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것 좀 봐요”
쌍둥이와 놀다 보면 아이들이 엄마에게 조르르 달려가는 일이 종종 있다. 아빠랑 놀다가도 뭔가 스스로 기특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면 엄마에게 달려가 자랑을 하는 것이다. 레고로 멋진 장난감을 완성했거나, 그림을 그리다가 특이한 뭔가를 그렸거나, 혼자서 못하던 일을 스스로 해냈을 때가 그렇다. 같이 놀아주던 사람은 아빠였는데 아빠는 내팽개쳐두고 엄마한테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 가끔 서운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엄마에게 잘 보이기 위해 뭔가를 준비하는 과정에 이용당한 느낌. 아빠 먼저 보여달라고 해도 아이들에겐 항상 엄마가 ‘1번’이다.
아이들이 아빠보다 엄마를 먼저 찾는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바 있다.
‘엄마 엄마 이리 와 요것 보셔요. 병아리 떼 뿅뿅뿅뿅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어렸을 적 많이 들었던 동요 가사다. 제목은 ‘봄’. 이 노래는 1953년에 만들어졌다. 동요 속에서 신기한 것을 본 아기가 찾는 사람은 ‘아빠’가 아니라 ‘엄마’다. 노래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이 노래 작곡가는 아빠보다 엄마를 먼저 찾는 아이들의 통상적인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같은 부모인데 ‘엄마’를 먼저 찾는 ‘사랑의 기울어진 운동장’. 아빠들은 서운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아이들의 본성이라 할 수 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대결에서 아빠는 절대 엄마를 이길 수 없다. 엄마와 아이들은 원래 같은 편이다. 아니, 한 몸이었다. 아이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열 달 동안 엄마 뱃속에서 엄마와 교감을 한다. 탯줄을 통해 영양분과 사랑을 전달받고, 엄마의 모든 감정을 공유받는다. 세상에 나온 후에도 상당한 기간 동안 엄마 품에 안겨 엄마 몸속의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생명을 유지한다. 이것은 시작부터 출발점이 다른 ‘사랑의 불공정 게임’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의 크기와 관계없이 아빠는 항상 2번일 수밖에 없다.
아빠로서 ‘아빠’에 대해 돌아보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고향 집에 내려가면 언젠가부터 어머니를 꼭 껴안아서 인사를 했다.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해드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아버지와는 조금 절제된 동작으로 악수를 했다. 으레 그것이 부모님과의 인사법이었다. 한 번은 언제나처럼 어머니를 꼭 껴안은 다음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려고 했다. 그 순간 아버지께서 나를 껴안으시면서 인사를 하셨다. 어정쩡한 자세로 두 남자가 포옹을 했다. ‘아차’ 싶었다. ‘아버지가 부러우셨구나. 어머니만 안아 드려서 그동안 서운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고향 집에 내려갔을 때는 어머니를 안아 드리고 아버지와도 포옹하며 인사를 했다. 그 순간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시는 아버지. ‘그동안 참 많이 서운하셨겠구나’ 하는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사랑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처음부터 운명처럼 받아들이셨던 듯하다. 애써 1번이 되시려고 순리를 거스르신 적이 없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식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언제나 ‘뒷모습’으로 보여주셨다. 가장으로서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친 몸을 이끌고 매일같이 출근하시던 뒷모습, 당신보다 한참 나이 어린 상사의 아니꼬운 태도에도 자식들 생각에 깊이 고개를 숙이시던 뒷모습, 최근 발등 골절로 다리가 퉁퉁 부은 아들을 위해 부기 빼기에 좋다는 쑥을 캐러 이 산 저 산 찾아다니며 쑥을 캐시던 뒷모습...
‘아버지도 가끔은 1번이고 싶을 때가 있으셨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빠’라는 왕관의 무게. 맨 앞에 서서 힘들어도 힘든 내색 못하고,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앞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하는 사람. 가장의 외로움 들킬까 봐 그 쓸쓸함도 몰래몰래 눈치보며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사람. 아빠가 돼보니 아버지의 외로움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절대로 울지 않아, 남자기 때문에'
'너 대신 내가 맞서, 남자기 때문에’
드렁큰타이거의 ‘남자기 때문에’라는 노래의 가사를 들으면서 ‘남자’라는 가사가 ‘아빠’로 치환되어 들릴 때가 많다.
칠순이라는 연세에 아버지는 ‘기러기 아빠’를 하고 계시다. 어머니께서 손주를 봐주기 위해서 평일에 집을 비우시고 주말에 집으로 돌아가시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힘들게 농사일을 마치고 텅 빈 집에 들어가 냉장고를 열어 반찬을 꺼내 혼자서 식사하시고 설거지 하시는 아버지. 그 모습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많다.
돌아보면 아버지는 ‘양보’로서 사랑을 표현하는 분이셨다. 젊은 시절엔 아내에게 아이들의 옆자리를 양보하셨다. 나이가 들어서는 아이들에게 아내를 양보하고 계시다. 평생 2번으로서 아이들과 아내를 양보하고 계신 당신. 그리고 그 서운함과 외로움 감추고 ‘뒷모습’으로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하는 당신.
“아버지, 다음에 집에 내려가면 꼭 껴안고 인사해요. 서양식으로. 쌍둥이들도 함께요.”
‘절대로 울지 않아, 아빠기 때문에’
‘너 대신 내가 맞서, 아빠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