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은 보약이다

다친 아들을 위해 시골 어머니가 보내주신 건강보조식품

by 오늘도 생각남

어렸을 때 두 달에 한 번쯤은 집에서 제사를 모셨다. 누구 제사인지는 잘 몰랐지만 나는 제사가 좋았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푸짐하게 장만을 하셨다. 어린 나에게 제사는 그동안 못 먹던 음식들을 맘껏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제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순서는 '음복'이었다. 절을 건성건성 하고 아버지 입에서 '음복'이라는 두 글자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아버지가 '음복'을 외치면 누나와 형에게 뺏길세라 '곶감' 앞으로 달려갔다. 나는 곶감이 좋았다. 달콤하면서 부드러운 그 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가끔 딱딱한 곶감이 제사상에 오르는 날이면 조상님께는 죄송했지만 절을 할 맛도 나지 않았다.

* 음복 :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제사에 쓴 음식을 나누어 먹음


성인이 된 다음에도 어머니는 막둥이에게 꼬박꼬박 곶감을 챙겨주셨다. 대학교 시절 방학이 되어 집에 내려가면 막둥이 주려고 냉동실 깊숙이 숨겨두었던 곶감을 누나와 형 몰래 꺼내 주셨다. 노량진 고시원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때 어머니가 종종 김치며 멸치며 밑반찬을 보내주셨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가 지낸 다음에는 꼭 곶감을 보내주셨다. 성인이 된 막둥이는 어린 시절만큼 곶감을 좋아하진 않았다. 이제 곶감 그만 챙겨주셔도 된다고 말씀드릴까 하다가 어머니가 실망하실까봐 그만두었다.


며칠 전 어머니가 택배를 보내셨다. 발등 골절로 고생하는 아들이 안 잊히셨는지 하얀 스트리폼 상자에 뼈에 좋다는 음식들을 봉지 봉지마다 나눠서 보내주셨다. 식초에 담근 검은콩 빻은 것, 모과 가루, 정체 모를 알약, 그리고 곶감...

봉지 봉지 정성으로 포장한 어머니 마음들

곶감을 보는 데 갑자기 코 끝이 시큰해졌다. 최근에 집에서 제사를 모신 적은 없었다. 어머니는 곶감 좋아하는 막둥이에 게 언제든 곶감을 보낼 수 있도록 감들을 깎고 말려서 냉동실에 보관하고 계셨던 것 같았다.


돌아보면 어머니는 내가 힘들었던 시기마다 곶감을 보내주셨다. 재수 시절 , 대학 고시원 생활 시절, 노량진 공무원 수험생 시절 그리고 발등 골절로 퇴원한 지 며칠 안된 지금.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지만 곶감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또렷이 정리가 되었다.

곶감은 아무리 성인이 돼도 잊히지 않는
막둥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타지에서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어서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아들을 응원하기 위한
'최고의 보약'이었다.


곶감을 쳐다보며 한 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둘째 준이가 할머니가 보내주신 곶감을 보고 먹고 싶다며 달라고 했다. 아빠를 닮았는지 준이는 곶감을 좋아했다. 꼭지를 가위로 자르고 곶감을 반쪽으로 잘라서 접시에 담아 식탁 위에 올려줬다.


준이는 알고 있을까? 자기가 아빠 보약을 뺏어먹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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