 염두도 못 냈다.


10년 넘게 중이염으로 고생하는 아들을 본 어머니께서 어느 날 화를 내셨다. ‘왜 그런 것까지 닮냐’며. 듣고 보니 할머니께서 중이염으로 고생 하셨고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하셨다. 아버지도 만성중이염으로 고생을 하고 계셨다. 내 중이염은 유전이었다. 10년 넘게 병원을 다니고, 머리를 감을 때마다 화장지로 귀를 막는 귀찮음을 감당하고 있는 것은 난데 그것 때문에 혼 난다는 것이 억울했다. 그래서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이냐’며 어머니께 항변을 했었다.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우다 보니 그 시절 아들에게 화를 내시며 속상해하시던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아이가 아플 때다. 열이라도 조금 올라 기력이 없는 아이를 보면 그렇게 가슴이 아플 수가 없다. 놀다가 얼굴에 작은 생채기라도 생기면 그 상처가 흉터로 남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매일매일 그 상처만 쳐다보게 된다. 아플 수만 있다면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어머니는 중이염으로 오랜 세월 고생하는 아들이 안 쓰러우셨던 것 같다. 혹시나 중이염이 더 발전해서 다른 데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노심초사하셨던 것 같다. 대신 아파줄 수 없는 상황에 무력감을 느끼고 열성 유전자를 건네 준 것에 대한 작은 자책도 있으셨던 듯하다.


돌아보면 10년이란 세월 동안 이비인후과에는 나 혼자 갔던 것이 아니다. 항상 내 뒤엔 안쓰러운 마음으로 가슴 졸이던 어머니가 함께 있으셨다. 지금은 귀 때문에 속 썩는 일 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는 어린 아들 손을 잡고 이비인후과를 다니시던 그 마음 그대로 지금도 아들의 중이염을 걱정하고 또 걱정하고 계시다.


“어머니, 저 이제 괜찮아요. 정읍으로, 전주로, 광주로... 어머니가 찾아주신 용한 의사들한테 치료받고, 어머니가 지어주신 몸의 습기를 제거하는 건강보조식품 먹으면서 다 나았어요. 이제 걱정 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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