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항상 강조하시는 레퍼토리가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건강 저축론’이다.
‘건강도 저축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는거다. 건강해야 뭐든 할 수 있다. 젊었을 때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이 들어서 고생하지 않도록 건강을 미리미리 챙기는거다. 나이 들어서는 젊어서 저축해뒀던 건강을 찾아서 쓰는거다’
학창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 지당한 말씀이다. 하지만 부족한 아들은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대답은 막둥이처럼 잘 하면서도(필자는 실제 ‘막둥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건강 챙기기는 항상 뒷전이었다.
어머니는 자식들 대신 자식의 건강을 챙겨주시려고 삼남매 집에 정기적으로 택배를 보내주셨다. 농사지으신 것으로 직접 만드신 참기름, 들기름부터 반찬거리들 그리고 건강보조식품도 빼놓지 않고 보내셨다. 양파즙, 붕어즙, 아침식사 대용으로 먹을 오곡이 들어가있는 미숫가루. 나이가 들면서 탈모가 고민인 아들을 위해 탈모 방지에 좋다는 검은 깨까지 꿀에 재서 보내셨다. 보내는 사람의 정성은 넘치고 넘치는데 정작 먹기만 하면 되는 그 쉬운 것을 나는 잘 실천하지 못했다.
한번은 어머니께서 전화 하셔서 또 건강 저축론 레파토리를 시작하셨다. ‘네, 네’ 대답하며 끄덕이고 있는데 갑자기 새로운 말씀이 ‘툭’ 튀어나왔다.
‘말하는 사람 있을 때 들어라, 후회하지 말고’
그 말씀에 나는 ‘얼음’이 되었다. 지나가면서 하신 말씀이었지만 뼈가 있는 이야기였다. 최근 어머니는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신 상황이었다. 오랜 농사일로 이곳저곳 아프다는 말씀은 전부터 하셨었다. 그런데 최근 팔을 들어올리지 못할 정도로 아프시다며 어깨 수술을 받으셨다. 눈도 콕콕 찌르듯이 아파서 일상생활이 힘드시다며 시술을 몇 번 받으셨지만 소용이 없었다. 머리에 하얀 눈이 내린 듯 백발이 다 드러나 있었지만 눈이 아프셔서 염색을 하실 수도 없었다. 내가 어른이 돼가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어머니는 노인이 돼가셨다. 인근에 사셔서 가깝게 지내시던 큰 이모부가 최근 중풍으로 쓰러지셨다. 큰 이모부는 어머니 바로 손 윗 언니의 남편이셨다. 우애가 좋았던 외가 어른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한 달에 두 세 번은 만나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셨었다. 큰 이모부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중매까지 서 준 특별한 분이셨다. 평소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자기관리를 잘 하시던 큰 이모부. 그러던 분이 하루 아침에 중풍으로 쓰러져 누워계시니 어머니도 많이 놀라신 듯 했다. 급격하게 나빠지는 건강과 주변의 사고에 어머니는 당신 건강도 자신하지 못하신 듯 했다.
어머니 말씀을 듣는 데 대중가요 가사가 문득 떠올랐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 흔들리지 말고’
가끔 외부 충격(?)을 통해 ‘부모님께 잘 해드려야지’ 라는 마음을 먹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용기내서 부모님께 ‘사랑해요’ 라는 말씀을 드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고백 직후 0.5초의 정막감을 견디기가 힘들 때가 많다. 아이들에게는 자존감을 키워준다는 이유로 ‘사랑해, 사랑해’라는 말을 잘도 하면서 평생동안 넘치고 넘치는 사랑을 주신 부모님께는 그 말씀 한번 드리리가 왜 그리 어려운지.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하나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대화의 끝에 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의 도입부에 넣는 것이다. 예를들면, 안부전화를 드릴 때 ‘사랑하는 우리 엄니, 오늘은 뭐하셨어요?” 하고 쓱. 그럼 사랑 고백 후의 적막감도 방지할 수 있고 손발이 오르라들기 전에 다른 대화가 시작되니 일석이조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빠르게 사랑고백을 하고 지나가도 부모님이 내 새끼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칠 리는 없다.
오늘은 어머니, 아버지께 안부전화를 한 통 드려야겠다. 그리고 속사포 랩퍼처럼 사랑고백으로 말문을 열어야겠다.
‘사랑하는 엄니, 아부지, 식사는 하셨어요?’