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1 =?
정답은 ‘2’가 아니다. ‘4‘쯤 되는 듯하다. 쌍둥이 육아 이야기다.
쌍둥이가 갓난쟁이 시절 나는 걸어서 퇴근해 본 적이 없다. 항상 집까지 헐레벌떡 뛰어서 퇴근을 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아내는 자꾸 독촉 전화를 했다. 아니, 구조요청 전화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집에 도착해서 출입문을 열면 아내는 울고 있는 한 아기는 등에 업고, 울고 있는 다른 아기는 가슴에 안아 흔들어서 달래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느 날은 거실에 주저앉아 쌍둥이와 함께 ’엉엉‘ 울고 있는 아내를 발견하기도 했다.
울음은 울음을 불렀다. 쌍둥이 하나가 울면 다른 하나는 항상 따라 울었다. 서로 울음 경쟁이라도 하듯 서로에게 질세라 빽빽 울어댔다. 그래서 아내는 하나라도 울리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썼다. 마치 두더지 게임에서 두더지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 주시하는 것처럼 아내는 쌍둥이 중 누구 하나라도 울음을 터뜨리려는 기색을 보이면 잽싸게 아기를 안아서 달랬다. 아내의 팔은 그리고 어깨는 남아나지 않았다.
‘애기 운다고 병 안 난단다. 애기 좀 울려도 된다.’
매일매일 쌍둥이와 씨름하는 며느리가 안쓰러우셨는지 어머니는 아기를 울리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울음‘을 아기의 언어라고 표현하셨다.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가 자신의 의사를 부모에게 전달하는 방법은 ’울음‘ 뿐이라고.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아기가 우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배가 고플 때, 기저귀에 변을 봤을 때 그리고 아플 때. 그것이 아기의 ’진짜 울음‘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나머지 울음은? 어머니 논리에 따르면 나머지는 모두 ’가짜 울음‘이었다. 앞선 세 가지의 기본적인 욕구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그냥 안아달라는 어리광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두 번 가짜 울음으로 부모가 자기를 안아주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조금만 불편한 것이 있어도 울어대는 것이다. 자기의 ’할리우드 액션‘에 부모가 즉각 반응해서 안아준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어머니는 아기의 ‘가짜 울음과 진짜 울음’을 구분해야 부모가 쉴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 말씀은 백번 옳은 이야기셨다. 하지만 초보 아빠와 초보 엄마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내는 혜안을 갖고 있지 못했다. 아내에게 어머니 말씀대로 쌍둥이들 좀 울리면서 키우자고 했다. 아내는 머릿속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아이들이 우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안된다며 정답(?)을 실천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팔이 아파서 도저히 아이들을 안아 줄 수가 없다며 우는 쌍둥이들을 안아서 달래는 것을 포기했다. 아기들이 우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지만 더 이상 안아주지 않았다. 아니, 안아주지 못했다. 우는 쌍둥이들을 내가 안아서 달랠 수 있었지만 어머니 말씀을 떠올리며 안아주지 않았다. 쌍둥이들이 울음을 터뜨리면 밥때가 되었는지, 기저귀 갈아 줄 때가 되었는지, 혹시 열이 나는 건 아닌지를 확인할 뿐이었다. 세 가지를 체크하고 나서 문제가 없으면 아기들의 울음을 모른 체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아기들의 울음을 무시했다. 그랬더니 언젠가부터 자기들의 ‘가짜 울음’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아기들은 안아주지 않고 바닥에 눕혀놔도 생글생글 웃으며 잘 놀았다.
초보 아빠와 초보 엄마는 그렇게 갓난쟁이를 키우는 핵심 비법을 하나 터득했다.
‘아기는 운다고 병이 나지 않는다. 가짜 울음에 속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