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이(8살)가 사탕을 먹으려다 거실 바닥에 떨어뜨렸다.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는 쌍둥이 형 건이(8살)가 당연한 듯 말했다.
“아빠 갖다 줘”
건너 방에서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그리고 드는 생각.
'아빠가 땅거지냐?'
돌이켜보면 잘못은 나에게 있었다. 쌍둥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음식이 바닥에 떨어지면 아빠가 처리를 했다. 화장지에 싸서 버리거나 직접 먹거나. 아이들에게는 '바닥에 떨어진 음식 = 아빠 것'이란 공식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적 어머니는 밤늦게 혼자 식사를 하시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해질 무렵 아버지와 함께 농사일을 마치고 오신 어머니는 식사 전까지 하실 일이 많았다. 우선 아버지와 우리 삼 남매 저녁식사를 챙겨주셨다. 우리가 밥을 먹는 동안 어머니는 빨래를 하셨다. 들에서 일하시느라 흙 범벅이 된 작업복들과 삼 남매가 벗어놓은 옷 가지들을 방망이로 두드리셨다. 세탁기가 없었던 터라 모든 빨래는 손으로 하셔야 했다. 보일러가 없어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빨래를 하려면 큰 솥단지에 물도 끓여야 했다. 빨래가 끝날 쯤엔 어머니를 제외한 가족들이 먹은 식기들을 설거지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땀범벅이 된 작업복을 벗으시고 목욕을 하셨다. 그 일들이 다 끝난 후에야 젖은 머리를 말리시며 식사를 하셨다. 밤 10시가 넘어 저녁식사를 하시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때는 어머니 일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생각을 못했다. 당연히 저녁식사는 어머니가 준비하시는 것이라 생각했다. 빨래며 설거지도 우리(삼 남매)는 어리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라고 합리화했다. 어머니도 ‘공부나 하라’며 집안일은 잘 시키지 않으셨다. 그때는 그 수많은 일들을 어머니께서 혼자 하셔도 되는 줄 알았다. 어머니는 어른이기 때문에. 엄마기 때문에. 어른이 되고 나이 드신 어머니가 몸이 이곳저곳 아픈 지금에 와서야 그것은 무리한 일이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어머니는 그 당시 미래의 건강을 끌어와서 사용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몸이 더 쇠약해지신 것이다. 무리해서 일을 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무리해서 일을 해도 되는 체력도 없다. 엄마라고 해서 그래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스펀지다. 부모의 말과 행동이 곧바로 생각의 기준이 된다.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아빠가 먹으면 떨어진 음식은 아빠 것이 되는 것이고, 엄마가 무리해서 집안일을 혼자서 하면 집안일은 엄마 몫이 되는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배려하는 마음을 가르쳐 주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것이라는 생각. 아이들도 부모가 노력하고 있는 것들을 알 필요가 있다. 부모의 노고를 생색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를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 부모에게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타인의 작은 배려에도 감사하는 사람이 될 확률이 높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이들 교육에 대해 느껴지는 바가 있어서 생각을 정리하려고 카톡에 메모를 정리했다.
‘아빠가 땅거지냐? 땅에 떨어진 사탕을 아빠한테 들고 오는 준이. 내가 잘못 키웠다. 아빠도 새 것 먹고 싶다. 아빠는 땅거지가 아니다.’
아빠가 카톡에 적은 메모 내용을 보고는 자기 방으로 급히 뛰어가는 준이. 잠시 후 배시시 웃으며 나타나 나에게 사탕을 내밀었다.
"땅에 안 떨어진 새 사탕이에요 “
의도하지 않은 카톡 교육이 통한 걸까? 아니면 아빠를 달래려는 고도의 전략에 내가 넘어가는 걸까?
사탕의 뒷 맛이 달지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