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껍닥이다

by 오늘도 생각남

“제 시간이 너무 없어요.”


쌍둥이가 다섯 살쯤 됐을 때였다. 육아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나의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회사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하루 종일 쌍둥이와 씨름한 아내와 바통 터치를 하고 아이들을 돌봤다. 그리고 다시 회사 – 쌍둥이 육아 – 회사 – 쌍둥이 육아. 똑같은 생활이 반복됐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덧없이 행복했다. 하지만 하루 일과를 정리하거나, 나만의 여유시간을 즐길 수 없는 그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내 삶에 ‘나 자신’이 없는 시간이 누적되자 답답했고 스트레스는 날로 쌓여갔다.


한 번은 고향 집에 가서 어머니께 쌍둥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행복하지만 ‘나만의 시간’이 없다는 것이 힘들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대뜸 말씀하셨다.


“부모는 껍닥이다” (껍닥 : ‘껍데기’의 전라도 사투리)


‘아니, 왜 부모는 껍닥이에요? 아이들 삶도 중요하지만 부모도 하나의 인격체로 부모들 삶도 소중하죠’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어머니의 그다음 말씀을 듣고는 감히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나는 껍닥의 껍닥이야”


애벌레가 껍데기를 벗고서 한 마리의 아름다운 나비가 되듯이 부모는 자식의 성장을 돕기 위한 껍데기 역할을 하는 것이고 당신은 이미 껍데기의 껍데기로서 기능을 다 했다고 말씀하셨다.


문득 바짝 마른논에 쩍쩍 갈라진 땅처럼 갈라져 있는 어머니의 발바닥이 보였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발바닥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져 있었다. 어머니가 이불을 밟고 지나가시면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어머니 발톱은 항상 새까만 멍도 들어 있었다. 어렸을 때는 그 이유를 몰랐다. 그냥 어머니 발은 처음부터 그렇게 생긴 줄 알았다. 군대에 가서 발에 무좀이 생기고 나서야 어머니 발이 정상이 아니라 아픈 발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군대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전투화를 신고 있어야 한다. 통풍도 안 되는 쓸데없이(?) 튼튼하기만 한 전투화를 신고 하루 종일 훈련을 받다 보면 발에 땀이 차게 된다. 발에 땀이 찼다고 함부로 전투화를 벗을 수는 없다. 습하고 폐쇄적인 전투화 속에 갇혀있던 발은 결국 ‘무좀’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셨다. 농번기에 논에 들어갈 일이 많으셨던 어머니는 하루 종일 장화를 신고 계셨다. 끼니때가 되어 집에 돌아오셔서도 다시 논에 나가야하는 것을 아셨기에 번거롭게 장화를 신었다 벗었다 하실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 발은 물이 찬 장화 속에 하루 종일 갇혀있어야 했다. 그리고 군대에서 내가 무좀에 걸린 것처럼 어머니도 무좀을 피할 수 없었다.


‘부모는 껍닥이다’라는 어머니 말씀은 ‘너도 부모가 됐으니 아이들의 껍닥이 돼라’는 뜻은 아니셨다. 그것은 한 평생을 자식의 껍닥으로 그리고 이제는 껍닥의 껍닥으로 살고 계신 당신의 삶을 돌아보는 말씀이셨다. 그리고 당신이 가진 것 중에 가장 소중한 보물(알맹이)이 바로 '자식'이라는 눈물겨운 고백이었다.


꽃받침은 두 가지 역할을 한다. 하나는 꽃이 자랄 때 꽃을 덮어서 보호하는 역할이고, 다른 하나는 꽃이 필 때 꽃을 받쳐주는 역할이다. 꽃받침은 꽃의 껍데기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꽃받침 없이 자랄 수 없다. 또한 꽃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그 꽃을 받쳐주는 꽃받침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수많은 ‘조연’들이 있어 ‘주연’이 빛나는 것처럼.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평생 꽃받침 같은 삶을 살아오셨다. 물에 찬 장화 속에서 당신의 발이 마른 논보다 더 쩍쩍 갈라지는 것도 감수하면서.


부모는 껍닥이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껍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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